임진왜란 호남 전적지 '임진왜란 웅치 전적' 사적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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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은 30일 '임진왜란 웅치 전적'을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으로 지정했다.
임진왜란 웅치 전적은 임진왜란 초기인 1592년 7월 관군과 의병이 합동으로 전라도를 침략한 왜군으로부터 호남을 지켜낸 '웅치 전투'가 발생한 곳이다.
문화재청은 웅치 전적에 대해 "임진왜란 당시 호남 방어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며 "초기의 열세를 극복하고 조선군이 결국 승전하게 되는 국난 극복의 전적지"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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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이수지 기자 = 문화재청은 30일 '임진왜란 웅치 전적'을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으로 지정했다.
임진왜란 웅치 전적은 임진왜란 초기인 1592년 7월 관군과 의병이 합동으로 전라도를 침략한 왜군으로부터 호남을 지켜낸 '웅치 전투'가 발생한 곳이다.
문화재청은 웅치 전적에 대해 "임진왜란 당시 호남 방어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며 "초기의 열세를 극복하고 조선군이 결국 승전하게 되는 국난 극복의 전적지"라고 평가했다.
웅치는 완주군과 진안군 사이 고갯길의 지명이다. 웅치 일대 옛길은 전주와 전라도 동부지방인 진안 등을 연결하는 주요 교통로로 이용됐다. '선조실록'에 웅치는 '웅현' 또는, '웅령'으로도 기록돼 있다. 현재는 '곰티' 또는 '곰치'로도 불린다.
웅치 전투는 임진왜란 초기 진안을 거쳐 전주를 공격해오던 왜군을 진안과 전주의 경계였던 웅치 일대에서 막아서며 벌어졌다.
조경남의 '난중잡록'에는 전투가 일어난 지리적 위치가 구체적으로 기록돼 있다.
난중잡록에 따르면 선조 25년 6월23일 이후 전주 전 만호 황박이 모집한 군사 200명을 모아 웅현에 복병했다. 웅현은 전주와 진안의 경계였다.
당시 이광이 나주 판관 이복남, 김제 군수 정담 등으로 복병장을 삼아 웅현을 지키게 했는데 황박이 가서 조력했다는 내용도 담겼다.
왜군은 결국 웅치를 넘어 전주 부근까지 진출했다. 하지만 전투 과정에서 많은 전력을 상실해 전면 공격을 할 수 없게 됐다. 웅치 전투를 통한 호남 수호 이후, 관군과 의병은 경기도와 경상도로 진출해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중추적 역할을 수행했다.
관군과 의병은 전쟁에 필요한 각종 물자를 호남에서 조달하는 등 임진왜란 극복의 계기를 마련했다. 이러한 웅치 전투는 지난 7월 개봉한 영화 '한산'을 통해 재조명되기도 했다.
문화재청은 "전주를 공격해 전라도 일대를 장악하고자 했던 왜군의 전략을 무력화시켰다는 점에서 승패를 떠나 국난 극복의 전적지로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문화재청은 전라북도 완주군·진안군과 협력해 임진왜란 웅치 전적을 체계적으로 보존·관리하고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시행할 계획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suejeeq@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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