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대화 사료] 南 '도끼만행' 비판하자 北 "집어치우라"
北, 한미훈련 비난 회담 일방 연기…40여년 전에도 현재와 패턴 유사
(서울=연합뉴스) 홍제성 기자 = 북한은 1970년대 진행된 남북적십자회담에서 한미연합훈련 등을 강하게 비난하며 일방적으로 회담을 연기하는 등 현재와 같은 패턴을 반복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인도주의적인 문제를 논의해야 할 적십자회담에서 정치적으로 민감하고 중대한 사건을 테이블 위에 올려 때때로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북한의 이런 행태는 통일부가 30일 공개한 남북대화 사료집 제5권에 고스란히 담겼다. 이 사료집에 따르면 남북은 1973년 11월부터 7차례의 적십자 대표회의와 25차례의 실무회의 등 1978년까지 논의를 이어갔다.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 직후인 1976년 8월 20일 열린 제18차 실무회의에서 남측 대표는 "지난 6월 19일 밤에는 중동부전선에서 무장간첩을 침투시켜 군사정보를 탐지하려다 3명이 사살되었고 엊그제 18일에는 판문점 공동공비구역 내에서 도끼 살인사건이 귀측 경비장교의 살인명령에 의해 발생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고 강력 비판했다.
그러자 북측 대표는 책상을 치며 "집어치우라"고 고성을 지른 후 "우리 최고사령관 동지의 명령을 헐뜯는 민족반역적인 발언에 대해 엄중히 규탄한다", "망언을 고의적으로 늘어놓았다"는 등의 원색적인 표현을 써가며 강하게 반발했다.
북측은 24차 실무회의에서 "남조선의 수많은 감옥 속에는 민주인사 김대중, 시인 김지하를 비롯한 수천, 수만에 달하는 무고한 시민들이 갖은 악형과 고문을 받으면서 철창 속에서 고생하고 있다"는 등 남측의 인권문제를 거론하며 비난했다.
이에 남측 대표는 북측을 향해 "우리측에 대한 터무니 없는 비방 중상까지도 서슴지 않고 있다"고 맞섰다.
통일부 당국자는 당시 회담에서는 "김대중 납치 사건, 8·15 저격 사건, 땅굴 남침 사건,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등에 대한 쌍방의 공방이 계속됐다"고 말했다.
1978년 3월 예정된 실무회의를 앞두고는 대외용인 평양방송을 통해 회의 연기를 일방적으로 통보하기도 했다.
사료집에 따르면 북한은 1978년 3월 20일로 예정된 남북적십자 제26차 실무회의를 하루 앞둔 3월 19일 '평양방송'을 통해 한미 연합훈련을 비난하면서 실무회의 연기를 일방 통보했다.
북측은 "남조선 당국자들은 미국의 침략무력을 끌어들이고 그들과 함께 방대한 병력과 대량살상무기들을 동원하여 대규모의 한미연합작전훈련을 벌임으로써 남북관계를 극도로 첨예화시키고 정세를 한층 더 전쟁접경에로 몰아넣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무분별한 전쟁광증으로서 적십자 인도주의 이념과 7·4 남북공동성명의 정신에 근본적으로 배치되는 행동"이라고 비난하며 제26차 실무회의를 부득이하게 연기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북한이 한미 연합훈련과 미국의 전략자산 전개 등을 핑계 삼아 도발 수위를 높이며 한미를 맹비난하고 나선 현재의 패턴이 40여 년 전에도 유사했다.
이에 남측은 "한미연합작전훈련이 실무회의를 연기하는 구실이 될 수 없다"며 예정된 회의 개최를 촉구하면서 판문점 회담장에서 북측 대표단을 기다렸으나 끝내 북측은 나오지 않았다.
우리 측의 회담 재개 노력에도 결국 남북 적십자회담은 6년이 지난 1984년이 되어서야 수해물자 인도 관련 실무접촉으로 재개됐고, 본회담은 1973년 7차 회담 이후 12년이 지난 1985년에야 다시 열릴 수 있었다.
한편 남측은 1974년 11월 제1차 실무회의에서 노부모 주소·생사 확인, 판문점 면회, 방문 사업을 제안한 것을 시작으로 노부모-이산자녀들간 사진교환 우선 실시(8차 실무회의), 이산가족 성묘 방문단 상호방문과 판문점 면회소·우편물 교환소 설치(13차 실무회의) 등을 제안했다.
이 제안들은 당시에는 북측의 거부로 실현되지 못했지만, 1985년 남북 고향방문단과 2000년 이후의 남북이산가족 상봉을 통해 현실화됐다.
통일부 당국자는 "생사 확인 방식 등 1970년대 우리측이 제안한 방식은 남북관계 현실을 고려했을 때 합리적이고 실효적인 대안이었다"고 평가했다.
js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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