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여년 전에도 해상 '피격 사망' 사건…北은 유해 송환 끝내 거부
북측 총격으로 숨진 선장 유해, 결국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해
(서울=뉴스1) 최소망 기자 = 지난 2020년 우리 공무원이 북한군의 총격에 의해 사망한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의 논란이 가라앉지 않는 가운데, 40여년 전에도 북한군의 총격으로 우리 국민이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북한은 당시에도 사건 진상 파악을 위한 우리 측의 요구에 무성의한 태도로 일관한 것이 처음으로 공개된 남북회담 사료를 통해 확인됐다.
30일 통일부가 공개한 '남북적십자 분야 회담 문서'(남북대화 사료집) 5권 7장 '회담 및 재개 노력'에 따르면 1973년 이후 남북적십자 본회담이 중단되고 실무회담마저도 1977년 12월을 마지막으로 교착된 상황에서 북한에 억류된 우리 국민의 송환과 관련해 전개된 남북 간 갈등을 확인할 수 있다.
이에 따르면 1980년 1월26일 서해상에서 조업 중이던 우리의 제 6해왕호와 제 7해왕호 등 2척의 어선이 북한 당국에 의해 피랍됐다. 여기에는 선원 24명이 승선해 있었다. 피납 후인 3월3일 당시 이호 대한적십자사 총재는 손성필 북한적십자회 중앙위원회 위원장에게 방송통지문을 통해 납북 어부들의 조기 송환을 촉구했다.
해왕6·7호는 1월22일 경기도 지도항에서 출항한 후 2월15일 귀항 예정이었다. 그러나 출항 나흘 뒤인 1월26일 북한은 평양방송을 통해 "정체불명의 선박 2척을 단속, 조사 중"이라고 밝히면서 해왕6·7호의 납북 정황이 확인됐다.
우리 측의 확인 요청에도 북한은 사실상 무응답으로 일관했다. 이호 총재는 그해 4월17일 다시 손 위원장에게 서한을 전달했고 닷새 뒤인 22일 북측에서 첫 공식 반응을 보였다.
북한은 통지문을 통해 해왕6·7호 어선과 어부 송환에 대한 협조 용의를 표명했다. 이어 5월6일 북적은 한적에 방송통지문을 통해 선원 명단을 비롯한 해당 자료를 요구했다. 한적은 5월10일 판문점 중립국감독위원회 회의실에서 관련 내용을 담은 서한을 보냈고, 북측은 이를 접수했다.
해왕6·7호와 선원의 송환에 속도가 붙는 듯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자료를 넘겨 받은 북한은 한동안 별다른 답을 주지 않았다.
이 기간 동안 남북은 '남북 총리회담 준비를 위한 실무대표 회의'를 진행 중이었는데, 이 회의를 수차례 진행하면서 우리 측은 북측에 해왕6·7호와 선원들의 송환을 요구했다. 그럼에도 북한은 대답을 회피하거나 "선원들도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 데 매우 불안해 하고 있다" 또는 "어부들이 자신들의 신변안전을 염려해 남쪽으로 돌아가기를 꺼려하고 있다"는 식의 거짓 답변을 내놓으며 우리 측의 요구에 호응하지 않았다.
같은해 8월12일 이 총재는 '남북 적십자회담 제의 9주년에 즈음한 성명'을 발표하면서 "남북 적십자 회담을 무조건 재개하는 데 호응할 것을 촉구한다"는 내용과 함께 해왕6·7호와 선원의 송환을 재차 촉구했다.
9월19일 이 총재는 다시 서한을 통해 남북적십자 본회담 재개와 해왕6·7호 선원들의 조속한 송환을 거듭 요구했다. 당시 납북된 해왕호 선원 가족들이 손 위원장 앞으로 보내는 자필 호소문도 함께 전달됐다.
가족들은 호소문을 통해 "귀하가 우리와 같은 통포인 이상 해왕호 어부들이 부모와 처자 그리고 형제자매들과 졸지에 생이별하게 되는 비극이 생기는 것을 모른 체 하리라고 믿지 않는다"면서 "인도주의 정신과 동포애의 마음으로 이 문제가 가족들 같의 비극적인 생이별로 귀결되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협조해 달라"라고 호소했다.
11월5일 북한은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해왕6·7호 선원을 송환하기로 결정했다고 전격 발표한다. 다만 24명 중 1명은 북한 경비정의 총격을 받고 부상을 당해 치료 끝에 사망했다고 뒤늦게 밝혔다. 사건이 발생한지 무려 10개월 만이었다.
11월9일 오전 북한은 해왕6·7호 선원들을 석방해 이들이 남포항을 떠났다고 밝혔고, 그렇게 먼 거리를 돌아 290일만에 해왕6·7호 어부들은 고국의 땅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들이 돌아오고 난 뒤에야 사망한 이가 해왕7호의 선장 김환용씨인 것으로 밝혀졌다.
송환돼 고국으로 돌아온 선원들에 따르면 억류 당시 북한군이 배를 조준해 함포사격을 했다고 한다. 선원들은 갑판에 엎드리거나 선실로 도망쳤으나 김씨만이 조타실에 남아 계속 남쪽으로 항진토록했다고 한다. 그러나 포탄이 날아와 조타실에 맞으면서 선장 김씨는 머리에 관통상을 입고 사망했다고 한다.
이호 총재는 해왕7호 선장의 유해 송환을 재차 북측에 요구했다. 이 총재는 11월13일 "우리 선원들 중 1명이 납북 당시 북한 측이 가한 총격을 받고 사망해 생환되지 못한 불행한 사태가 발생한데 대해 심심한 유감의 뜻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북측이 해당 가족들의 소원에 따라 이 사망 선원의 유해를 가족에게 인도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하면서 북한적십자사가 지정하는 날짜에 판문점에서 동 유해의 인도가 이뤄지기를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북측은 이에 대해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았다. 결국 해왕7호 선장의 유해는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이 사건은 약 40년이 뒤 발생한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과 닮은 점이 있다. 북한군이 우리 국민을 총격해 사망하게 했다는 점과, 사건의 진상 및 유해 송환 등의 인도주의적 사안에 있어 무성의한 태도로 일관했다는 점에서다.
somangchoi@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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