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허준이 필즈상' 못다전한 이야기

박형주 아주대 수학과 석좌교수 2022. 12. 30.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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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즈상 받는 허준이 교수. 연합뉴스 제공

2022년에 일어난 가장 큰 사건 중에 개인적으로 가장 감격적이었던 것은 허준이 교수의 필즈 메달 수상 소식이었다. 올해 여름을 필즈상 수상 소식이 뜨겁게 달궜지만, 사실 노벨상에 비하면 필즈상은 모르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한해를 정리하는 이 시점에 필즈상에 얽힌 몇 가지 비하인드 스토리를 적으며 국내 필즈상 수상자가 또 나오기를 기대해본다. 

수학 분야의 큰 성취에 수여하는 상 중에 필즈 메달이 가장 많이 알려졌지만, 상금만 놓고 보면 약 10억 원 상금의 아벨상과는 비교가 안 되게 적다. 허준이 교수는 1억 3천만 원 상금의 뉴호라이즌스 상과 3억 원 상금의 호암과학상을 이미 받았으니, 상금의 규모로 이 상의 가치를 판단하는 건 무용하다.

● 필즈상에 버금가는 가우스 상, 아바커스 메달, 천 메달, 릴리바티 상

막연하게 상식적인 정도로만 알고 있던 필즈상의 여러 측면을 알게 된 건 몇 가지 개인적인 계기를 통해서다. 필즈상의 시상식인 세계수학자대회 개막식을 2014년에 한국에서 준비하는 역할인 조직위원장을 맡으면서 배운 게 많았고, 2015년부터 국제수학연맹(IMU, International Mathematical Union)의 11인 집행위원회에 참여하면서 필즈상 심사위원회 구성 등에 대해 알게 된 것도 많다.

베를린에 본부를 두고 있는 국제수학연맹(IMU, International Mathematical Union)은 필즈 메달 외에도 가우스 상, 아바커스 메달, 천 메달 및 릴리바티 상을 4년에 한 번씩 열리는 세계수학자대회(ICM) 개막식에서 수여한다. 40세 이하의 이론전산학자에게 수여하던 네발리나 상은 작고한 핀란드 수학자 네발리나의 친 나찌 경력이 국제 이슈화되면서 2022년부터는 아바커스 메달로 이름을 고쳐서 수여하고 있다.

필즈 메달은 캐나다 수학자 존 필즈가 기부한 재원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금화 제조의 전문성이 있는 캐나다 조폐국에 의뢰해서 메달을 제작한다. 2014년엔 토론토 대학 수학과의 로버트 맥캔(Robert McCann) 교수가 학과장 존 블랜드(John Bland) 교수의 위임을 받아 직접 들고 왔는데, 인천공항 세관에서 귀금속 관세 문제가 발생했다.

정확히 알아보니 들여오는 건 문제가 없는데 수상자들의 출국 시에 세금 문제가 발생한다는 거였다. 제한된 기간 동안만 국내에서 사용되고 수상자들이 다시 국외로 반출할 수 있도록 협조를 요청하는 내용을 담은 당시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의 협조 공문까지 들고 가서 겨우 시상식 일정을 맞출 수 있었다.

분실을 우려해서 밤에 잘 때도 메달 4개를 안고 잤다는 맥캔 교수는 거의 까무라칠 지경이 됐고, 입국 직후에 경주에서 열리는 국제수학연맹 총회에 참석해야 하는데 더 이상 메달을 가지고 다닐 자신이 없다며 조직위원회가 공항에서 수령해달라고 요청했다. 시상식까지 이걸 금고에 보관해야 했던 조직위원회가 초긴장 모드로 돌입한 건 물론이다. 

실제로 필즈 메달 분실사고는 역사상 두 번 일어났다. 2006년에 마드리드 ICM에서 필즈상 수상을 거부한 그리고리 페렐만의 메달은 베를린의 IMU 본부에 보관되어 있다가 도둑의 침입으로 도난당했다. 2018년 리우데자네이루 ICM에서 필즈상을 받은 코셔 비르카는 시상식장 안에서 메달을 도난당했다. 당시 IMU 집행위원이었던 필자도 이 사건의 논의에 참여했는데 결국 긴급하게 대체 메달을 제작해 ICM 종료 전에 간이 시상식을 열어서 재수여했다. 그래서 비르카에게는 ‘필즈 메달을 두 번 받은 사람’이라는 별명이 생겼다. 

각 메달에는 수상자의 이름이 적혀 있는데 시상식 전에 개봉하지 않으므로 시상식에서 무작위로 걸어준다. 그런데 2014년에는 단 한 명의 수상자도 자신의 메달을 받지 못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물론 시상식 후에 수상자들끼리 자신의 메달로 교환했지만. 이런 일이 일어날 확률(probability of derangement)을 계산해보라는 문제는, 대학 신입생들에게 필자가 단골로 내는 문제가 됐다.

필즈상. 위키피디아 제공

● 시상식까지 철저한 보안 유지되는 필즈상 

IMU의 모든 상은 시상식에서 수상자 이름을 호명할 때까지 철저한 보안을 유지한다. 시상식 전에 따로 수상자 이름을 공개하고 업적을 설명하는 행사를 하는 노벨상과는 상당히 다르다. 2006년 마드리드에서 필즈상을 받은 테렌스 타오에 관한 에피소드를 전 호주수학회장에게 들은 적이 있다.

타오는 호주 출신으로는 호주 역사상 첫 번째 필즈상 수상자였는데 정작 호주 언론은 물론이고 호주수학회 조차도 수상 사실을 사전에 몰랐다고 한다. 이 바람에 시상식 직후에 호주에서는 일대 혼란이 일었고, 업적 설명을 담은 심층 기사가 실리기까지 며칠이 걸렸다. 그 바람에 호주의 경사라고 들떠 있던 호주 정부에 수학회는 상당히 난처한 입장이 됐다고 했다. 수상자의 출신 국가 수학회나 소속 기관은 심사과정이나 사전 취재에서 일체의 역할을 자제하는 수학 분야의 오랜 전통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ICM 조직위원장의 경우는 수상자들의 호텔 예약과 강연 일정 조정 등을 위해서 사전 연락을 해야 하므로 약 6개월 전에 미리 수상자 명단을 받는다. 2014년 ICM 조직위원장이었던 필자는 철저한 보안을 위해서 조직위원들과도 수상자 명단을 공유하지 못했고 호텔 예약도 필자 명의로 해야 했다. 사전에 알려져서 본인과 가족의 프라이버시가 침해되는 등의 문제를 막는 순기능은 있지만 업적 설명을 담은 기사를 준비해야 하는 미디어에는 난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서울에서 개최된 2014년 세계수학자대회에서도 세계 여러 곳의 언론사로부터 연락을 받았는데 물론 엠바고를 전제로 한 것이지만, 사전 유출이 되면 개최국의 책임이 따를 사안이어서 모르쇠로 일관할 수밖에 없었다. 개막식을 2주쯤 남겨 둔 시점에서 국제수학연맹 회장이 시상식에 직접 참석하는 기자들을 대상으로 간단한 심사를 거쳐서 사전에 수상자 명단과 업적 요약을 줘도 좋다는 연락이 왔다. 그 이전의 엄격한 보안 지침 때문에 수상자들과의 모든 이메일 연락도 조직위원장이 직접 해야 했던 상황에서 짐을 덜어낸 기분이었다. 

2014년 당시 엠바고 준수를 자체 관리하는 과학 분야의 국내 기자단에게 시상식 참석을 전제로 자료 제공과 제한된 사전 취재를 허용했고, 외국 언론사의 경우에는 IMU 측에 판단을 넘겼다. 시상식에 직접 오지 않는 언론사의 경우에는 상당히 엄격한 잣대로 수학 분야 취재 경력 등을 심사하는 것 같았지만 참석을 증빙하는 경우에는 언론사의 실체성을 확인하는 등으로 취재의 진정성을 점검하는 것으로 보였다.

2022년의 경우에는 상황이 특별했다. 원래 7월에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릴 예정이던 ICM을 앞두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발발한 것이다. 세계 여러 국가의 수학회들이 러시아에서 개최되는 ICM의 보이콧을 선언했고 결국 국제수학연맹은 상트페테르부르크 개최를 취소했다. ICM은 급하게 온라인 개최로 변경됐지만, 필즈상 등의 주요 상 시상식은 헬싱키에서 개최됐다.

이전과 달리 개최국의 조직위원회가 없는 상황이어서 IMU가 모든 과정을 직접 관장했고, 사전 언론사 취재 절차도 모두 IMU가 직접 심사했다. 한국 언론에서는 수학동아만이 이러한 절차를 이해하고 IMU에 직접 사전 취재 요청을 해서 승인받았던 것으로 확인된다. 아마도 사전에 허준이 교수의 수상 가능성이 잘 알려지지 않았던 탓에 수학 분야의 취재 경험이 많지 않은 언론사들이 이러한 절차를 거쳐서 현지에서 취재하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 필즈상 수상 예측하는 유럽수학회상 

4년에 한 번씩 시상식이 다가오면 필즈상 수상자를 예측하는 떠들썩한 바람이 분다. 여러 분석을 해보니, 이 상을 예측하는 가장 정확한 방법은 유럽수학회상(EMS Prize) 수상자 명단을 보는 것이다. 4년마다 35세 이하의 젊은 수학자 10명에게 주는 이 상은 적어도 유럽 출신 또는 유럽에서 일하는 젊은 수학자들 중에서 떠오르는 스타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바로미터다.

필즈상 수상자 중에서 2006년에 3명, 2010년에 3명, 2014년에 1명, 2018년에 2명, 2022년에 3명이 모두 EMS 상 출신이었다. 유럽 출신이 아닌 수학자와 소수의 예외를 제외하면 90% 이상의 정확도다.

그래서 새로운 아이디어로 무장한 거칠 게 없는 젊은 학자를 미리 발굴하고 격려하는 건 정말 중요하다. 유럽수학회상처럼 격려의 효과 뿐 아니라 주류 수학자들에게 노출되고 연구 교류할 기회가 늘어나는 효과까지 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다. 우리나라에서도 훌륭한 젊은 학자들을 발굴하고, 노출시키고, 격려하는 상의 가치가 주목돼 주요 상들이 재편되면 어떨까.

박형주 아주대 수학과 석좌교수.

※필자소개

박형주 아주대 수학과 석좌교수. 1986년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1995년 미국 캘리포니아대 버클리에서 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고등과학원과 POSTECH에서 교수로 일했으며, 2014년 서울 세계수학자대회 조직위원장으로 활동했다. 2015년부터 2018년까지는 국제수학연맹 집행위원을 지냈다. 2015년부터 2017년까지 국가수리과학연구소 소장을 역임했으며, 2018년부터 2021년까지 아주대 총장을 지냈다. 

[박형주 아주대 수학과 석좌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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