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서 항일운동' 안현경·이원순 선생… 1월의 독립운동가

박응진 기자 2022. 12. 30.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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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미국 하와이 내 한인사회 통합과 독립운동을 이끈 안현경·이원순 선생이 '2023년 1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됐다고 30일 국가보훈처가 밝혔다.

이후 안 선생은 1909년 4월 대한인국민회 하와이 지방총회 와히아와 지방회장으로 선출됐고, 1910년 7월엔 하와이 각 지방대표들과 함께 일왕에게 일본의 한국 침략·강점에 항의하는 내용의 전보문을 발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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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훈처 "한인사회 통합 등에 기여… 임시정부 지원 활동"
안현경 선생.(국가보훈처 제공)

(서울=뉴스1) 박응진 기자 = 일제강점기 미국 하와이 내 한인사회 통합과 독립운동을 이끈 안현경·이원순 선생이 '2023년 1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됐다고 30일 국가보훈처가 밝혔다.

보훈처에 따르면 안 선생은 1881년 서울에서 태어나 1905년 하와이 노동이민에 응모, 그해 5월 하와이에 도착했다. 이후 안 선생은 1909년 4월 대한인국민회 하와이 지방총회 와히아와 지방회장으로 선출됐고, 1910년 7월엔 하와이 각 지방대표들과 함께 일왕에게 일본의 한국 침략·강점에 항의하는 내용의 전보문을 발송했다.

안 선생은 1913년 2월 이승만 전 대통령이 하와이에 정착해 출판·종교·교육 사업에 나섰을 땐 그를 도와 같은 해 9월 국문 잡지 '태평양잡지', 그리고 이듬해 4월 '한인교회보'를 발행하기도 했다.

안 선생은 이후 1916년 11월엔 한인여학원 이사, 1918년엔 한인 자치교회 '한인기독교회' 선교부 이사원(재무) 등을 맡았고, 1919년 7월엔 대한민국임시정부(중국 상하이(上海))의 '원동(遠東) 시찰 겸 통신원'으로 임명됐다. 안 선생은 1920년엔 미주 지역 대표 자격으로 임시의정원에 참여, 상임위 군무위원과 정무조사특위 외교 분과 위원으로도 활동했다.

1922년 하와이 대한인교민단 총무로 선임된 안 선생은 같은 해 10월 호놀룰루에서 열린 범태평양상업대회에 '조선' 대표로 참석, 김윤수 등과 함께 일본을 배척하는 연설을 했다.

이원순 선생.(국가보훈처 제공)

또 안 선생은 1941년 4월 호놀룰루에서 열린 '해외한족대회'에 이 선생과 함께 대한인동지회 중앙부 대표로 참석, 재미한족연합위원회와 주미외교위원부 출범에 기여했다. 안 선생은 같은 해 12월 태평양전쟁 발발 뒤엔 재미한족연합위원 5명 중 1명으로서 교민들로부터 독립지원금을 모았다.

당시 안 선생과 함께 재미한족연합위 등에서 활동한 이 선생은 1893년 서울 출생으로 1914년 보성전문학교 졸업 뒤 하와이로 망명했다. 이후 그는 현지에서 결성된 항일독립운동단체 '대조선독립단'에 가입해 활동했다. 이후 이 선생은 이 전 대통령이 설립한 대한인동지회에 참여했고, 동지회 기관지 역할을 한 '태평양주보'의 주필로도 활동했다.

1934년 4월 대한민국임시정부 주미 제2행서 재무위원에 임명된 그는 하와이에서 인구세·애국의연금 등의 모금을 통해 임시정부를 지원했다.

이 선생은 1941년 8월 재미한족연합위 조직 뒤 의사부 위원으로 선출돼 활동했고, 1943년 8월엔 임시정부 주미외교위원부 위원으로 임명돼 워싱턴에서 대미(對美) 외교 및 선전활동을 하며 독립운동자금을 모았다.

정부는 이들의 공훈을 기려 이 선생에게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그리고 안 선생에겐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각각 추서했다.

pej86@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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