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하라법은 왜 3년 넘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나[핫이슈]

이은아 기자(lea@mk.co.kr) 2022. 12. 30.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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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하라 법’ 통과 촉구하는 구호인 씨 [사진 = 연합뉴스]
어머니는 아들이 세 살 때 재혼해 집을 떠났다. 연락 한번 없던 어머니가 나타난 것은 54년이 지난 후였다. 그것도 아들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2억원이 넘는 사망 보험금(유족급여, 장례비 등)을 챙기기 위해. 다른 유족들은 부양의무를 다하지 않은 어머니는 상속받을 자격이 없다며 반발했지만 법원은 어머니의 손을 들어줬다.

이달 중순 부산에서 벌어진 일로, 국민정서상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 민법상 사망한 사람에게 배우자나 자녀가 없으면 부모에게 상속권이 있기 때문이다.

비슷한 일은 천안함 사건과 세월호 사고 때도 있었다.

민법 개정 논의가 시작된 것은 2019년이었다. 가수 구하라 씨 사망 후, 12년 만에 나타난 친모가 상속권을 주장했다. 구 씨의 오빠가 소송을 제기했지만 법원은 구 씨 부친에게 60%, 친모에게 40%의 상속권을 인정했다. 당시 구 씨의 오빠는 ‘어린 자녀를 버리고 가출한 친모가 상속 재산 절반을 받아 가려 한다’며 입법을 청원했고, 자녀를 제대로 돌보지 않은 부모의 상속을 제한하는 민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구하라법’으로 불리는 바로 그 법이다

‘구하라법’은 서영교 민주당 의원 발의안과 법무부 발의안이 있다.

서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어릴 때 자녀를 버린 부모라면, 자녀 재산을 상속받을 수 없게 부모의 상속 자격을 원천적으로 박탈하는 게 핵심이다.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면, 부모가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

반면 법무부의 구하라법은 자녀가 생전에 양육 의무를 다하지 않은 친부모에게 자신의 유산이 가지 않도록 소송을 제기해 승소해야 한다. 유가족도 소송할 수 있지만, 사망 후 6개월만 가능하다.

양육 의무를 다하지 않은 부모에게 상속을 제한하겠다는 취지는 같지만, 부양의무 입증의 책임이 부모에게 있는지, 자식에게 있는지가 두 법안의 차이인데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도대체 왜일까?

민법은 다양한 상황에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기본법으로 한두 가지의 문제를 염두에 두고 개정이 이뤄질 경우 다른 많은 사건에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양육 의무를 게을리했는지는 상대적이라 판단이 쉽지 않고, 자식이 부모를 용서했는데도 부모 이외의 다른 친족에게 상속이 이뤄지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부모는 낳아준 것만으로도 상속인 자격이 있다는 주장도 있다.

2017년 헌법재판소가 상속권과 관련해 “부양의무 이행의 개념은 상대적”이라며 “ 이를 상속결격 사유로 규정하게 되면 상속결격 여부를 판단하기가 곤란하고 상속을 둘러싼 법적 분쟁이 빈번하게 돼 법적 안정성이 심각하게 저해된다”는 결론을 내린 적도 있다.

하지만 법의 관점에서 지나치게 보수적으로 이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미 ‘공무원 구하라법’으로 불리는 공무원 재해보상법·공무원연금법은 국회를 통과해 시행 중이다.

재해유족급여를 받을 수 있는 공무원이나 공무원이었던 사람이 세상을 떠났을 때, 양육 책임을 다하지 않은 부모에게는 심의를 거쳐 급여 전부 또는 일부를 지급하지 않을 수 있게 됐다. 지난해 순직한 소방관 친모에게 해당법이 처음 적용되기도 했다.

공무원에게 적용할 수 있는 법을 왜 다른 사람에게는 적용할 수 없을까. 양육 의무를 저버린 부모에게 자녀의 유산이 돌아가는 것은 비상식적이다. 언제까지 비상식적인 일이 반복되는 것을 지켜봐야 하나.

이은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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