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기념 베이징·카타르 썰…“음바페는 세계와 맞짱 떴다”
2022년에는 스포츠 메가 이벤트가 아시아에서만 열렸다. 베이징겨울올림픽과 카타르월드컵이다. 두 대회를 현장 취재했던 〈한겨레〉 스포츠팀 기자들이 모여 대회 이야기를 풀어봤다. 이준희 기자는 중국 베이징을, 박강수 기자는 카타르를 다녀왔다.
취재환경
이준희 기자(이하 이) 베이징겨울올림픽은 ‘폐쇄 루프’였다. 대회 참가자와 중국 사회를 완전히 분리했다. 오로지 호텔, 경기장, 메인프레스센터(MPC)만 오갔다. 호텔마다 공안 10여명이 상주하며 철저히 통제했다. 생필품 구매도 힘들었고 매일 코로나19 검사도 했다. 도쿄올림픽 때 일본은 이렇게 깐깐하지 않았다.
박강수 기자(이하 박) 카타르는 엔데믹 분위기였다. 도시에서도 대부분 마스크를 안 썼다. 현지인이나 유럽, 미국 기자는 안 쓰고 식당 종업원이나 한국, 일본, 대만 기자 정도만 썼다.
이 베이징 때는 마스크를 다 썼다. 코로나19 통제도 도쿄 때보다 심했다. 한 예로 취재 버스에서 창문을 여니까 밖에 있던 공안이 닫으라고 했다. 그만큼 철저했다. 한 달 동안 너무 답답했다. 올림픽 내내 버블 안에 갇혀서 자원봉사자, 호텔 직원, 공안만 만났다. 일반 사람들은 에스엔에스(SNS)로만 접촉했다.
박 카타르도 도시 곳곳에 치안 경찰이 배치돼 기자들을 제재하는 문제가 대회 초기에 있었다. 일반 길을 걷는데 브이아이피(VIP) 사유지라면서 통제하기도 하고. 지하철 칸이나 대형 쇼핑몰 화장실에도 브이아이피 전용이 따로 있었다. 브이아이피들의 나라인가 싶었다.
인권 문제
박 유럽 팀이 성소수자 탄압에 반대하면서 무지개 완장을 차려고 했는데 피파(FIFA)가 옐로카드를 준다고 해서 무산됐다. 기자들도 이것저것 많이 준비했었다. 한 독일 기자는 무지개 목걸이 때문에 보완요원한테 제재를 받고 “그냥 색깔일 뿐인데 막는 게 더 황당하다”라고 화를 내기도 했다.
이 베이징 올림픽 때도 신장 위구르 인권 문제 등이 나왔다. 따지고 보면 베이징은 미국 중심으로, 카타르는 유럽 중심으로 인권 문제를 제기했다.
박 월드컵 자체가 유럽에서 더 의미가 커서 반응도 큰 거 같다.
이 한국도 올림픽 때 중국에 대한 반감이 컸다. 반면 카타르에는 비교적 덜했다. 빈 살만 왕자처럼 중동은 밈이나 유머 소재가 된다. 반면 프랑스 한 언론은 아예 누리집에 카타르월드컵 보도 원칙을 명시했다. 그만큼 고민이 컸던 거다. 산업재해로 희생된 이주노동자 이름, 사연도 보도했다. 경기보다 사망한 노동자에 대한 기사가 더 많았다. 카타르와 경제적 관계가 깊은 만큼 문제의식도 큰 듯했다.
박 카타르는 2010년 월드컵을 유치한 뒤 2011년 카타르국부펀드를 통해 파리생제르맹 구단을 인수했다. 뒤에 네이마르와 킬리안 음바페, 리오넬 메시를 차근차근 영입했다. 축구 산업을 통한 카타르의 소프트파워 프로젝트 교두보가 된 게 프랑스였기에, 더 사회적으로 복잡한 입장일 듯하다.
현지 분위기
박 카타르는 돈 많이 쓴 티가 났다. 300조원이나 썼으니까. 도시 전체를 월드컵에 맞춰 다시 디자인한 느낌이랄까. 그런데 관광지, 경기장이 아니면 사람들을 잘 못 만났다. 우버 택시 기사에게 카타르 대표팀에 관해 물어봤는데, 오히려 브라질 축구를 더 좋아했다. 알고 보니 필리핀 출신이었다. 카타르는 인구 300만명 중 약 30만명만 자국민이다. 지금의 인프라를 자국민의 소비력과 열정만으로는 유지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이 중국은 관중이 들어와서 도쿄 때보다는 올림픽 열기가 느껴졌다. 폐쇄 루프 속에 있어도 통일된 분위기였다. 중국 기자들은 기자석에서 막 응원도 하고.
박 독일 기자들도 월드컵 보면서 한숨 푹푹 쉬던데.
이 중국 기자들은 박수를 치고 책상까지 두들겼다. 에스엔에스로 바깥 분위기를 엿봤는데 확실히 애국주의적 열기가 있었다. ‘중국은 위대하다’는 글이 계속 올라왔다. 여름, 겨울 올림픽을 모두 치른 곳은 베이징이 처음이고, 성적도 미국을 앞질렀으니까. 또 그때는 제로 코로나 정책이 옳다는 분위기였다. 중국인 입장에서는 더 고무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아니지만.
대회 및 한국 평가
박 카타르월드컵은 부정부패로 탄생한 대회라고 비판 받지만 경기들을 놓고 보면 21세기 월드컵 중 가장 완성도가 높고 성공적인 대회라고 생각한다. 한국도 훌륭한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손흥민이 세 번의 월드컵 도전 만에 16강 업적을 이뤘고, 파울루 벤투 감독도 갖은 비판들 속에서 고집이 아니라 뚝심이었음을 증명해냈다.
이 대회 성공과 별개로 카타르 이미지가 좋아졌는지는 모르겠다.
박 결승전 시상식 때 카타르 국왕이 메시에게 아랍 전통 의상인 비시트를 입혀 트로피를 들게 했다. 카타르는 챔피언을 예우했다고 하는데, 유럽 기자들은 에스엔에스에서 ‘가장 위대한 순간을 망치고 있다’라며 깠다. 그러니까 다시 이쪽에서는 인종 차별이라고 반발하고. 카타르는 월드컵을 통해 아랍 세계의 중심 국가로 도약하고자 했다. 그런데 마침 메시라는 위대한 전설의 이야기도 함께 완성됐으니 정말 만족스러웠을 거다. ‘우리가 해냈다’는 식으로 마지막 장식품처럼 메시에게 리본을 묶는 느낌이 들었다. 문화적 상대성을 존중받고 싶었다면 역으로 그들도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고 본다.
이 베이징도 비슷했다. 한국 중계에는 안 나왔지만, 개막식 때 시진핑 주석을 1분 동안 카메라로 잡아줬다. 토마스 바흐 아이오시(IOC) 위원장보다 더 잡더라. 전례가 없는 일이다. 한국 성적(종합 14위)은 좋다고 할 수 없다. 그래도 실패라는 인식은 덜하다. 쇼트트랙 판정 문제가 성적 부진을 가렸다. 오심에 심판 매수 얘기까지 나왔는데, 지금으로선 편파 판정 정도로만 얘기할 수 있을 듯하다. 개최국 우호 판정은 평창(2018년) 때도 있었다. 쇼트트랙은 베이징 대회 전 규칙이 엄격해졌고, 한국도 이를 알고 있었다.
박 카타르는 축구를 너무 못해서 개최국 어드밴티지를 줄 여지조차 없었다.
이 카타르 대회 성공은 피파(FFA)가 준비를 잘한 덕 같다.
박 축구에서 판정 논란은 주로 오프사이드에서 나오는데 이번 대회 때는 반자동오프사이드 판독기술(SAOT) 덕에 논란이 없었다. 설득력 있는 그래픽으로 중계 화면에 보여주니 모두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 겨울스포츠는 한계가 있다. 황대헌이 실격됐을 때 바로 항의했는데 규정 자체가 심판 판정에 토를 못 달게 돼 있다. 자꾸 공정성 시비가 붙으니 규칙이 엄격해지고, 경기는 재미없어진다. 레이스보다 판정을 더 눈여겨봐야 한다. 현장에서 ‘이렇게 가면 쇼트트랙 자체가 지루해질 것 같다’고 생각했다. 황대헌 추월이 참 멋있었는데 이걸 반칙 선언하니까.
박 쇼트트랙마저 재미없어지면….
이 사실 겨울스포츠 미래가 밝지 않다. 겨울스포츠는 유럽이 주인공이다. 한국은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 피겨 정도에서만 성적이 난다. 이마저도 빙상장 등 인프라가 부족하고, 이게 고질적인 파벌 갈등 원인으로 꼽히기도 한다. 핵심 종목인 설상은 기본적으로 저변확대가 안 된다.
인상적 장면
이 쇼트트랙 최민정 1500m 개인전 금메달. 최민정은 한국 선수단 상징이고 에이스였다. 대회 전 “‘역시 쇼트트랙은 한국’이란 얘기 나오게 하겠다” 했는데, 진짜로 보여줬다. 다른 나라에선 남자 피겨 하뉴 유즈루(일본). 메달도 포기하고 쿼드러플 악셀 시도에 방점을 찍었다. 안정적으로 연기 했으면 올림픽 3연패도 노릴 수 있었다. 인간 한계에 도전하는 모습이 멋있고 고맙더라. 중국 사람들도 하뉴 경기 때는 다 멈춰서 티브이를 봤다. 하뉴가 올림픽을 올림픽답게 만들어줬다.
박 음바페(프랑스). 프랑스-덴마크전을 현장에서 보는데 음바페가 두 골을 넣었다. 하고 싶은 게 다 되는 선수구나 했다. 그 기세가 결승전 끝까지 이어졌다. 다들 아르헨티나와 메시를 응원하는 상황에서 전 세계랑 홀로 ‘맞짱’ 뜨는 느낌이었다. 공 잡을 때마다 오싹했다. 한국 선수 중에는 정우영, 이재성, 황인범이 구축한 중원. 셋의 조화가 벤투호의 핵심이었다. 가나전처럼 이재성 하나 빠지면 삐그덕 대는 게 보였다.
메가 이벤트 미래
박 축구 팬들 사이에서 요즘은 유럽축구나 챔피언스리그가 월드컵보다 낫다는 말도 있었는데 카타르 대회를 거치면서 쏙 들어갔다. 한국부터 모로코, 일본, 프랑스, 아르헨티나 모두가 저마다의 이야기를 썼다. 내셔널리즘과 축구가 적절하게 결합하면서 만들어낸 완성도 높은 희비극이다. 월드컵은 앞으로도 잘 팔릴 것 같다.
이 베이징과 카타르는 ‘뉴노멀’을 보여줬다. 특히 스포츠 워싱 논란은 앞으로 더 거세진다고 본다. 아랍 쪽은 카타르월드컵 비판이 ‘유럽의 위선’이라고 했는데 일부 공감한다. 사실 서구도 스포츠 워싱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흥미롭게도 카타르 현지 모습이 오히려 중국에 영향을 줘서 제로 코로나 정책을 무너뜨리는 일도 있었다. 의도하지 않았는데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다. 주목할 부분이다.
박 사람에게는 폭력적인 걸 즐기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본다. 이게 엇나가면 파시즘이 창궐하고 전쟁이 나겠지만 잘 관리하면 축구 경기 보면서 다 같이 즐거울 수 있다. 지면 좀 놀리기도 하고. 이 에너지와 욕망의 해방구가 스포츠의 중요한 기능이라는 점을 월드컵 현장에서 느꼈다.
이 원래 메가 이벤트를 부정적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도쿄 폐막식 때 엘리우드 킵쵸게가 마라톤 금메달 시상대에 올라서고 케냐 국가가 울리는 걸 보면서 달라졌다. 그 장면이 케냐 사람들, 특히 아이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스포츠는 정치와 별개일 수 없다. 반대로 정치나 경제가 스포츠를 완전히 지배할 수도 없다. 스포츠 열정은 논리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양 극단을 지양하고, 더 나은 스포츠를 고민해야 한다.
정리/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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