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황제’ 펠레, 영원히 잠들다
축구팬이라면 누구라도 슬퍼할만한 소식이다. 축구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펠레’는 너무나 특별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1940년 10월 23일 축구왕국 브라질의 소도시인 미나스제라이스주 소도시인 트리스 코라송이스에서 태어난 펠레의 본명은 이드송 아란치스 두 나시멘투. 브라질의 많은 축구스타들처럼 펠레도 어려운 형편에서 축구 선수 출신인 아버지 돈지뉴의 영향으로 일찌감치 축구선수의 꿈을 꾸었고, 어린 나이에 천재성을 드러냈다. 유소년 시절 아마추어 축구클럽에서 재능을 키운 뒤 아버지의 소속팀이었던 바우루AC의 유스팀을 거쳐 1956년 브라질 국가대표 출신 바우데마르 지브리투의 추천으로 명문 산투스FC에서 입단 테스트를 받고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불과 만 15세 때였다.
프로데뷔 1년 뒤인 1957년 7월 ‘코파 로카’(Copa Roca)라는 이름으로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이 정기적으로 벌이던 친선경기에서 국가대표 데뷔전을 치르기도 했다. 1-2로 패한 이 경기의 득점을 만들어낸 것이 펠레다. 16세259일 만의 A매치 데뷔골로 이는 수많은 축구천재들이 등장한 브라질에서도 아직까지 최연소 A매치 득점 기록이다.
펠레는 클럽축구에서는 1974년까지 줄곧 산투스에서 뛰었다. 공식전 660경기에서 만든 골이 경기당 1골에 가까운 643골에 달한다. 단일 클럽 최다골 기록으로 역시 오랫동안 축구 역사에 남았다 리오넬 메시(파리 생제르맹)가 바르셀로나(스페인) 소속이던 2020년 12월 경신됐다.
다만, 펠레의 선수 시절 득점 기록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다. 펠레와 그의 소속팀이었던 산투스는 펠레의 통산 득점을 세계 기록인 1283골(1364경기)이라고 주장하기 때문. 하지만, 친선경기와 투어 경기 득점이 상당수 포함된 데다 오래된 기록들의 정확성까지 떨어져 산투스, 뉴욕 코스모스, 브라질 대표팀에서 뛸 때 작성된 총 757골이 국제스포츠통계재단(RSSSF)이 인정하는 펠레의 공식전 총득점이다.
브라질 1부리그에서 6회 우승과 득점왕 3회, 파울루주 리그에서 10회 우승 및 득점왕 11회 등 브라질리그를 휘젓던 그는 1975년 미국 내 축구붐 조성을 위해 북미사커리그(NASL) 소속 뉴욕 코스모스에 입단해 세 시즌을 뛴 뒤 그라운드를 떠났다.
은퇴 후에는 축구해설가, 친선대사 등으로 왕성한 활동을 계속해 왔다. 브라질 체육부 장관으로 임명돼 최초의 흑인 장관으로 1995년부터 3년간 활동했다. 장관 재직 시 자유계약선수제 확대, 심판이익단체 결성 허용, 축구협회 승인이 필요하지 않은 새로운 프로리그 창설 등의 내용이 담긴 브라질축구 개혁법안, 이른바 ‘펠레법’을 마련해 브라질 축구 개혁을 주도하기도 했다.
서필웅 기자 seose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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