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타’ 에스파 · ‘초능력자’ 엑소… 마블같은 ‘세계관’ 창조한다[K팝의 탄생 현장을 가다]
■ K팝의 탄생 현장을 가다- (3) 세계관의 탄생
SM, 아이돌 세계관 기획 시초
소속 가수 뭉치는 가상공간인
‘광야’개념 설정해 스토리텔링
소시는 ‘소리 여신’ 콘셉트로
슈주는 ‘우주 여행자’되는 식
최근엔 ‘광야’ 상표권 등록도
음악 선보이는 또하나의 무대
팬들에 해석의 즐거움 선사도
SM엔터테인먼트(SM)의 모든 아티스트들은 SMCU(SM Culture Universe)라는 세계관을 통해 서로 연결되고, 현실 세계는 물론 꿈, 가상 현실, 우주를 무대로 그들의 음악과 콘텐츠를 선보일 것입니다.” (2021년 7월 1일) 이수만 SM 총괄 프로듀서는 지난해 7월 1일 열린 ‘제2회 세계문화산업포럼 기조연설’에서 이렇게 천명했다. SM의 모든 아티스트들이 하나의 ‘세계관’ 안에서 연결되는 SMCU를 출범시키겠다는 선언이었다. SM뿐 아니라 대부분 K-팝 그룹들이 ‘세계관 전쟁’이라 불릴 정도로 저마다 독특한 세계관을 앞세우고 있다. 이는 아이언맨, 캡틴아메리카, 헐크 등 각기 다른 히어로들이 하나의 세계관을 공유하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와 유사한 개념이다. ‘광야’라는 공간을 설정해 세계관을 키워가고 있는 SMCU 개발 유닛(SMCU Development Unit)의 모나리 유닛장과 만나, K-팝 세계관 이야기를 들어봤다.
◇에스파, ‘세계관이 우선’ 첫 걸그룹
SMCU 개발 유닛이 꾸려진 건 1년 전. 총 3명으로 구성된 유닛은 외부의 스토리 작가들과 협업하고 있다. 하지만 “SMCU는 더 오래전부터 기획된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SM이 20년 넘게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하면서 수많은 아티스트가 단편적인 스토리를 선보여왔어요. 이걸 ‘하나의 이야기로 연결해 풀어내면 어떨까’ 하는 데서 출발했습니다. 제가 8년 전 입사했는데 그전부터 이미 SMCU 기획은 존재했던 것으로 알아요. 갑자기 시작된 게 아니라 옛날부터 쌓아온 이야기를 한데 묶어 보여주자는 프로젝트입니다.”
그의 말대로 SM이 모든 아티스트를 엮는 세계관을 시도한 것은 10년도 더 됐다. 지난 2012년 SM은 소속 가수들이 모두 출연하는 공연을 열고 ‘SM타운 국가’를 선포했다. ‘SM 국가 여권’을 팬들에게 나눠주고 가상 국가의 깃발을 흔들며 행진도 했다. 하지만 당시 대중의 반응은 싸늘했다. 10년이 흐른 지금에서야 호응을 얻게 된 것이다. 모 유닛장은 “예전엔 너무 앞서나가 부담스러워했던 것 같은데 요즘엔 ‘광야? 재미있네?’라며 환영하는 반응이에요. 무척 다행이죠”라고 말했다.
인간 멤버 4명과 각 멤버의 아바타 4명, 총 8명으로 구성된 메타버스 걸그룹 에스파는 SMCU의 본격적인 시작이다. 지난해 11월 데뷔한 에스파는 ‘세계관이 우선하는’ 그룹이다. 이들은 ‘광야’에서 자신의 아바타들과 함께 빌런인 ‘블랙 맘바’에 맞서 싸운다는 세계관을 갖고 있다. 에스파의 세계관은 데뷔 1년 전부터 만들어졌다. 세계관을 먼저 만들고 스토리를 짠 다음 앨범 재킷과 디자인, 뮤직비디오 스토리와 멤버들의 의상 등을 세계관에 맞춰 탄생된 결정체가 에스파의 데뷔 앨범인 ‘블랙 맘바’다.
◇‘광야’ 탄생… 이성수·이수만 합작
에스파의 ‘넥스트 레벨’ 속 가사 “광야로 걸어가”에 나오는 ‘광야’는 에스파의 성공과 함께 하나의 ‘밈’(meme·온라인에서 유행·유통되는 콘텐츠)으로 주목을 받았다. 에스파뿐 아니라 SM에 속한 모든 아티스트들이 모이는 가상의 공간 ‘광야’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모 유닛장은 “이수만 프로듀서가 아이디어를 냈고 이성수 대표가 배경 설정을 도왔다”고 설명했다. “‘광야’를 설정하는 데 꽤 많은 시간을 썼습니다. 한정된 공간도, 특정한 공간도 아니면서 추상성까지 해결해야 했죠. ‘광야’라는 개념은 에스파만 쓰기보다는 SMCU의 무정형, 무규정의 세계로 욕망에 따라 바뀐다고 설정돼있어요. 광야는 각 아티스트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공간입니다. 아바타와 활동하는 에스파에게 광야는 ‘가상세계’이고, 각 멤버가 초능력자라는 콘셉트를 가진 엑소에겐 ‘외계 행성’이 광야죠. 광야는 척박한 들판이라는 의미가 있기에, 광야를 개척해 더 좋은 세상을 가져올 수 있다는 뜻도 담겼습니다.”
SM은 지난해 12월 17일 SMCU의 세계관을 통칭하는 단어로 ‘광야’를 확정한 뒤 곧바로 상표권 등록을 했다. “‘광야’를 지식재산권(IP)으로 잘 활용하면 좋겠다고 해서 상표권 등록을 먼저 했습니다. 플래그십 스토어 이름도 ‘광야’로 했고요. 에스파는 ‘광야’의 덕을 많이 본 케이스예요. 예전 같으면 부담스럽게 생각됐을 수도 있는데 이제 밈처럼 재미있게 소비되면서 편견 없이 받아들여진 것 같습니다.”
에스파가 SMCU의 본격 시작이지만 SM 소속 아티스트들이 많은 만큼 세계관을 내세우지 않았던 기존 가수들도 광야로 소환되고 있다. 소녀시대가 ‘소리의 여신’이 되고, 슈퍼주니어가 ‘우주 여행자’가 된 식이다. “SM 소속 다른 아티스트들이 에스파의 조력자가 된다든가 또 다른 빌런이 된다든가 하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어요. 보아 등 기존 아티스트들의 역할도 기대해 주세요.”
◇세계관은 아이돌 ‘덕질’의 핵심…“이제 시작”
팬들에게 세계관은 해석의 즐거움을 주는 ‘덕질’의 핵심이다. 남들은 모르는 디테일을 알아채고 해석하면서 큰 즐거움을 얻는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복잡한 세계관이 ‘입덕’(어떤 분야에 빠져들기 시작함)에 방해물이 되기도 한다. ‘광야’의 정확한 개념을 이해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특정 아티스트를 좋아하는 팬들이 원하는 것을 만드는 게 첫 번째 목표이고 두 번째는 ‘어떤 콘텐츠를 봤는데 재미있었다. 이 콘텐츠와 관련된 아티스트를 찾아보니 에스파 또는 레드벨벳이었다’, 이런 반응을 이끌어내는 것입니다. 물론 가장 중요한 건 노래입니다. 세계관이 좋다고 그 가수의 노래를 들을 확률은 높지 않아요. ‘세계관이 좋으니 응원한다’는 건 안 되는 거죠. 세계관은 부가적인 것입니다. 다만 세계관이 재미있으면 팬들도 더 재미있게 참여하고 좋아하는 아티스트를 응원할 수 있게 되는 거죠.”
SMCU 세계관이 어디까지 확장해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나갈지 궁금했다. 모 유닛장은 “아직 아무것도 안 한 것”이라며 웃었다. “에스파는 세계관 영상이 두 편 공개됐고 이제 더 본격적으로 해나갈 거고요, 다른 아티스트들도 누가 읽어도 재미있게 볼 수 있을 스토리를 개발 중입니다. 앞으로 계속 꾸준히 공개할 예정이에요. 이제 시작입니다.”
박세희 기자 saysay@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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