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년 벼슬살이 빠짐없이 기록한 ‘회화 지도’… 미적·사료적 가치 높아[박정혜의 옛그림으로 본 사대부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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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한필교, 전라·경기 등 부임지 15곳 ‘관아도’ 남겨… 구조·시설 기능적 특징 잘 드러나
관청 담장 밖 마을풍경 담은 지도, 울창한 소나무숲·정자 옆 배나무 등 세밀한 산수 표현 돋보여
동아시아 관련 자료를 방대하게 소장하고 있는 미국 하버드대 옌칭도서관의 희귀본 컬렉션에는 ‘숙천제아도(宿踐諸衙圖)’라는 표제가 붙은 화첩 한 점이 포함되어 있다. ‘예전에 거쳐 갔던 관아의 그림’이라는 뜻을 가진 이 화첩의 주인공은 조선 후기 벌열 중의 하나인 청주한씨 가문의 한필교(韓弼敎·1807∼1878)이다. 자신이 서울과 지방을 오가며 몸담았던 관청과 그 지역의 모습을 순서대로 담아 일생의 관직 이력을 스스로 기념한 화첩이 바로 ‘숙천제아도’이다.
한필교의 자는 보경(輔卿), 호는 하석(霞石)이다. 그는 어린 나이(6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열세 살에 19세기를 대표하는 경화사족 집안 출신 홍석주(洪奭周·1774∼1842)의 딸과 혼인하였다. 한필교는 홍석주 집안 자제들과 왕래하며 어린 시절을 같이 보냈다. 홍석주는 사위를 아들처럼 아끼고 후원하였으며 1831년 사은정사로 연행할 때는 사위를 자제 군관으로 삼아 동행했다. 한필교 역시 ‘무슨 일이든 장인에게 물은 뒤에 행하였다’고 할 정도로 장인으로부터 학문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큰 영향을 받았다. 홍석주는 당대 최고의 문필가이자 수만 권의 서적을 소유한 장서가이며 고동서화의 완상 취미를 가진 수장가였다. 한필교가 ‘숙천제아도’의 제작을 꿈꿀 수 있었던 것도 어린 시절부터 경험한 풍산홍씨 집안의 문화적 환경 속에서 자연스럽게 그림의 효용성을 터득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기록을 중시하고 지도류에도 관심이 많았던 장인의 가르침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8세기 후반 이후 조선 시대 관료들이 자신의 벼슬살이를 기념하고자 그림이라는 시각적 매체를 활용하는 일은 점차 늘어났다. 일부러 방문하기 어려운 지역이라면, 지방관으로 부임한 김에 인근의 명승을 기행한 뒤 실경산수도를 주문하고 여기에 감상을 덧붙였다. 평소 그림에 재주가 있는 사람이라면 직접 그림을 그려서 그곳에 가보지 못한 사람들을 위한 와유(臥遊)의 자료로 대비해 두었다. 혹은 행사도 형식을 빌려 특별한 이벤트나 업적을 사실적인 그림으로 남겨 자랑거리로 삼았다.
한필교의 ‘숙천제아도’가 특별하다고 여겨지는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는 자신의 전체 관직 이력을 하나도 빠짐없이 기록하겠다는 계획을 벼슬길 초기에 일찌감치 세우고 이를 완수했다는 점이다. 한필교는 1834년(28세)에 진사시에 입격한 뒤 대과에 나가지 않고 음사로 벼슬살이를 시작했다. 1837년 3월 목릉참봉(穆陵參奉)으로 처음 벼슬길에 올라 1838년 제용감(濟用監) 부봉사(副奉事), 1839년 6월 호조좌랑, 12월 종묘서령(宗廟署令)을 거쳐 1840년 7월부터는 평안도 영유현령(永柔縣令)을 지냈다. 한필교가 ‘숙천제아도’의 서문을 1840년 4월에 썼으므로 늦어도 1839년 서울에서 종묘서령을 마칠 무렵 화첩 제작을 기획했던 것 같다. 처음의 세 폭 ‘목릉’ ‘제용감’ ‘호조’의 건물 묘법과 산수 표현이 유사한 점도 이 세 폭을 한꺼번에 한 화가에게 주문한 뒤 그림이 완성되자 서문을 썼다고 짐작된다.
영유현령으로 부임한 이듬해 모친상을 치른 한필교는 1843년 사복시(司僕寺) 판관(判官)에 나아갔고 황해도 재령군수, 황해도 서흥부사, 전라도 장성부사, 선혜청 낭청, 종친부 전부, 경기도 김포군수, 황해도 신천군수, 도총부 부총관을 거쳐 1878년 공조참판을 끝으로 약 41년간 관직 생활을 마쳤다. 중간에 두 차례 유배 생활을 했지만, 평생 열다섯 곳의 관청에서 벼슬살이를 한 셈이다. 한필교는 관직을 제수받고도 관아에 부임하지 않은 경우를 제외했으며 실제로 부임했던 곳만을 그린다고 화첩 서문에서 밝혔다. 그림은 15폭이지만 마지막 관청 ‘공조’ 다음에도 7장이나 빈 면이 남아 있어 애초에 화첩을 미리 만들 때 넉넉하게 지면을 준비했음을 알 수 있다.
‘숙천제아도’가 특별한 두 번째 이유는 벼슬살이의 자취를 기억하기 위해 이전에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자신만의 방식을 선택했다는 점이다. 그 새로운 방식이란 바로 경관직일 경우는 관아도, 외관직일 경우는 회화식 군현지도를 만든 것이다. 각 화면에는 관청의 이름, 위치, 부임 일자, 실무 내용 등을 비롯해 건물의 이름과 중요한 지리정보가 반듯한 해서체로 꼼꼼하게 적혀있다. 자신이 근무했던 장소이니만큼 누구보다 익숙했을 건물의 구조부터 문과 담장의 위치, 형태 등을 상세하게 그렸다.
첫 번째 그림 ‘목릉’은 선조와 선조의 비(의인왕후 박 씨와 인목왕후 김 씨)의 능과 그 아래의 부속시설을 그린 것이다(그림 1). “양주 검암산 아래 건원릉 오른쪽 언덕에 있다”고 그 위치를 설명하였다. 오늘날 경기 구리시의 동구릉 경내이며 그림에는 목릉 외에 건원릉(健元陵), 휘릉(徽陵), 현릉(顯陵) 구역을 홍살문으로 표시하고 숭릉(崇陵)·혜릉(惠陵)·원릉(元陵)의 위치도 글자로 표시하였다. 목릉 구역에는 정자각(丁字閣), 비각(碑閣), 망료위(望燎位), 수복방(守僕房)까지 세필로 섬세하게 그려 넣었다. 화면 오른쪽에는 능침 영역보다 큰 비중으로 부속 건물을 그렸는데 특히 한필교 자신이 관리했던 목릉의 향대청(香大廳), 전사청(典祀廳), 재실(齋室)을 가장 크게 그린 점이 두드러진다. 소나무 울창하게 둘러싸인 능 주변의 산세를 담묵부터 농묵까지 겹쳐서 묵직한 분위기로 잘 살려냈다.
‘목릉’이 동구릉 경내를 그린 유일한 그림이듯이 제용감, 사복시, 선혜청, 도총부, 공조의 관아 모습은 현재에선 ‘숙천제아도’에서만 확인할 수 있다. ‘숙천제아도’의 관아도에는 건물의 명칭이 상세하게 쓰여 있어서 그 관청의 기능적 특징이 잘 드러나는데 궁중에서 쓰는 말과 가마 등을 관장하던 사복시 그림도 그중의 하나이다(그림 2). 사복시는 지금의 종로구 수송동 이마빌딩 자리에 있었다. 정3품 사복시정(司僕寺正)이 근무하는 정청에는 ‘열청헌(閱淸軒)’이란 현판이, 남쪽 대문에는 ‘태복시(太僕寺)’라는 사복시의 별칭으로 현판이 걸려있다. 사복시 뜰에는 말의 훈련을 담당하는 정6품직 이마(理馬)의 지휘 아래 마부가 둥근 대열로 말을 조련하고 있다. 말을 치료하는 수의사가 근무하는 마의청(馬醫廳), 이마가 근무하는 이마청(理馬廳), 말에게 먹일 풀과 콩을 보관하는 추두간, 말을 기르던 마부, 즉 거덜이 머무는 거덜방(巨達房), 아전들이 일을 보던 연청도 그려져 있다. 또 뒷마당에는 궁중의 가마와 말안장을 보관하던 덕응방(德應房), 마신(馬神)을 모시는 신당, 말과 소의 우유를 관리하던 치락변(馳酪邊) 건물도 보인다.
‘숙천제아도’는 관아도보다 지방 군현의 관아와 주변의 산천을 그린 회화식 지도가 더 눈길을 끈다. ‘영유현’을 보면(그림 3), 동헌인 청민당(聽民堂)과 내아(內衙) 중심의 관아가 북쪽에 있고 마을이 아래쪽에 위치하는 보통의 고을 모습을 보여준다. ‘영청아문(永淸衙門)’이라 편액된 외삼문을 나가 순안(順安)으로 향하는 남쪽 큰길가에는 객사인 청계관(淸溪館)이 자리 잡고 있다. ‘청계’는 영유현의 옛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소와 말을 기르는 뇌령청(牢令廳)과 이방의 아전들이 근무하던 유이소(由吏所)는 다른 군현지도에서는 잘 그려지지 않는 곳이다. 한편으로 아사(衙舍) 담장 밖에는 군현지도에서 빠지지 않고 그려지는 향교, 향청, 장청(將廳), 사창(司倉), 여단(려壇), 사단(社壇), 성황사(城隍祠), 시장(市場) 등이 확인된다. 객사와 그 옆의 정자 이화정(梨花亭) 부근의 배나무는 온통 흰 꽃이 만발한 모습이어서 정자 이름의 유래를 말해준다.
한필교가 1867년 3월 군수로 부임한 김포는 동헌을 제외한 아사의 묘사는 단순하게 처리하고 고을 묘사도 대폭 줄이는 대신 주변의 산천 형세에 더 치중한 모습이다(그림 4). 독도(獨島), 초평(草坪), 이평(二坪), 박말도(朴抹島) 등의 섬과 ‘야전(野田)’이 있는 한강의 물줄기와 습지를 큰 비중으로 배치하였으며 강 건너 화면 아랫부분에는 삼각산도 표시하였다. 김포의 섬에서는 사복시에서 내린 말을 기르고 먹이가 되는 콩을 경작했는데 사복시에서 일한 적이 있는 한필교의 경험과 지리적 지식이 반영된 표현이라고 생각된다.
‘숙천제아도’ 그림은 일정한 수준의 묘사력을 가진 안정적인 필치, 높은 완성도, 흐트러짐 없는 글씨, 가는 붓의 운용으로 치밀하면서도 명료한 세부 등이 돋보인다. 한 명의 화가가 그린 것은 아니지만 실력 있는 도화서 화원들의 솜씨임이 분명하다. 개인적으로는 과거를 추억하는 사환(仕宦)의 기록물이지만, 한필교가 애초에 의도한 대로 그곳에 가보지 않고도 어느 관청, 어느 관아라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고 마치 가본 것처럼 상상할 수 있을 정도이다. ‘숙천제아도’는 어느 군현지도보다도 구체적이고 사실적이어서 찬찬히 들여다볼수록 감상의 재미가 더해지는 작품이다.
미술사학자·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 하버드대 옌칭도서관
동아시아 관련 자료를 광범위하게 보유하고 있는 도서관으로 동아시아학의 보고로 불리기도 한다. ‘옌칭(Yenching)’은 중국의 옛 수도 ‘연경(燕京)’의 중국식 발음이다. 1928년부터 1965년 이전까지는 Chinese-Japanese Library of the Harvard-Yenching Institute at Harvard University로 불렸으나 1965년부터 하버드 옌칭도서관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명칭은 옌칭도서관이지만 1951년부터 수집하기 시작한 4000여 종의 한국 고서를 소장한 ‘한국관’이 따로 설치돼 있다. 많은 소장자료가 유일본인 경우가 많아 연구 가치도 높다. 전 세계 3본밖에 없는 22첩 채색 대동여지도가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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