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눈에 읽는 신간]“임금노릇하기 힘들었다” ‘세종의 고백’외

2022. 12. 30.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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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의 고백, 임금노릇 제대로 하기 힘들었습니다(송재혁 지음, 푸른역사)=역사상 최고의 성군으로 불리는 세종을 사후의 칭송이 아닌 당대 정치적 현실 속에서 정치행위자로 조명한 평전. 저자는 무엇보다 역사가 승자의 기록임을 전제, 신화와 성역을 넘어서는 비판적 읽기를 지향한다. 이도가 세자가 되고 왕위에 오르는 과정을 기록한 ‘태종실록’이 이도의 재위기에 편찬됐음에 주목한다. 저자는 성공과 실패의 이분법을 넘어 성장하는 국왕으로서의 이도를 조명한다. 따라서 실패와 실수로 점철된 통치 그대로를 보여준다. 가령 태종이 소천한 해에 유언비어를 퍼트린 자를 참형, 장 100대, 유배3년 등에 처한 것은 성군 이미지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다양한 입법과 혁신을 시도했지만 제대로 예측하지 못해 무용지물이 된 경우도 많았다. 가령 동전 보급 정책의 경우 신하들 말만 듣고 그리 했다가 실패했다고 신하 탓으로 돌리기도 했다. 태종과 마찬가지로 무력을 권력유지 수단으로 여겼다는 점은 매년 강무 시행을 통해 확인된다. 통치자의 고민도 드러난다. 재위기간 32년 중 기우제를 드리지 않은 해가 6번에 불과했다고 토로한다. 대신을 죽이지 않겠다는 인의 정치, 경연과 학술적 성취, 노비 처우 개선, 규휼제도 등은 이도의 인의정치, 살림정치를 보여준다. 부족한 재정을 타개하기 위해 정부 규모를 축소하고 쓸데없는 관원을 내보내기도 했다. 왕자 이도가 견습국왕을 하던 시절부터 태종 사후 홀로서기와 국내 안정화, 대신들과 세자에게 권력을 분산시킨 말기까지 통치 32년을 온전히 정리·분석했다.

▶환영의 방주(임성순 지음, 은행나무)=장편소설 ‘컨설턴트’, ‘문근영은 위험해’‘자기개발의 정석’‘우로보로스’ 등 매번 색다른 소재와 문체를 들고 온 작가 임성순의 두 번째 소설집. 첫 소설집 ‘회랑을 배회하는 양떼와 포식자들’보다 강렬하고 미래적인 일곱 편의 작품이 담겼다. 인간과 사회, 시스템의 균열을 예리하게 포착한 소설들은 빠른 기술 발달이 만들어낸 사회적 윤리의 공백을 드러낸다. ‘타이탄의 날’은 해안도시 뉴 베니스가 배경으로, 이 곳에선 우주선 건조에 필요한 유기화합물을 생산한다. 중단된 프로젝트 헤르메스가 진행되던 곳이지만 공장은 자동화로 계속 돌아가고 있다. 보험사 직원인 ‘나’는 반세기 전 작성된 계약서에 서명을 받기 위해 그곳을 찾는다. 단편 ‘히카리’는 리얼돌을 데리고 다니는 남성을 우연히 배에서 만난, 한 오토바이 여행객의 이야기다. 나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출발해 유럽까지 오토바이를 타고 대륙을 횡단할 예정이다. 예행연습 겸 홋카이도에 가기로 하고 배에 승선한다. 한 남자와 1층 갑판으로 내려가다 남자의 차 조수석에 여자가 앉아 있는 걸 발견하고 기겁을 한다. 그러나 이내 그게 리얼돌임을 알게 되고 의구심에 빠진다. 표제작 ‘환영의 방주’는 군함정에서 권총 자살한 함장과 그의 죽음을 둘러싼 이야기. 함장은 핵미사일 발사를 명하고 세계 전쟁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소설들은 얼핏 비현실적인 얘기처럼 들리지만 우리가 매일 접하는 뉴스와 현실을 조금 더 밀고 나가거나 틀었을 때 벌어질 상황들이라는 점에서 섬뜩함마저 준다.

▶프랭크 게리 건축을 넘어서(폴 골드버거 지음, 강경아 옮김, 을유문화사)=빌바오 구겐하임미술관으로 유명한, 건축을 예술로 승화시켰다는 평가를 받는 프랭크 게리의 전기. 게리를 친구로서 오랫동안 지켜보고 게리의 작업을 초기작부터 기록해온 퓰리처상 수상작가 폴 골드버거가 게리를 조명했다. 젊은 시절 게리는 건축가 동료보다 로스앤젤레스의 예술가들과 어울렸다. 건축계 아웃사이더로 예술가 공동체 주변을 맴돌았던 그는 예술가들의 직관적인 태도에 흥미를 느꼈고 그들에게서 에너지를 얻었다. 이때의 경험은 이후 예술적 기법과 기술을 건축적 기능과 조화시킨 그만의 스타일을 만들어나가는 원천이 된다. 게리는 건축에서 형태가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인간의 행위, 기능적 쓸모, 장소와의 연결성이 중요했다. 건축의 형태에 대한 고정관념을 벗어난 게리의 회화적·조각적 건축물은 미적 경험을 선사하지만 그렇다고 예술을 위해 건축을 저버리지는 않았다. 실제의 쓸모를 중시한 것이다. 또한 테크놀로지 사용에 적극적이었지만 테크놀로지는 아이디어를 세상에 실제로 세워 보이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다. 골드버거는 “게리의 시작점은 언제나 게리의 머릿속”, 즉 상상력임을 강조한다. 책은 노익장을 과시하며 여전히 활동하는 게리의 목소리와 충실한 비평가의 시선을 동시에 만날 수 있다. 빌바오 구겐하임을 비롯,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 파리 루이뷔통 재단 건물 등 대표작들이 컬러 도판으로 실려있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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