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레의 위대한 유산 ‘축구는 브라질’…황제여 “사랑, 영원히”

이준희 2022. 12. 30.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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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암 투병 끝에 사망
월드컵 3회 우승 등 굵직한 족적
정치인 변신해 반부패 운동 벌이기도
축구황제 펠레. AFP 연합뉴스

‘축구황제’ 펠레가 천국의 그라운드로 떠났다. 향년 82.

〈에이피〉(AP) 등 현지 매체들은 30일(한국시각) “월드컵에서 세 차례 우승하며 세계 최고의 축구 선수로 이름을 날렸던 펠레가 사망했다. 그의 에이전트가 사망을 확인해줬다”고 보도했다. 펠레가 입원 치료를 받고 있던 브라질 상파울루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병원 또한 “펠레가 현지시각으로 29일 오후 3시27분 사망했으며 그가 앓고 있던 질병들과 대장암의 진행으로 인한 다발성 장기부전이 사망 원인”이라고 밝혔다. 펠레는 지난해 대장암 수술을 받은 뒤 투병해왔다.

펠레는 1940년 브라질 미나스제라이스주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이드송 아란치스 두나시멘투. 우리에게 익숙한 펠레라는 이름은 별명이다. 어린 시절 가난한 집안 환경 때문에 구두닦이로 일하기도 했던 그는 축구선수였던 아버지 영향으로 선수생활을 시작했다. 축구 역사상 처음으로 황제 칭호를 받은, 지금까지도 유일한 월드컵 3회 우승자는 그렇게 탄생했다.

축구를 시작하자마자 펠레는 놀라운 재능을 뽐냈다. 16살 때 브라질 산투스FC에서 프로 데뷔를 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국가대표로 발탁됐다. 펠레하면 빼놓을 수 없는 월드컵 활약 역시 10대 때 시작됐다. 펠레는 1958 스웨덴월드컵에 출전해 4경기 6골을 터뜨리며 브라질에 사상 첫 월드컵 우승을 안겼다. 이때 나이가 겨우 만 17살이었다.

1958 스웨덴월드컵에 만 17살 나이로 출전해 4경기 6골을 터뜨리며 브라질에 사상 첫 우승을 안겼던 펠레(가운데). 브라질은 결승전에서 스웨덴을 5-2로 꺾었다. AP 연합뉴스

펠레는 이후 1962 칠레월드컵에서 우승하며 2회 연속 월드컵을 제패했다. 1966 잉글랜드월드컵 때 부상으로 이탈하며 충격적인 조별리그 탈락을 겪었지만, 1970 멕시코월드컵에 다시 출전해 6경기 4골을 기록하며 브라질에 세번째 월드컵 우승을 선물했다. 월드컵 통산 12골8도움. 그가 쌓은 월드컵 3회 우승이란 기록은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거대한 산으로 남았다.

펠레는 브라질에서 축구 영웅 그 이상이었다. 사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브라질은 축구로 유명한 나라가 아니었다. 브라질이란 나라 자체를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펠레가 등장하면서 ‘축구는 브라질’이라는 공식이 탄생했고, 브라질은 국제무대에 성공적으로 데뷔할 수 있었다.

가난과 군사독재로 신음하던 시절에도 펠레는 희망이자 꿈이었다. 펠레는 식민지배 역사와 비참한 현실을 넘어 브라질도 세계에서 우뚝 설 수 있다는 증거였다. 그는 브라질에서 ‘국보’ 대접을 받았고, 유럽 명문 구단들이 그를 데려갈 수 없도록 하는 조처가 취해지기도 했다.

선수생활에서 은퇴한 펠레는 정치인으로 변신해 스포츠계 반부패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그는 군사정권 반대 운동을 벌였던 사회학자 페르난두 카르도주가 1994년 대통령에 당선된 뒤 체육부 장관을 맡았다. 기득권과 부패가 지배하던 브라질 축구계를 쇄신하기 위해 그는 다시 뛰기 시작했다.

다만 펠레는 전성기를 보냈던 군사정권 시절에 부조리에 침묵했다는 이유로 비판을 받는다. 정권이 저지른 고문, 살인 등을 눈감았다는 지적이다. 브라질에선 1964년 군사 쿠데타가 일어났고, 이들 정권은 펠레를 초청해 만나는 등 그를 정치적으로 이용했다. 펠레는 이에 순응했고, 군사독재에 대한 비판적인 입장을 낸 적이 없다. 당시 그는 월드컵 2회 우승을 브라질에 가져다준 존재로, 그 행보 하나하나가 국민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쳤기 때문에 비판이 더욱 무거웠다.

펠레는 세상을 떠나기 전 새로운 최고의 탄생을 지켜봤다. 리오넬 메시가 이끄는 아르헨티나가 2022 카타르월드컵 우승컵을 들었기 때문이다. 메시는 이 대회에 우승하며 펠레, 디에고 마라도나(아르헨티나)에 이어 역대 세번째로 ‘고트’(GOAT·역대 최고 선수) 반열에 올랐다. 펠레는 그 첫 주자였다. 펠레는 결승전이 끝난 뒤 인스타그램에 “메시가 첫 월드컵 우승을 차지했다. 그의 축구 인생에 걸맞은 결과”라며 “아르헨티나의 우승을 축하한다. 디에고 마라도나도 웃고 있을 것”이라고 썼다.

펠레 사망 뒤 그의 인스타그램에는 “오늘 평화롭게 세상을 떠난 ‘황제' 펠레의 여정에는 영감과 사랑이 깃들었다. 그는 스포츠에 관한 천재성으로 세계를 매료했고, 전쟁을 멈추게 했고, 전세계에서 사회적 사업을 수행했으며, 우리의 모든 문제에 대한 치료법이라고 믿었던 사랑을 퍼뜨렸다. 그의 메시지는 미래 세대들에게 유산이 된다. 사랑, 사랑, 사랑. 영원히”라고 적힌 게시물이 올라왔다.

이준희 기자 givenhapp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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