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축구 황제’ 펠레 별세···향년 82세

김서영 기자 2022. 12. 30. 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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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3차례 우승 축구 ‘전설’
브라질 사흘간 애도기간 선포
팬들과 마지막 인사 후 영면에
펠레 인스타그램 마지막 메시지. 인스타그램 캡처

브라질에 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세 번이나 안긴 ‘축구 황제’ 펠레(82)가 대장암 투병 끝에 29일(현지시간) 세상을 떠났다.

A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펠레는 이날 브라질 상파울루 앨버트 아인슈타인 병원에서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눈을 감았다. 병원 측은 “펠레가 현지시간으로 29일 오후 3시 27분 사망했다”며 “그가 앓고 있던 질병들과 대장암의 진행으로 인한 다발성 장기부전이 사망 원인”이라고 밝혔다. 펠레의 딸 켈리 나시멘투도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우리는 당신을 영원히 사랑합니다. 편히 잠드세요”라며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전했다.

펠레는 2021년 9월 대장암 수술을 받고 퇴원했으나 최근 상태가 나빠져 지난 11월부터 이 병원에 입원했다. 앞서 의료진이 “항암치료 등 화학 요법이 더는 효과가 없다고 판단해 상태가 나빠지지 않도록 주력하는 중”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펠레의 인스타그램에는 고인이 생전 환하게 웃는 사진과 함께 그가 남긴 마지막 메시지가 올라왔다. “금일 세상을 떠난 ‘왕’, 펠레의 여정에는 영감과 사랑이 있었다. 그는 스포츠에 관한 천재성으로 세상을 매혹시켰고, 전쟁을 멈추게 했으며, 전 세계에서 사회적 사업을 수행하고, 우리의 모든 문제에 대한 치료법이라고 믿었던 사랑을 전파했다. 그의 메시지는 미래 세대를 위한 유산이 됐다.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하라. 영원히”

2006년 5월18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에서 브라질의 축구 황제 펠레가 자서전 출판 기념회를 열었다. 로이터연합뉴스

펠레는 1940년 브라질 남동부 미나스제라이스주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에드송 아란치스 두나시멘투’다. 평소 존경하던 골키퍼 ‘빌레’의 이름을 ‘펠레’로 잘못 발음해서 생긴 애칭이다.

펠레는 빈민촌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무명 축구선수였던 아버지에게 축구를 배웠다. 상파울루주를 연고지로 하는 산투스 FC 유소년팀에 입단했으며, 1956년 산투스 FC 선수가 됐다. 이후 브라질 리그 득점왕으로 발돋움했으며 1957년 브라질 국가대표팀으로 발탁됐다.

그는 1958년 스웨덴 월드컵을 통해 세계 무대에서도 존재감을 각인하며 스타가 됐다. 당시 17세 어린 나이로 4경기 6골 2도움을 기록하며 브라질에 사상 첫 월드컵 우승이란 영예를 안겼다. 펠레가 이끄는 브라질 대표팀은 1962년 칠레 월드컵에서도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며 2연패를 달성했다. 1970년 멕시코 월드컵은 그의 마지막 월드컵 무대로, 브라질은 또다시 우승을 차지했다.

월드컵이 1930년 시작된 이래 한 국가가 세 차례 우승하는 것은 브라질이 최초였다. 개최국 멕시코는 펠레를 위해 우승컵인 줄리메컵을 별도 제작해 수여했다. 개인에게 우승컵이 수여된 사례는 펠레가 유일무이하다.

브라질 리우 데 자네이루의 구세주 그리수도상이 29일(현지시간) 축구 황제 펠레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브라질 국기 색으로 조명을 밝혔다. AP연합뉴스

펠레는 ‘1281골’이란 기록을 보유했다. 전성기엔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으며 1969년 그가 나이지리아를 방문하자 48시간 동안 내전이 중단되기도 했다고 AFP통신은 전했다. 은퇴 후 월드컵을 비롯한 큰 축구 경기가 열릴 때면 우승팀이나 승리팀을 예측하기도 했는데, 그 예측이 틀리는 경우가 주로 알려지며 ‘펠레의 저주’란 징크스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펠레는 지도자의 길과는 다른 방식으로 축구 발전에 기여했다. 1995~1998년 체육부장관으로 입각해 브라질 최초 흑인 장관이 됐으며 친선대사 등을 역임했다.

2022 카타르 월드컵을 앞두고 펠레는 브라질 대표팀에 “우승 트로피를 들고 오라”고 격려했다. 그러나 브라질이 8강전에서 크로아티아와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패배하면서 펠레는 고국의 통산 6번째 우승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게 됐다. 투병 중에도 월드컵을 지켜본 그는 이번 우승국인 아르헨티나의 리오넬 메시를 두고 “우승할 자격이 있다”고 했다. 또한 준우승을 거둔 프랑스의 킬리안 음바페에겐 “축구의 미래”라고 칭찬했다.

축구 팬들이 29일(현지시간) 브라질 상파울루 앨버트 아인슈타인 병원에 걸린 ‘영원한 왕 펠레’ 현수막 앞에 서있다. 브라질의 축구 황제 펠레는 이날 이 병원에서 암투병 끝에 숨을 거뒀다. AFP연합뉴스

축구 황제를 잃은 브라질은 슬픔에 잠겼다. 브라질 정부는 사흘간 국가 애도기간을 선포했다. 취임을 앞둔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 당선인은 펠레의 등번호 10번을 언급하며 “펠레와 견줄 만한 10번 선수는 없었다”고 트위터에 밝혔다. 그는 또한 “세계에서 그보다 더 유명한 브라질인 거의 없을 것”이라며 “그는 단순히 경기한 게 아니라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았다. 고마워요, 펠레”라고 덧붙였다.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실도 성명을 내 “역대 최고 선수 중 한 명이자, 훌륭한 시민이었고 애국자였다”고 애도했다.

브라질 대표팀 간판선수 네이마르는 펠레의 뒤를 이어 등번호 10번을 달고 뛰었다. 그는 “펠레 이전에 10은 하나의 숫자에 불과했다”며 “그 이전의 축구는 그저 스포츠였지만, 그는 축구를 예술로 바꿔놨다”고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밝혔다. 이와 더불어 생전 펠레와 함께 찍은 사진을 게시하며 “축구와 브라질은 왕(펠레) 덕분에 지금의 명성을 얻었다. 그는 떠났지만, 그의 마법은 남아 있다. 펠레는 영원하다”고 추모했다.

29일(현지시간) 브라질 ‘축구황제’ 펠레가 사망한 후 영국 런던의 웸블리 스타디움정문 전광판에 고인의 생몰연도가 떠 있다. AP연합뉴스

현재 최고의 축구 커리어를 쌓아 올린 리오넬 메시도 인스타그램에 펠레와 함께 나온 사진을 게시하고 “편히 잠드소서”라고 적었다. 포르투갈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영원한 왕 펠레에게 단순히 ‘안녕’이라고 하는 건 지금 축구계 전체를 감싼 고통을 표현하기엔 부족할 것이다. 그는 수많은 사람에게 영감을 주고, 어제도, 오늘도, 언제나 기준이 되는 존재”라고 추모했다.

프랑스의 킬리안 음바페도 “축구의 왕은 우리를 떠났지만, 그의 유산은 절대 잊히지 않을 것”이라며 명복을 빌었다. 폴란드의 로베르토 레반도프스키는 “천국은 새로운 별을 얻었고, 축구계는 영웅을 잃었다”고 적었다.

생전 그가 뛰었던 산투스 FC 측은 성명을 내 다음달 2일 빌라 베우미루 구장에서 24시간 동안 시민 조문을 받는다고 알렸다. 당일 펠레의 유해는 팬들과의 마지막 인사를 위해 상파울루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병원에서부터 운구될 예정이다. 입관 절차는 이튿날 진행한다. 고인은 올해 100세를 맞은 모친 자택 앞을 지난 뒤 산투스 묘지에서 영면에 든다.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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