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6번째 우승 못 보고… '축구 황제' 펠레 하늘로

김태훈 2022. 12. 30.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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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에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 우승의 영예를 3차례나 안긴 20세기 '축구 황제' 펠레가 대장암 투병 끝에 82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얼마 전 끝난 카타르 월드컵 당시 브라질의 통산 6번째 우승을 간절히 염원했던 그는 끝내 이를 보지 못한 채 지상의 축구팬들과 영원히 작별했다.

고인이 이끈 브라질은 1962년 칠레 월드컵에서도 우승컵을 들어올리며 2연패를 달성했다.

고인은 브라질이 우승하지 못한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까지 포함해 그가 출전한 4차례 월드컵에서 총 12골을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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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파울루 병원서 대장암 투병 끝에 타계
1958·1962·1970년 월드컵 3회 우승 주역
IOC가 선정한 '20세기 최고의 운동선수'
최근 대표팀에 "6번째 트로피 보고 싶다"
브라질에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 우승의 영예를 3차례나 안긴 20세기 ‘축구 황제’ 펠레가 대장암 투병 끝에 82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얼마 전 끝난 카타르 월드컵 당시 브라질의 통산 6번째 우승을 간절히 염원했던 그는 끝내 이를 보지 못한 채 지상의 축구팬들과 영원히 작별했다.
브라질이 낳은 20세기의 ‘축구 황제’ 펠레(1940∼2022). 브라질의 통산 6번째 월드컵 우승을 보지 못하고 대장암 투병 끝에 82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AFP연합뉴스
29일(현지시간) AP 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펠레는 이날 상파울루의 앨버트 아인슈타인 병원에서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뒀다. 고인은 2021년 9월 대장암 수술을 받고 퇴원했으나 최근 증세가 다시 악화해 지난 11월부터 이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아왔다. 앞서 병원 측은 “항암치료 등 화학 요법이 더는 효과가 없다고 판단해 상태가 더 나빠지지 않도록 하는 치료에만 주력하는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본명이 ‘이드송 아란치스 두나시멘투’인 고인은 1940년 브라질 남동부에 있는 미나스제라이스주(州)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수입이 적은 무명 축구선수였다. 빈민촌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고인은 평소 좋아했던 골키퍼 ‘빌레’의 이름을 ‘펠레’라고 잘못 발음한 것이 계기가 돼 애칭으로 굳어졌다고 한다.

아버지한테 직접 축구를 배운 펠레는 일찌감치 공부를 포기하고 상파울루주를 연고지로 한 강호 산투스 FC 유소년팀에 입단했다. 1956년 정식으로 산투스 FC 선수가 된 뒤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며 브라질 리그 득점왕으로 이름을 날렸다. 이듬해인 1957년에는 국가대표팀 선수로 발탁돼 아르헨티나와의 경기에서 A매치 데뷔 골을 넣었다.

고인을 세계적 스타의 반열에 올려놓은 것은 1958년 스웨덴 월드컵이다. 17세의 어린 나이에 4경기에서 6골 2도움을 기록하며 브라질에 사상 첫 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안겼다. 고인이 이끈 브라질은 1962년 칠레 월드컵에서도 우승컵을 들어올리며 2연패를 달성했다. 1970년 멕시코 월드컵은 고인이 뛴 마지막 월드컵 무대로 이번에도 고인의 맹활약에 힘입어 브라질이 우승을 차지했다. 1930년 월드컵이 창설된 이래 처음으로 한 국가가 3번 우승하는 기록을 세운 것이다. 이를 기념해 브라질은 우승 트로피 ‘줄리메컵’을 영구 소유하는 영광을 누렸다.
브라질이 1970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우승한 직후 펠레가 동료 선수 품에 안겨 환호하고 있다. 당시 그의 나이 29세였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고인은 브라질이 우승하지 못한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까지 포함해 그가 출전한 4차례 월드컵에서 총 12골을 넣었다. 1971년 7월 국가대표팀을 떠날 때까지 A매치에서만 77골을 기록했다. 이는 브라질 대표팀 역사상 네이마르(30·파리 생제르맹)와 더불어 가장 많은 숫자다. ‘축구 불모지’ 미국에 축구 붐을 일으키겠다는 야심을 품고 3년간 미국 리그에서 뛰기도 했던 고인은 1977년 37세의 나이로 선수생활을 완전히 접었다.
은퇴 후 축구팀 감독이 되는 등 지도자의 길을 걷지 않은 고인은 체육부 장관을 맡아 축구를 비롯한 브라질 스포츠 발전에 전념했으며 방송해설가로도 활동했다. 1999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고인을 ‘20세기 최고의 운동선수’로 선정하는 등 숱한 상과 영예가 뒤따랐다. 조국 브라질이 주최한 2014년 월드컵의 경우 명예 홍보대사를 지냈다.
선수 시절 브라질에 3차례 월드컵 우승을 선사한 펠레가 월드컵 트로피를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은 2014년 그가 브라질 월드컵 명예 홍보대사로 일하던 시절의 모습. AFP연합뉴스
올해 카타르 월드컵이 열리자 대장암 투병 중이던 고인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브라질 대표팀에 “챔피언 트로피를 들고 오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하지만 브라질은 8강전에서 ‘복병‘ 크로아티아와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패함으로써 고인에게 우승컵을 선물하려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병석에서 월드컵을 끝까지 지켜본 고인은 SNS 글에서 아르헨티나의 리오넬 메시(35·파리 생제르맹)를 향해 “우승할 자격이 있다”고 칭찬했다. 자신이 일찌감치 ‘후계자’로 점찍은 준우승국 프랑스의 킬리안 음바페(24·파리 생제르맹)에겐 “축구의 미래”라고 격려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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