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살인사건에 악용된 뱃길 보안…무엇이 문제였나

오현지 기자 2022. 12. 30. 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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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 전후 연습까지 3차례 신분 도용해 여객선 탑승
현행법상 보안검색 의무조항 없어…신분증 대조가 전부
지난 16일 범행 후 제주항에서 여객선에 승선하는 강도살인 피의자 김씨와 이씨.(제주동부경찰서 제공)

(제주=뉴스1) 오현지 기자 = 제주 유명 식당 대표를 살해한 50대 남성은 범행 전후 타인 명의를 도용해 3차례나 여객선을 타고 제주를 오갔다. 항만 내 신분 확인이 신분증과 승선권 이름 대조에 그쳤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국내 연안여객선 보안검색이 강화되기 위해서는 법적 체계 정비부터 예산 마련, 시민 인식 변화까지 각종 난제가 산적해 있다.

◇살인 전후 신분도용 연습도…3번 다 뚫렸다

제주항 전경. 2022.12.30/뉴스1

30일 제주동부경찰서에 따르면 강도살인 혐의로 구속 송치된 김모씨(50)는 피해자 A씨를 살해하기 전날인 지난 15일과 살해한 당일 배편으로 제주에 오가며 지인의 신분증을 도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신분을 숨겨 경찰 수사망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김씨는 이에 앞서 여객선 보안 검색이 얼마나 허술한지 미리 확인하기 위해 2차례에 걸쳐 예행연습까지 했다.

지난달 24일에는 자신의 신분증을 사용해 여수발 제주행 승선권을 정상적으로 예매한 뒤 선사 직원이 승객 마스크를 내려 얼굴을 제대로 살펴보는지 등을 살폈다.

허술한 절차를 확인한 김씨는 지난달 29일 같은 배편을 타고 제주에 입도하며 처음으로 타인의 신분증을 사용했다. 이때 탑승에 무리 없이 성공하며 지난 15일과 16일에도 지인의 신분증을 이용해 제주를 오가기로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제주항 여객선터미널에서 신분증 확인은 매표소, 개찰구, 여객선 앞에서 3차례에 걸쳐 이뤄진다.

다만 김씨가 이미 모바일 탑승권을 소지하고 있어 매표소에서 이뤄지는 신분증 검사는 받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개찰구와 여객선 앞 신분 확인은 제주도로부터 여객터미널 운영을 위탁받은 한국해운조합 제주지부 직원들과 선사 측이 담당한다. 그러나 확인 절차는 신분증에 기재된 이름과 승선권 이름이 일치하는지만 대조하는 데 그친다. 김씨가 아무런 제지 없이 3번이나 신분 도용 탑승이 가능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 보안검색 법적 의무 없어…신분검사 완화 민원도 빗발

제주항 여객선터미널 전광판에 신분증 검사를 알리는 안내문이 나오고 있다. 2022.12.30/뉴스1

항만 보안검색 절차의 부실함을 파악한 제주경찰은 관계기관에 항만 여객터미널 보안 체계 고도화를 요청할 방침이다.

해당 선사 측 관계자는 "국내선이라 국외선처럼 신분증 위·변조를 확인할 수 있는 신분증 조회시스템이 도입되지 않아 육안으로만 확인이 가능하다"며 "승선권과 이름, 얼굴을 대조 확인하고 있으나 코로나로 마스크를 착용해 이 또한 정확한 확인이 어려운 실정"이라고 말했다.

여객터미널 보안검색 강화의 필요성을 보여주는 대목이지만 현실과는 동떨어진 문제다.

현행법상 국내 여객선은 국제 여객선과 달리 보안검색 의무 조항이 없다. 국제 여객선의 경우 '국제선박항만보안법'에 따라 승객과 휴대물품, 위탁수하물에 대한 보안검색을 실시한다. 또 경비·검색인력 역시 청원경찰을 고용하거나 특수경비업무 허가를 받은 업체에 위탁해야 한다.

전 남편을 살해한 고유정 사건 당시 시신을 트렁크에 숨긴 후 여객선에 승선한 사실이 드러나며 승객과 휴대물품, 위탁수하물 등에 대한 보안검색을 의무화하는 개정안이 발의됐으나 임기만료로 진전 없이 폐기됐다.

해운법에 따라 선사에 부여된 의무는 승선하려는 승객에게 신분증 제시를 요구하고, 승선권 기재내용을 확인하는 것뿐이다. 이를 어길 시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세월호 참사 당시 부실한 신원확인 시스템이 도마에 오른 후 신설된 규정이다.

김씨 사례처럼 허술한 탑승자 관리로 도용 사례를 걸러내지 못했다 하더라도 아무런 법적 제재를 받지 않는다.

법안 통과부터 예산 마련까지 각종 난제가 산적해 있을 뿐 아니라 시민 인식도 함께 발을 맞춰야 하는 상황이다.

해양수산부 관계자는 "제주도는 특수한 상황이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여객선은 섬 주민들의 교통수단"이라며 "섬의 경우 고령자분들이 여객선을 많이 이용하는데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보안검색 시스템을 고도화하는 데 장애물이 있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실 보안검색 강화에 대한 여론만이 아니라 신분증 검사 완화에 대한 민원도 수없이 많이 들어온다"며 "제주에만 도입한다 해도 다른 지역은 안 하는데 왜 제주만 하느냐는 민원도 빗발칠 수 있어 주민들의 여론도 모아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ohoh@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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