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원식 “어릴때 별명은 ‘우거지’… 카센터 경력, 엔진오일 교환 잘해” [인터뷰]

2022. 12. 30.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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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손 다 부르트고 피가 날 때까지 놀아… 별명 ‘우거지’
우 의원 “자식들이 아버지의 삶, 의미있는 삶이라고 말하더라”
우 의원 딸 ‘그래도 엄마·아빠가 집에 있었으면 좋겠어’ 펑펑
‘잘하는 국민의힘 의원?’… “주호영 잘한다”, “김예지도 주목”
우원식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이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상섭 기자

[헤럴드경제=홍석희·이세진 기자]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은 자신의 어렸을 때 별명을 ‘우거지’라고 소개했다. 우 의원은 “아주 노는 것을 좋아하는 어린이였다. ‘우원식이랑 놀면 재미가 있다’는 것이 소문이 날 정도로 노는 것도 야무지게 노는 어린이”였다고 회상했다.

우 의원은 “내가 어렸을 때를 보낸 곳이 왕십리 행당동이었다. 그 땐 겨울에 나가서 놀면 썰매타고 딱지먹기, 구슬치기를 하고 그랬었다. 그러면 손등이 다 트고 피가 나고 그랬는데 그래서 ‘우거지’가 별명이었다”며 “성이 우씨고 매일 거지같이 바깥에서 노는 것을 좋아해서 붙여진 별명이었다”고 소개했다.

우 의원은 “동네에선 우원식 하면 가장 잘 노는 아이로 소문이 났었다. 한번은 동네 형들이 휘발유를 구해와서 나무를 모아 불을 붙이는 것을 봤는데, 너무 재미있어 보였다. 그래서 형들이 휘발유를 몰래 숨겼던 장소를 봐뒀다가 휘발유를 빼서 불을 붙이며 놀기도 했었다”고 말했다.

우 의원은 친구를 ‘쩔뚝발이’라고 놀렸던 동네 형을 때렸었던 일도 소개했다. 우 의원은 “친한 친구 중에 소아마비가 걸려 다리를 저는 친구가 있었다. 내가 7~8살 때였던 것 같은데 그때 동네 형이 친구를 ‘쩔뚝발이’라고 놀렸었다. 친구랑 둘이 가서 그 형을 때려줬었던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우 의원은 ‘정의감이 어렸을 때부터 있었던 것이냐’는 질문에 “그런거 아니었을까”라고 말하며 웃었다.

우 의원은 ‘놀 때도 공부할 때도’ 확실히 하던 청년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우 의원은 중고등학교 시절을 물어보는 질문에 “마음에 맞는 친구들과 보컬을 했었다. 쓰레기통을 뒤집어 놓고 두들기는 골든보이스라는 보컬을 했었다”며 “고등학교 때엔 사진반을 열심히 해서 사진반 반장을 해서 사진협회가 주는 은상을 받았던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우 의원은 “당시 경동고에 입학 할 때 꽤 성적이 좋았었다. 그런데 사진을 찍는데 완전히 빠져서 고등학교 2학년2학기가 끝날 때 한 반에 55명이었는데 야구부 2명을 빼고 내가 53등을 했었다”고 말했다.

우 의원은 ‘대학은 어떻게 진학하셨냐’는 질문에 “그 때 반에서 꼴찌를 하고 부모님께 혼이 크게 났다. 사진반에서 쓰던 부모님 카메라도 뺏기면서 사진을 못 찍게 됐다. 그 때부터 공부를 해서 대학을 들어갔다”고 말했다. 우 의원은 고3 때 ‘벼락치기’ 공부로 대입에 성공하신 것이냐는 질문에 “경동고가 그 때 공부를 잘하는 학교긴 했었다”고 말했다.

우원식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이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상섭 기자

우 의원은 약 한시간 반 동안의 인터뷰에서 자식 이야기를 할 때 가장 얼굴이 밝았다. 우 의원은 집에서 ‘좋은 아버지시냐’는 질문에 “내가 말하는 게 아니고 애들이 나보고 ‘좋은 아빠’라고 하더라”며 “아버지가 택해서 살았던 삶이 의미있는 삶이라고 자식들이 얘기하더라”고 말했다.

우 의원은 다만 ‘자식들 뒷바라지’를 제대로 해주지 못했던 것에 대해선 미안해 했다. 우 의원은 “제 배우자도 80년대 후반 한국여성민우회와 환경운동연합 등 시민사회활동을 했다”며 “그러다보니 (돈이 부족해) 생활이 어려웠고, 배우자가 놀이방을 하면서 사회운동을 했다”고 말했다.

우 의원은 “애들을 잘 봐주질 못했다. 나도 배우자도 마찬가지였다. 사실상 애들끼리 자랐다”고 했다. 우 의원은 “여성민우회에서 우리 딸(초등학교 2학년) 인터뷰를 했는데 ‘엄마·아빠가 매일 나가서 활동을 하는데 어떠냐’고 묻자 처음엔 딸이 ’엄마·아빠가 좋은일 해서 다좋다’고 했는데 여러차례 물어보니 딸이 ‘그래도 엄마아빠가 집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면서 펑펑 울었었다”고 말했다.

우 의원은 “미안함도 있고 또다른 측면에선 그런 부모를 보면서 굉장히 건강하게 자라서 좋은 엄마아빠라고 평가하면 우리애들이 ‘저건 올바른 길이다’는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며 “그런데 너무 어렸을 때 부부가 다 못봐줘서 그건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우 의원은 구멍난 타이어를 수리하는 것과 엔진오일 교환은 아주 잘한다고 했다. 우 의원은 “대학 시절 노동운동을 하다가 정권에 찍혀서 위장취업 활동을 할 수 없게 됐다”며 “그래서 연세대 앞에서 서점을 했는데 이마저도 ‘노학연계의 고리다’고 오해를 받아 카센터를 하게 됐다. 내가 그래서 빵꾸 떼우는 것이랑 엔진오일 교환하는 건 잘한다”고 말하며 웃었다.

우 의원은 ‘잘하는 국민의힘 의원을 꼽아달라’는 질문에 “여당에선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참 잘하는 것 같더라. 그리고 김예지 의원도 사회활동 하다 보면 ‘잘한다’는 의견들이 많이 들어오는데 눈여겨 보고 있다. 김 의원도 우수한 의원”이라고 말했다.

hong@heraldcorp.com

jin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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