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로 뻗는 K기업] 韓 방산 왜 뜨나 “빨리 싸게 잘 만들어”
“기다리던 물건이 빠르게 도착했다. 러시아의 침공과 우크라이나 전쟁 국면에서 한국 무기의 신속한 인도는 매우 중요하다.”
이달 6일(현지 시각) 폴란드 그드니아(Gdynia)에서 열린 ‘K2 전차·K9 자주포 입하 환영식’에서 안제이 두다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수입한 무기가 들어오는 날에 대통령이 직접 현장을 방문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이날 현대로템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K2 전차 10대와 K9 자주포 24문을 폴란드에 인도했다. 지난 8월 1차 실행계약 체결 이후 약 4개월 만에 초도 물량이 현지에 도착한 것이다. 폴란드가 긴급하게 요청해 최대한 신속하게 인도했다. 폴란드 대통령은 수도에서 300㎞ 떨어진 그드니아 항구까지 찾아와 국산 무기를 반겼다.
한국 방위산업이 건국 이래 최대 호황기를 맞고 있다. 국내 방산업체들은 올해 폴란드와 K2 전차, K9 자주포, K239 천무 다연장로켓, FA-50 경공격기 수출 계약을 맺었다. 1월에는 아랍에미리트(UAE)에 천궁2 지대공미사일·레이더를, 2월에는 이집트에 K9 자주포를 수출하기로 했다.
올해 초 발발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길어져 주요 당사국의 전력 손실이 확대되고 있는 시점에서 ‘가성비’와 ‘빠른 납기’라는 K-방산의 특징이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으로 자리 잡고 있다.
러시아와 오랜 기간 대립 관계에 있던 폴란드는 사실상 준전시 상태에 놓여 있다. 폴란드는 우크라이나와 국경이 맞닿아 있어 우크라이나 방어를 위해 자국 군대가 사용하던 전차 400대 중 200대를 비롯해 자주포, 다연장 로켓, 장갑차 등을 내어주며 지원을 이어 오고 있다. 단기간에 대량의 무기를 반출하면서 폴란드 국방력은 일시적 공백 상태에 놓였고, 결국 새로운 무기를 이른 시간 안에 도입해야 하는 상황에 부닥쳤다.
현재 미국, 영국, 독일 등 주요 무기 수출국은 우크라이나에 제공한 자국 무기들을 다시 보충하는 데도 벅찬 상황이다. 미국은 하이마스 로켓포, T-72 전차, 재블린 대전차미사일, 스팅어 지대공미사일 등 총 197억달러(약 26조원) 이상의 자국 무기를 우크라이나에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과 독일 역시 조(兆) 단위의 무기를 우크라이나에 지원해 자국 비축분을 재확충하는 데도 최소 2~3년 이상 소요될 전망이다.
폴란드의 선택은 한국이었다. 한국은 그간 ‘휴전 국가’라는 특수한 상황하에서 주요 무기를 국산화하기 위한 개발과 생산을 꾸준히 진행해 왔다. 그 결과 현재 한국 방위산업 무기체계 수준은 선진국 대비 80~90% 수준까지 올라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대로템은 폴란드에 3년 안에 K2 전차 180대를 인도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이는 경쟁사인 독일의 레오파르트2 전차보다 5배 가까운 물량을 절반 수준의 가격에 빠르게 인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독일의 경우 전차 생산라인이 닫혀있어 추가 생산을 위해 생산 라인을 조정·증설하려면 시간이 걸리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계속 전차를 생산해 왔던 현대로템은 이러한 작업이 필요 없었기 때문에 빨리 국방력을 보완해야 하는 폴란드의 선택을 받을 수 있었다.
폴란드는 미국의 하이마스(HIMARS) 고속기동포병로켓시스템을 구입하려고 했으나, 미국도 폴란드가 원하는 일정을 충족시키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폴란드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K239 천무 다연장로켓을 선택해 급한 불을 끄고 하이마스를 추후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K9 자주포의 경우 지난해 기준 세계 자주포 수출 시장에서 점유율 50%를 차지했을 만큼 성능이 검증된 모델이다. 터키, 인도, 호주, 에스토니아 등 9개 국가에서 운용 중이며, 꾸준히 생산 라인을 가동하면서 가격과 유지보수 부담을 낮추는 ‘규모의 경제’를 실현 중이다.
KAI의 FA-50 역시 국산 초음속 고등훈련기 T-50을 개량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도입 및 운용 유지비가 저렴하다. 대당 가격도 약 500억원으로, 현역 전투기 중 가장 많이 팔리는 미국 록히드마틴의 F-16의 절반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또 FA-50은 F-16과 호환성이 높아 FA-50으로 훈련한 조종사가 향후 F-16으로 쉽게 기종 전환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이처럼 세계 각국이 군비를 늘리는 상황에서 주요 방산 수출국의 생산 능력에 제한이 걸리며 한국 방위산업이 나설 자리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현재 노르웨이, 말레이시아, 호주, 사우디아라비아 등도 한국산 무기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장원준 산업연구원 성장동력산업연구본부 연구위원은 “미국과 독일 등에서 무기를 수입하고자 했던 국가들은 납기 일정 지연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며 “한국은 기업뿐만 아니라 국방부와 방위사업청이 적극적인 지원에 나서면서 구매국가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 Copyright ⓒ 조선비즈 & Chosun.com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속보] ‘선거법 위반’ 이재명 대표, 1심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당선무효형
- 정부효율부 구인 나선 머스크 “주 80시간 근무에 무보수, 초고지능이어야”
- TSMC, 美 공장 ‘미국인 차별’로 고소 당해… 가동 전부터 파열음
- [절세의神] 판례 바뀌어 ‘경정청구’했더니… 양도세 1.6억 돌려받았다
- 무비자에 급 높인 주한대사, 정상회담까지… 한국에 공들이는 中, 속내는
- 금투세 폐지시킨 개미들... “이번엔 민주당 지지해야겠다”는 이유는
- 5년 전 알테오젠이 맺은 계약 가치 알아봤다면… 지금 증권가는 바이오 공부 삼매경
- 반도체 업계, 트럼프 재집권에 中 ‘엑소더스’ 가속… 베트남에는 투자 러시
- [단독] 中企 수수료 더 받아 시정명령… 불복한 홈앤쇼핑, 과기부에 행정訴 패소
- 고려아연이 꺼낸 ‘소수주주 과반결의제’, 영풍·MBK 견제 가능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