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의조가 부르고 싶을 노래 '니가 사는 그집' [월드컵, 그후①]
[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니가 사는 그 집, 그 집이 내 집이었어야 해. 니가 타는 그 차, 그 차가 내 차였어야해.'
박진영의 노래 '니가 사는 그집'. 딱 축구대표팀 공격수인 황의조(30)가 부르고 싶을 노래가 아닐까. 지금 '월드컵 스타'로 뜨거운 조규성이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이 사실 황의조가 누렸어야 할 것들이다.
월드컵 직전에 잘못된 이적, 이로 인한 경기력 저하가 가져온 나비효과는 축구계에 '월드컵 직전에 신중하게 이적을 해야하는 대표적 사례'의 교훈만 남기게 됐다.
2018년 9월 파울루 벤투호 출범 이후 수많은 선수들이 대표팀을 거쳤지만 '벤투호 최다골'의 주인공은 황의조였다. 황의조는 벤투호에서 월드컵 직전까지 38경기 15골로 경기당 0.4득점가량으로 가장 믿을만한 득점원이었다. 월드컵 직전까지 손흥민(12골), 권창훈(8골), 황희찬(7골)도 대표팀에서 황의조의 득점력에는 미치지 못했다.
이러다 보니 벤투호에서 황의조는 항상 부동의 원톱 주전이었다. 황의조를 주전으로 여기고 백업 공격수 자리를 놓고 정말 많은 이들이 거치며 경쟁했다. 김신욱, 석현준, 이정협 등이 백업 경쟁을 해오다 2021년 9월, A매치 데뷔전을 가진 조규성이 급부상한다.
FC안양과 전북 현대 시절에도 좋은 공격수였지만 상무 군입대 이후 벌크업을 해 원래 장점이던 많은 활동량에 피지컬까지 갖춘 공격수가 된 조규성. 슈팅이나 골결정력, 라인 브레이킹 등이 황의조의 장점이라면 조규성은 다른 매력으로 벤투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결국 월드컵을 1년여 앞두고 떠오른 조규성이 그동안 비어 있던 황의조 백업 자리를 확실히 꿰찼다.
모두가 '황의조가 주전 공격수, 조규성이 백업 공격수'로 월드컵에서 활약할거라 봤다. 벤투호 최다 득점자와 이제 갓 떠오른 공격수의 구도다보니 당연한 평가였다.
하지만 월드컵을 직전에 앞둔 2022년 하반기, 큰 변화가 일어난다. 조규성은 2022 K리그 득점왕(17골)에 오르며 급격한 상승세를 탔다. 반면 황의조가 지롱댕 보르도의 프랑스 2부리그 강등으로 인해 그리스 올림피아코스로 이적했지만 주전 경쟁에서 밀리며 출전 기회가 급격하게 줄어든다.
결국 황의조는 올림피아코스 이적 후 두달여간 11경기 무득점이라는 매우 부진한 성적을 거뒀고 마지막 골이 6월 A매치 이집트전이었을 정도로 골감각이 떨어졌다. 황의조는 5개월간 골을 넣어보지 못한채 경기력이 급격히 떨어진 상황에서 월드컵에 합류했고 반면 조규성은 K리그 득점왕에 오르며 자신감과 가파른 상승세로 카타르에 왔다.
아무리 황의조가 벤투호 최다득점자였다 할지라도 과거의 일이다. 월드컵이 열리는 바로 그 시점에 기량과 자신감, 골감각은 조규성이 앞서있었다. 그럼에도 벤투 감독은 조별리그 1차전 우루과이전에서는 일단 황의조를 선발로 내세웠다. 그동안 보여준 것에 대한 믿음이었으리라. 그러나 황의조는 이날 경기 최고 기회였던 전반 33분 문전에서 때린 오른발 슈팅을 골대 위로 날리면서 첫 월드컵에서 실패하고 만다.
물론 단 한번의 기회로 선수를 모두 평가할 수 없지만 이 장면은 황의조가 얼마나 컨디션이 떨어졌는지 보여주는 바로미터라 판단했는지 벤투 감독은 우루과이전 교체 투입했던 조규성을 2차전 가나전에 황의조 대신 선발로 투입한다. 그리고 조규성은 헤딩 두방으로 한국 선수 최초의 월드컵 멀티골을 넣으며 일약 스타덤에 오른다.
조규성의 멀티골 이후 황의조는 나머지 경기에서 주전에서 밀려 교체투입 될 수밖에 없었다. 황의조에게 좋은 기회는 찾아오지 않았고 그렇게 황의조와 조규성의 운명은 완전히 바뀐채 월드컵이 끝난다.
결국 황의조와 조규성의 뒤바뀐 입지는 월드컵까지 오는 과정보다 결국 월드컵 경기가 있는 바로 그 순간에 어떤 기량과 컨디션인지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남게 됐다.
특히 황의조는 월드컵을 목전에 앞두고 새로운 무대와 환경으로 이적할 경우 선수가 얼마나 상황이 안 좋아질 수 있는지 선수들과 에이전트에게 깊이 각인된 반면교사의 예시가 됐다.
분명 황의조는 부정할 수 없는 한국 최고의 스트라이커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보여준 압도적 경기력은 가히 아시아 축구 역사상 최고의 스포츠 선수인 손흥민마저 '황의조 덕을 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이때부터 월드컵 직전 평가전이었던 9월 A매치까지 황의조는 분명 한국 최고 공격수였지만 월드컵이 열리는 11월에는 하필 최고가 아니었다.
그렇게 모든 것을 놓쳐버리고 자신이 누렸어야할 모든 영광을 조규성에게 넘긴 2022년의 황의조다.
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jay12@sportshank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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