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축구황제, 펠레"…메시·호날두·네이마르 등 축구계 애도 물결(종합2보)
월드컵 3회 우승·1281골 '유일 기록'
(서울=뉴스1) 최서윤 기자 = 브라질 축구 전설 펠레(에지송 아란치스 두 나시멘투)가 대장암으로 투병하던 중 29일(현지시간) 끝내 숨졌다. 향년 82세.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펠레의 의료 기록에는 "현지 시간 오후 3시 27분(한국시각 30일 새벽 3시 27분) 대장암으로 인한 다발성 장기 손상으로 사망했다"고 적혔다.
펠레의 딸 켈리 나시멘투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우리는 당신을 영원히 사랑합니다. 편히 잠드세요"라는 애도 메시지와 함께 부친의 죽음을 확인했다.
펠레의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에도 "그의 메시지는 이제 미래 세대를 위한 유산이 된다.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하라. 영원히"라는 추모 글이 올라왔다.
고인은 고관절 수술과 요로 감염으로 수차례 입원과 퇴원을 반복, 지난해와 올해는 대장암 투병을 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작년 9월 오른쪽 결장에 암 종양이 발견돼 제거 수술을 받았고, 이후 병원을 오가며 화학치료를 받다가, 지난 11월29일 심부전증과 전신 부종, 정신 착란 증상 등으로 재입원했다.
상파울루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병원에서 치료를 이어온 가운데, 최근 암의 진행이 더 진행되면서 상태가 위독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펠레는 1958년·1962년·1970년 세 번의 월드컵에서 브라질을 우승으로 이끌고, 지금까지 1281골을 넣은 세계 기록을 보유한 '축구 전설'이다.
맨발의 가난을 딛고 공 하나로 세계를 재패, 1977년 은퇴 전까지 '왕(O Rei)'으로 칭송받았다. 이제 세계 유일 기록을 보유한 '살아있는 전설'에서 영원한 전설로 남게 됐다.
◇축구계 애도 물결
축구계는 애도 물결이 일고 있다.
2022 국제축구연맹(FIFA) 카타르 월드컵 우승의 주역 아르헨티나 리오넬 메시는 트위터에 생전 고인과 찍은 사진을 올리고 작별을 고했다. 메시는 펠레의 비보를 전한 뒤 "펠레, 편히 잠드소서"라고 적었다.
브라질 대표팀의 네이마르는 인스타그램에 고인의 선수 시절 등번호를 언급, "펠레 이전까지 '10'은 숫자에 불과했다"고 적었다. 또 "펠레 이전에 축구는 그저 스포츠였다면, 그는 축구를 예술로, 오락으로 바꿨다"고 했다.
네이마르는 "축구와 브라질은 왕(펠레) 덕분에 지위를 얻었다"면서 "펠레는 떠났지만 그의 마법은 남을 것이다. 펠레는 영원하다"고 고인을 기렸다.
포르투갈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인스타그램에 "펠레는 수백만 사람들에게 있어 영감의 원천"이라며 "그는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영원히 귀감"이라고 칭송했다.
호날두는 "펠레는 결코 잊히지 않을 것"이라며 "그의 기억은 우리 모든 축구 애호가들에게 영원히 남을 것이다. 왕 펠레의 명복을 빈다"고 덧붙였다.
제프 블라터 전 FIFA 회장도 트위터에 "세계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축구선수와 그의 훌륭한 인격을 애도한다"며 "당신과 당신의 삶의 업적을 존경한다. 진심으로 애도를 표한다"고 전했다.
펠레가 만년선수 시절 마지막까지 몸담았던 뉴욕 코스모스는 웹사이트에 성명을 내고 "펠레의 이름은 영원히 스포츠 예술성과 천재성의 동의어로 남을 것"이라며 "그가 축구에 끼친 지속적 영향을 다 헤아릴 수 없다"며 고인을 기렸다.
◇길거리서 땅콩 팔던 소년, 축구로 '왕'이 되기까지
펠레는 1940년 10월 23일 브라질 남동부 도시 트레스 코라코스 미나스제라이스 마을에서 태어났다. 지독하게 가난해 길거리에서 땅콩을 팔며 자란 것으로 전해진다.
부친이 한때 전도유망한 세미프로 축구선수였으나 무릎부상으로 운동을 중단한 사연도 있다.
부친은 발명가 토마스 에디슨의 이름을 따 아들의 이름을 에지송이라고 지었지만, 아들은 부친에게서 축구를 배운 뒤 같은 길을 걸었다.
동네 축구경기에서 골키퍼로 뛰면서 아이들 사이에서 바스쿠 지 상 루렝코 팀의 골키퍼 빌레와 비교됐는데, 이 과정에서 펠레라는 별칭을 얻게 된 것으로 전해진다.
펠레의 재능은 15세 때 산토스에서 프로로 뛰기 시작하면 빛을 발했다. 골키퍼가 아니라 공격형 포워드였다. 1962년 벤피카를 상대로 인터콘티넨컬컵 우승을 거두고, 1963년에는 AC 밀란을 상대했다.
펠레는 특히 공을 다루는 천재성으로 유명하다. 엄청난 속도와 체력은 물론, 헤딩과 패스, 태클 기술과 골을 넣는 데 있어서도 모두 탁월해 '삼바 축구'의 전형으로 자리매김, 브라질 축구의 '국보'로 거듭났다.
신장은 170cm로 비교적 작은 체구에도, 타고난 운동신경과 강한 집념을 가졌던 것으로 유명하다. 1950년 브라질이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에서 우루과이에 패하자 부친이 우는 모습을 보고, 언젠가는 우승컵을 집에 가져오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그 약속은 8년 뒤 지켜졌다. 1958년 브라질의 첫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을 우승으로 이끌고, 1962년과 1970년 세 차례 우승을 이어갔다. 월드컵 3회 우승 기록은 펠레가 세계에서 유일하다.
◇은퇴 후에도 활발한 활동…'펠레의 저주' 징크스도
펠레는 전성기 시절 전 세계에서 그야말로 왕족과 같은 환대를 받았다. 1969년 그가 나이지리아를 방문하자, 48시간 동안 내전이 중단된 사례도 있었다고 AFP 통신은 전했다.
페레는 유럽 무대 출전 제의를 거절했지만, 선수 생활 막바지이던 1977년에는 뉴욕 코스모스를 리그 챔피언십으로 이끌기도 했다.
은퇴 뒤에도 펠레는 스타였다. 1995~1998년에는 체육부 장관으로 입각, 브라질 최초의 흑인 장관이 됐다.
월드컵 등 각종 굵직한 대회 때마다 우승 팀을 예측하곤 했는데, 그 예측이 빗나가는 경우가 잦아 나중엔 펠레가 고른 팀이 지고 만다는 '펠레의 저주'란 징크스가 따라 붙기도 했다.
그러나 조금씩 공식석상에서 모습을 보이는 일이 줄고, 종종 휠체어를 타고 대중 앞에 서면서 건강 문제가 제기됐다.
이후 고관절 수술과 요로 감염으로 수차례 입원과 퇴원을 반복, 지난해와 올해는 대장암 투병을 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오랜 친구이자 라이벌 디에고 마라도나를 먼저 떠나 보낸 경험도 있다. 2020년 마라도나가 60세의 나이에 심장마비로 숨지자, 펠레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그를 애도했다.
당시 펠레는 "세계는 전설을 잃었다"며 "언젠가 우리가 하늘에서 함께 축구를 할 수 있길 바란다"고 적었다. 그리고 2년여 뒤 그는 마라도나의 곁으로 가게 됐다.
sabi@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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