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전당대회 경선 룰 바꾼 국민의힘, 주자들 희비 엇갈렸다
국민의힘 당대표는 공천권을 쥐고 있다. 선거에서 국민의힘 후보가 되려면 당내 공천을 받아야 한다. 당대표는 후보를 결정하는 공천관리위원회(공관위)를 구성하고, 공관위원장을 임명할 수 있다. 공관위가 추천한 후보자를 확정하는 것도 당 지도부의 몫이다.
국민의힘이 3월 초로 예상되는 전당대회에서 새 지도부를 꾸린다. 이번에 선출되는 당대표는 2024년 총선에서 공천권을 행사하게 된다. 국민의힘 의원들을 비롯한 당 관계자들이 차기 전당대회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가 당대표 경선 룰 정비에 나섰다. 지난 12월19일 비대위는 당대표 경선에서 여론조사 없이 당원 투표만 100% 반영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당헌 개정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현행 당헌은 당원 투표 70%, 국민 여론조사 30%로 당대표를 선출한다고 규정했다.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에 여론조사가 처음 채택된 건 2004년이다. 당시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의 한 핵심 관계자는 “그때 소장파들을 중심으로 일반 국민의 의사도 (당대표 선거에) 반영해야 한다는 요구가 거셌다”라고 설명했다. 이후 18년간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에 여론조사가 포함됐다.
2021년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는 컷오프(예비경선) 때 국민 여론조사 비율을 50%까지 늘렸다. 전당대회 선거관리위원회의 결정이었다. 당시 전당대회 선거관리위원으로 논의에 참여한 천하람 국민의힘 순천갑 당협위원장은 결정 취지를 이렇게 설명했다. “당이 위기에 있고, 대선이 얼마 안 남았으니 최대한 민심을 반영해야 한다고 봤다. 아예 당권 주자들이 민심에 반하는, 극성 지지층들을 향한 메시지를 내지 않도록 룰 세팅을 한 거다.”
최근 두 차례 치러진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에서는 당심(당원 투표)과 민심(여론조사)이 엇갈렸다. 2019년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전당대회 당원 투표 결과 황교안 후보(55.3%)가 오세훈 후보(22.9%)를 크게 앞섰다. 여론조사 결과는 달랐다. 오세훈(50.2%), 황교안(37.7%) 순이었다.
2021년 전당대회에서도 당원 투표 결과 나경원 후보(40.9%)가 이준석 후보(37.4%)를 앞섰지만, 여론조사에선 이 후보(58.8%)가 나 후보(28.3%)를 큰 격차로 따돌렸다.
경선 룰이 어떻게 확정되느냐에 따라 주자별 유불리가 선명히 갈린다. 당장 ‘당심 100%’ 선출을 두고 당권 주자들 사이에서 찬반이 나뉜다. 당 주류인 친윤(윤석열)계로 분류되거나 영남권인 당권 주자들은 반기는 분위기다. “당원들이 당대표를 뽑는 것이 정당 민주주의 기본(김기현 의원)” “당대표 선거는 당원 뜻이 철저하게 반영되는 게 좋다(권성동 의원)”라는 등 당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비윤계로 분류되거나 여론조사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득표가 예상되는 주자들은 경선룰 개정에 비판적이다. 대표적으로 유승민 전 의원은 자신을 겨냥한 규칙 변경이라고 의심한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높은 지지를 받는 유 전 의원의 당선을 막는 조처라며 “권력의 폭주”라고 규정한다.
속만 태우는 수도권 주자들
유 전 의원은 “유승민 솎아내기”라는 주장의 근거로 개정 시기와 과정을 든다. 당대표 선거를 두 달여 앞두고, 18년 동안 지속됐던 당헌이 관련 논의가 시작된 지 한 달 만에 개정 작업에 들어갔다. 12월19일 국민의힘 비대위에서 개정안을 의결한 뒤 곧바로 상임전국위, 전국위를 열었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 의원총회도 거치지 않고 급하게 경선 룰을 변경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12월15일 윤석열 대통령의 ‘당원 100%’ 발언 보도가 나온 뒤 개정 작업 속도가 빨라졌다. 같은 날 국민의힘 초·재선 의원들은 초선 모임(27명 참석)과 재선 모임(13명 참석)을 열고 ‘당원 투표 100% 변경 찬성’에 의견을 모았다.
나흘 뒤인 12월19일 국민의힘 비대위는 ‘당원 투표 100%’와 함께 ‘결선투표제’ 도입을 발표했다. 비대위는 당대표의 대표성을 높이기 위해서라고 설명했지만, 당내에선 ‘순차적인 친윤계 단일화’ ‘비윤계 어부지리 방지’ 등의 의도가 깔려 있다는 해석이 나왔다. 한 비대위 관계자는 결선투표제 도입 과정을 “한 주간 비대위 단체 SNS 방에서 논의가 오갔고 주말에 찬성으로 합의가 돼서 그다음 주 월요일에 발표했다”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 비대위는 지난 전당대회에 비해 책임당원 규모가 28만명에서 79만명 규모로 증가한 점, 20~40대 당원 비중이 확대된 점 등을 이유로 ‘당원 투표 100%’가 특정 후보에게 불리하지 않고 민심을 충분히 반영할 수 있다고 말한다.
천하람 순천갑 당협위원장의 생각은 다르다. “인구나 지역별 구성이 비슷해져도 당원으로 가입하는 사람들은 강한 지지 성향을 띤 사람들이다. 여론조사를 통해 당원들의 의지로 표현되지 않는, 선거에서 우리를 찍어줄 수도 있지만 당원 가입은 하지 않는 분들의 의사는 반영될 수 없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경선 룰 변경을 지켜보는 수도권 주자들의 속내는 복잡하다. 당권 주자인 윤상현 의원(인천 동구 미추홀구 을)은 “절박한 수도권 의원으로서 당의 총선 승리를 위한 유불리만 생각했다”라며 경선 룰 개정에 신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1대 국회에서 국민의힘의 수도권 의석은 전체 121석 중 19석이다.
한 수도권 원외 당협위원장은 수도권 당협위원장 중 원내가 적어서 불만이 잘 터져 나오지 않는다고 답답해했다. “전체 당원이 늘어도 수도권의 당원이 영남의 당원들만큼 일반 유권자 비율에서 크게 높지는 않다. 나처럼 어려운 지역에서 선거를 준비하는 사람들은 당의 생각과 유권자들의 생각이 다르다고 느낀다. 새로 선출될 당대표가 당심에 호소하는 방식으로 가면 수도권 민심이랑 괴리될 수 있어 우려스럽다.”
이은기 기자 yieu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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