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붓으로 눌러 쓴 민주화 역사에 기도를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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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대는 "내가 해봐서 아는데"를 달고 산다.
다르다면 주제가 한국현대사이며, 꼭지마다 관련 붓글씨 작품이 딸린 점이다.
글씨선생님은 제자를 일러 '축성 서예가'라며 "겉은 전번필법으로 꿈틀거리고, 속은 하나님의 성령으로 살아 있음을 느낀다"고 평한다.
꼭지 글 제목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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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현대사 52가지 장면
우리가 기억하고 기려야 할
민주화 정신 글씨로 쓰고 해설
함세웅의 붓으로 쓰는 역사기도
해방에서 촛불까지, 기억하고 기리고 소망하다
함세웅 지음 l 라의눈 l 3만5000원
꼰대는 “내가 해봐서 아는데…”를 달고 산다. 제 생각이 다 옳아서 제 주장만 편다. 여럿이 모이면 혼자 3분의 2를 떠벌린다. 강론에 익숙한 신부님들은 은퇴하면 어떨까?
<함세웅의 붓으로 쓰는 역사기도>는 은퇴 신부 함세웅의 문집이다. 일주일에 한 꼭지씩 한 해를 꼬박 채운 글들. 성경구절을 서두에 인용하고, 그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친 다음, 기도로 마무리하니 ‘여축없는’ 강론이다. 다르다면 주제가 한국현대사이며, 꼭지마다 관련 붓글씨 작품이 딸린 점이다.
내 눈에 붓글씨가 먼저다. ‘획이 살아 있다’라는 말은 상투적이고 어느 수녀님 말마따나 ‘획이 울부짖는다.’ 온몸으로 용을 쓴 형세가 팔뚝과 주먹을 통해 붓 끝에 그대로 전달된다. 부드러웠을 붓이 몽당비처럼 종이를 쓸고 지나는데, 획의 처음과 끝, 꺾임이 예사롭지 않다. 놓임과 멈춤 때에 지지 눌러 비튼 자국이 보인다. 무엇보다 한글 자모 처리가 특이한데, 성대 외 발성기관을 스치며 소리의 결을 잡아주는 ㄱ에서 ㅎ까지 자음은 스침과 흐름과 떨림을 대변하고, 성대에서 나와 입모양으로써 소리의 중심을 잡아주는 ㅏ에서 ㅣ까지 모음은, 가로의 경우 판결문처럼 정연하고, 세로는 몽둥이처럼 꽂혔다. 한자는 철근 덩어리와 흡사하다.
알고 보니 함 신부의 글씨선생이 이동천 서예가다. “얘야, 글씨 좀 예쁘게 쓰거라.” 어릴 적 어머니 말씀을 새기며 ‘예쁜 글씨 좀 배워볼까’라며 찾아갔다니, 웬걸. “예쁜 글씨라뇨? 글씨에 뼈와 근육이 있고 신경을 통해 생명력이 넘쳐야 합니다. 있는 힘껏 쓰세요. 봄누에가 뽕잎 갉아먹는 소리가 나야 합니다.” 아차 하면서도 발을 빼기엔 너무 늦어 시작한 늦공부였다. 다시 쓰라 하면 다시 쓰고, 됐다 하면 그렇게 알기 10여년이다. 글씨선생님은 제자를 일러 ‘축성 서예가’라며 “겉은 전번필법으로 꿈틀거리고, 속은 하나님의 성령으로 살아 있음을 느낀다”고 평한다.
휘호가 딴판이다.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사랑은 언제나 오래 참고’ 등은 없고 처음부터 ‘심장을 찢어라’, ‘너 어디 있느냐’, ‘암흑 속의 횃불’이다. 그렇다. 글(씨) 쓴 이는 정의구현전국사제단에서 활동했다. 사제단은 1974년 지학순 주교 구속을 계기로 탄생하여 박정희-전두환-노태우 군사정권의 폭압 아래서 주요한 고비마다 억눌린 자의 대변자, 양심세력의 보루 역할을 했다. 부천서 성고문, 박종철 고문살인 은폐조작을 폭로한 것으로 유명하다.
휘호는 사제단이 직접 간여한 두 사건 외에 건국 이래 기억하고 기려야 할 주요 사건 자체, 또는 당시에 회자한 구호다. 조선건국준비위원회, 맥아더포고령, 독도와 평화선, 4·3제주항쟁, 국회프락치사건, 사사오입개헌, 4·19불사조, 5·16군사반란, 한일협정반대투쟁, 유신헌법철폐, 자유언론실천선언, 3·1민주구국선언, 부마항쟁, 10·26혁명, 5·18민중항쟁, 6월항쟁, 못살겠다 갈아보자, 학생의 피에 보답하라,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 껍데기는 가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등. 꼭지 글 제목이기도 하다.
요즘 이런 꼰대 없다. 대환영.
임종업 <뉴스토마토>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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