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고향 산천 ‘구순이’ 그려 프랑스 출판사에 보내자…
80년대 한국 대가족사 담은 첫 작품
처음 그린 그림에 단순한 프랑스어
‘가장 개인적인 것’에서 찾은 보편성
머릿속에 영화 한 편이 상영되고 있었다. 그것을 그대로 옮기기만 하면 되었다. 프랑스어로 썼다. 잘해서가 아니었다. 한글보다 편했다. 자전적 이야기였어도 거리를 두고 쓸 수 있었던 건 모국어로 쓰지 않은 덕분인지 모르겠다. 물론 시간이 아주 오래 지난 덕도 보았다. 문장은 짧게 썼다. 쉬운 단어를 취했다. 어차피 어려운 단어는 알지도 못했다. 화려하고 복잡한 문장은 내 능력 밖이었다.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연인>은 원어로 읽은 첫 소설이었다. 모르는 단어가 있어도 읽기가 가능했다. 그의 문장은 간결했고 리듬감이 있었다. 감히 그렇게 쓰고 싶었다.
만화 이전에는 조각, 그림, 사진, 비디오를 이용해 작업했다. 줄여서 표현하면 설치미술이었다. 만화를 시작하자니 막막했다. 일러스트레이션을 공부해 본 적이 없었다. 만화 수업을 따로 들어 본 적도 없었다. 그려 본 적도 없었다. 아니다. 중학교 때 교실에서 순정만화 주인공을 따라 그려 본 적이 있다. 그게 전부였다.
어떻게 만화 프로젝트를 출판사에 소개해야 할지 암담했다. 주위에 물어볼 만한 만화가도 없었다. 그러나 한번 결심하면 밀어붙인다. 어찌 보면 진취적이나 어찌 보면 무모하다. 장점이자 단점이다. 먼저 초벌의 시나리오 속에 나오는 중요한 캐릭터 몇을 그렸다. 모나미 붓펜과 수묵화 붓을 사용하여 스무 장 정도 페이지를 그렸다. 물에 의해 먹의 짙고 옅음이 종이에 퍼지는 효과가 마음에 들었다. 특히 고향의 산천을 그리는 데 잘 맞았다. 이렇게 준비한 것을 들고 한 출판사의 문을 두드렸다.
그렇게 빨리 답변이 오리라곤 예상 못 했다. 이틀 만이었다. 핸드폰으로 전화가 왔다. “총 몇 페이지야? 언제 완성할 계획이야?” 첫마디가 그랬다. 당황스러웠다. 출판사 대표도 나처럼 불같은 성격인가 보았다. 뭐 하나에 꽂히면 달리는 불도저 같은 인간 말이다. 프랑스인은 다를 줄 알았다. 일주일 후에 계약서에 사인했다.
나의 첫 책 <아버지의 노래>였다. 프랑스에서 2012년 1월에 먼저 출간되었다. 그리고 2013년 국내 보리출판사에서 한글로 출간되었다. 직접 한국어로 번역했다.
봉준호 감독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공부할 때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이다”라는 마틴 스코세이지의 말을 가슴에 새겼다고 했다.
<아버지의 노래>는 70년대 한 가정의 아홉 번째 딸로 태어난 ‘구순이’와 그 가족의 이야기다. 고흥의 시골에서 70년대 말에 일을 찾아 서울로 올라온 구순이의 가족에게는 꿈이 있었다. 하지만 낯선 땅, 서울에서 그들은 지독한 생활고와 어려움, 차별을 겪게 된다. 당시 시골에 살던 많은 사람들이 도시로 이주하였다. 그 시대 모든 것을 잃고 다시 시작하는 가족의 모습을 담담하게 그렸다. 구순이의 어린 시절만 디테일하게 다시 3부작 만화책으로 만든 것이 바로 <꼬깽이> 시리즈다. 나의 기억과 언니 오빠들을 인터뷰한 후 재구성하여 만들었다.
연도상의 첫 책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늘 최근에 나온 책이 가장 마음에 쓰인다. 막 잉태한 자식을 애지중지하는 어미의 마음이 이럴까 싶다. 나는 나의 마지막 책(최근 책)에 나의 모든 것을 집중시킨다. 쉽지는 않다. 안일하고픈 나와 싸운다. 모른 척하고 싶은 맘에 지기도 한다. 오래가지는 못한다. 목에 걸린 가시처럼 나를 괴롭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의 만화책(그래픽노블)이 태어난다. 책으로 독자와 만나기 전, 이미 나는 탈고한 책에서 멀어져 있다. 때로는 조금 쉬기도 하지만 쉼도 여행의 시작이다. 새로운 작품이라는 위험한 여행길 위에 나는 오늘도 서 있다. 마음의 첫 책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김금숙 그래픽노블 작가
그리고 다음 책들
풀: 살아 있는 역사,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의 증언
일본군 ‘위안부' 피해 이옥선 할머니를 인터뷰하고, 이를 바탕으로 쓰고 그렸다. 끔찍한 역사가 다시는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한 이분들의 뜻을 널리 알리고자 기획하였다. 가장 개인적인 이야기로 가장 보편적인 것을 이야기하고자 하였다.
보리(2017)
기다림
나는 아마 한국전쟁으로 인한 이산가족의 마지막 세대이지 싶다. 전쟁을 겪은 사람들의 아픔을 공감하고 젊은 세대가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지에 대해 질문하고 싶었다. 통일은 해야 하는가? 왜 해야 하는가? 어떤 통일을 기대하는가? 당신이 생각하는 평화란 무엇인가? 하는 물음이기도 하다. 가장 개인적인 이야기가 어쩌면 가장 감동적이지 않을까 싶다.
딸기책방(2020)
개
개는 인간의 가장 오래되고 좋은 벗이다. 이 책은 나의 반려견과 주위에서 보는 개에 관해 이야기하였다. 인권과 인간의 생명이 소중하다면 인간을 제외한 다른 생명도 소중하지 않은가? 이 책은 반려동물에 대한 인간의 일상적 폭력과 학대, 무책임함, 무관심에 대해 상징적으로 그렸다. 2022년 반려동물이 여전히 개인의 재산으로 분류되어 폭력의 반복이 허용되는 대한민국의 동물권 이대로 좋은가? 동물의 학대에 노출된 인간도 트라우마를 겪는다는 사실을 아는가? 더 나아가 현재의 생태계에도 관심을 갖고 고민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마음의숲(2021)
시간이 지날수록 빛나는: 강화의 자연 속에서 삶을 그립니다
첫 에세이집. 그림보다 글이 많은 책을 내리라곤 상상도 못 했다. <서울신문>과 <한겨레>에 연재한 칼럼을 선별해, 부족한 내용은 따로 더 쓰고 그렸다. 아름다운 강화에서 살며 산책과 작업을 통해 얻은 느낌과 사유를 진솔하게 담았다. 나의 삶과 예술이 하나임을 느낄 수 있으리라. ‘시날빛'을 내며 그림 없는 글쓰기에 재미와 용기를 얻었다. 독자들로부터 따스한 위로를 받는다는 피드백을 받는다.
남해의봄날(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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