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스펙트럼 확장하는 여성작가들의 진군…뉴노멀의 다채로운 안내자로
위로의 문학 압도한 코로나 3년 끝
수십년 작품 매달린 윤흥길·이인성
영역 넓혀온 장류진·구병모 등까지
시·아동·영상 콜라보도 다채로워
문학은 시대의 가장 이른 징후이자 가장 질긴 뒤끝일 것이다. 코로나의 긴 터널 안에서 여전히 빛과 위로가 필요했고, 경기위축까지 심화하며 온오프 서점 결산에서 보았듯 문학이 더 호출된 한 해다. <한겨레>가 28일 도서관 정보나루를 통해 분석한 결과도 이를 뒷받침한다. 올해 전국 도서관에서 가장 많이 대출된 문학 서적은 <불편한 편의점>(2021)이었고, 2022년 신간에선 <어서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가 가장 많았다.
내년은 새로운 ‘노멀’로 비로소 전환하는 원년이 될까. 문학은 일단 훨씬 다채로워진다.
대중성 너머, 단편 ‘장마’로 대표되는 윤흥길 작가가 집필에서 출간까지 꼬박 20년을 들인 <문신>의 완간과, 24년 만의 소설집이 될 이인성 작가의 연작중편집 <돌부림>(가제)이 문학동네와 문학과지성사에서 각기 예정되어 있다. 사유와 형식의 난해함으로 “독자를 냉대한다”고까지 시인 황지우가 비틀어 ‘헌사’했던 이인성의 마지막 소설집은 1999년 <강 어귀에 섬 하나>. 이번 소설집엔 올해 만 70살을 맞는 그가 ‘돌부림’(2006), ‘한낮의 유령’(2012)과 함께, 이후 쓴 미발표작을 추가해 담는다. <문신>은 2018년 1~3권 이후 5년 만인 올 상반기 4·5권 동시 출간으로 대서사를 완성한다. 대한제국 시절 최씨네 가족 간 신념과 욕망의 대립, 비극을 유장하게 전개한 작품으로, 윤흥길 스스로 2020년 박경리문학상을 받으며 “큰 작품을 쓰라고 했던 박경리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들어 오랫동안 준비해온” “나의 대표작”이라 밝힌 바 있다.
읽는 맛을 보장하는 중견작가 이기호의 <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가제)은 이미 같은 제목으로 ‘주간 문학동네’에 연재되며 독자들을 포섭했다. ‘비숑 프리제 품종을 두고 벌어지는 사랑과 운명과 상처의 대서사시!’라는 소개와 함께 본격 ‘개 소설’을 표방한 이기호의 9년 만의 장편으로, 여름 예정하고 있다.
시 애호가들에겐 누구보다 반가울 조합으로, 영국 왕립문학협회 선정 ‘국제작가’에 처음 이름 올린 한국 시인 김혜순을 2010년대 대표 시인 중 한 명으로 꼽히는 황인찬이 1년 넘게 인터뷰해 구성한 <김혜순의 말>이 마음산책에서 나오고, 소설가들이 2022년 ‘올해의 소설’로 가장 많이 지목했던 <이토록 평범한 미래>의 김연수 작가는 골라 본 문학작품에 대한 독서에세이(문학동네)로 하반기, <알로하, 나의 엄마들>(2020)로 하와이 이주한인과 노동을 소재 삼아서도 작품성과 대중성을 이어나간 등단 40년차 동화작가 이금이는 소재를 비대면의 학교폭력으로 옮긴 새 청소년소설 <편집>(가제, 문학동네)으로 상반기 독자와 만난다.
여성작가들이 동시 확장해가는 대중성과 주제·형식의 스펙트럼은 도드라진다. <한겨레>가 조사한 도서관 대출인기 목록 200권에 <달까지 가자>(2021) <일의 기쁨과 슬픔>(2019)을 올린 장류진 작가는 새 소설집(창비)을, <위저드 베이커리>(2009)를 올린 구병모 작가는 4년 만의 신작 소설집 <있을 법한 모든 것>(문학동네)을, <칵테일, 러브, 좀비>(2020)를 올린 조예은 작가는 SF소설과 장편(<달콤한 초록 피>)을 각각 허블과 창비에서 선보일 예정이다.
당장 이 겨울을 지나며 현대문학에선 정현우 시집, 천희란 소설, 문진영 신작 소설을 펴내고, 한겨레출판은 <체공녀 강주룡>으로 한겨레문학상을 받은 박서련 작가의 두 번째 소설집 <오직 운전하는 자들만이 살아남는다>(가제)로, 은행나무에선 박문영·황모과·장진영·서이제 작가 등의 라인업으로 경장편 젊은 감성시리즈를 표방한 ‘노벨라 시리즈’를 부활시켜 봄이 올 즈음 독자들과 만날 예정이다. 박서련 작가는 정영롱 만화가와 함께 만화책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르는>도 낸다.
작가 백수린의 첫 장편, 손보미의 첫 연작소설집(이상 문학동네), 이서수 작가의 첫 소설집(은행나무), 조시현 시인의 첫 시집(문학과지성사), 서윤후·김현 시인의 첫 단편소설집(알마)도 2023년 첫 쇄를 찍는다.
국외 번역서로는 한국계 미국인 작가 권오경의 <방화범들>(문학과지성사)이 현지에서 크게 주목 받은 가운데 처음 국내 소개된다. ‘20세기 가장 중요한 독일어 소설’로 꼽히는 로베르트 무질(오스트리아)의 <특성 없는 남자>(전3권)와 기존 소설형식을 전복한 ‘의식의 흐름’체로 명성 높은 제임스 조이스(아일랜드)의 <율리시스>(전 2권)도 기대를 모은다. 두 작품(문학동네)은 올해 완간된 마르셀 프루스트(프랑스)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전 13권, 민음사)와 함께 ‘20세기 모더니즘 3대 걸작’으로 간주된다.
노벨문학상에 한 발 더 근접한 살만 루슈디(영국)가 주인공을 텔레비전에 심취한 현대 노인으로 비튼 신작 <키호테>로, 만년 노벨문학상 후보로 결국 타계한 필립 로스(미국)가 비행사 찰스 린드버그를 친파시즘적 미국 대통령으로 설정한 역사소설 <미국을 노린 음모>와 자신의 창작론, 서평 등 50여년의 글을 모은 에세이 <왜 쓰는가?>로 독자와 곧 만난다. 미국 단편소설계에서 지명도 높은 로리 무어의 단편선집(작가정신) 등도 국내 첫선을 보인다.
작품 자체로든 마케팅 방편으로든 ‘문학과 영상의 콜라보’는 계속 활발해질 수밖에 없겠다. 공쿠르상 수상작가 안 세르(프랑스)의 1992년 데뷔작 <가정교사들>(가제)은 영화 경우 배역까지 정해진 가운데 국내 첫 소개(은행나무)되고, 엠(M). 오(O). 월시의 판타지 <빅 도어 프라이즈>는 애플TV+에서 10부작으로 드라마화할 예정인 가운데 독자들과 먼저 만난다. 열린책들은 영화로 만들어질 예정인 닐 셔스터먼의 <수확자 3부작>을 이르면 2월 번역 출간한다. 닐 셔스터먼은 이미 여러 영상작품의 원작자로 미국 최고의 청소년소설가로 꼽힌다. 민음사가 4월 출간할 첩보소설 <헌신자>는 박찬욱 감독이 드라마로 제작 중인 베트남계 미국 작가 비엣 타인 응우옌의 <동조자> 후속작이다.
책 선별에 있어 자타칭 ‘인플루언서’의 영향력은 갈수록 커진다. 하지만 독자의 다채로운 취향은 물론 작품의 질도 담보하진 못한다. 더 많은 세계가, 더 다양한 온도로 시, 소설, 에세이, 그리고 만화에 있다. (편집자주 모든 책의 출간 일정은 변경될 수 있습니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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