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좋은 삶은 ‘덩굴나무’처럼…누스바움이 말하는 선 [책&생각]

고명섭 2022. 12. 30.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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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철학자 마사 누스바움(75)은 윤리학·정치철학·페미니즘 분야에서 가장 주목받는 학자다.

1986년 처음 출간된 <연약한 선> 은 누스바움이라는 이름을 학계에 알린 출세작이자 이후 집필한 책들의 이론적 토대가 된 윤리적·철학적 원칙을 밝힌 저작이다.

그러나 누스바움이 보기에 이런 윤리학은 선한 가치들의 충돌 같은 구체적인 삶의 딜레마를 해결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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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약한 선
그리스 비극과 철학에서의 운과 윤리
마사 누스바움 지음, 이병익·강명신·이주은 옮김 l 서커스 l 4만원

미국 철학자 마사 누스바움(75)은 윤리학·정치철학·페미니즘 분야에서 가장 주목받는 학자다. 이런 관심에 힘입어 <시적 정의> <혐오와 수치심> <정치적 감정> <타인에 대한 연민> <교만의 요새>를 비롯한 10여종의 누스바움 책이 국내에도 나와 있다. 1986년 처음 출간된 <연약한 선>은 누스바움이라는 이름을 학계에 알린 출세작이자 이후 집필한 책들의 이론적 토대가 된 윤리적·철학적 원칙을 밝힌 저작이다. 이 책을 출간한 뒤로 누스바움은 현실적이고 정치적인 문제로 눈을 돌렸다. 한국어판은 첫 출간 후 15년 만에 개정한 2001년 판을 저본으로 삼았다. 개정판에서 누스바움은 본문의 한 장에 육박하는 긴 서문을 추가해, 그 사이에 변화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철학자 마사 누스바움. 사진 로버트 톨친 포토그래피, 시카고대학 누리집 갈무리

<연약한 선>은 고대 그리스의 문학과 철학을 자료로 삼아 윤리적 선의 본질을 탐사한다. 그리스 3대 비극 시인 아이스퀼로스·소포클레스·에우리피데스의 비극 네 편, <국가> <향연>을 비롯한 플라톤의 대화편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이 누스바움이 경유하는 길에 놓인 참조 대상이다. 누스바움이 주목하는 것은 제목에 드러난 대로 ‘선의 연약함’(Frailty of Goodness), 다시 말해 선(좋음)이라는 것이 깨어지기 쉽고 상처 나기 쉽다는 사실이다. 좋은 삶의 상태로서 선은 외부의 영향에 취약하다. 이를테면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티케(tyche, 운)의 힘이 단적인 사례다. 운은 행운일 수도 있고 불운일 수도 있지만, 이 운의 지배력을 무시하고 선을 온전히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그리스 비극 작품들은 이 운과 선의 관계를 생생하게 그려 보여준다.

반면에 플라톤의 저작은 운으로 표상되는 이 외부의 조건을 배제하고 어떻게 선 자체를 구현할 수 있는지를 입증하려고 분투한다. 서구 윤리학은 이 플라톤의 압도적 영향 속에서 구축됐다. 어떤 상황에서든 윤리적으로 살 수 있는 원칙을 발견하려 한 칸트의 윤리학이 대표적인 경우다. 그러나 누스바움이 보기에 이런 윤리학은 선한 가치들의 충돌 같은 구체적인 삶의 딜레마를 해결하지 못한다. 여기서 누스바움이 주목하는 것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보편적 진리를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플라톤이 외면한 비극 작품 속의 문제의식을 받아들여 개별성과 구체성을 존중하는 보편적 윤리학을 세우려고 했다.

누스바움은 윤리적 선에 관한 이런 결론을 그려 보여주는 이미지로 그리스 서정시인 핀다로스의 <네메아의 송가>에 나오는 구절을 든다. “그러나 인간의 탁월성은 덩굴나무처럼 자라네. 녹색 이슬을 받아먹으면서 현자들과 올바름의 틈바구니에서 자라나 티끌 한 점 없이 맑은 하늘로 뻗누나.” 인간은 사냥꾼처럼 덫을 놓듯이 능동적으로 선을 장악하는 자가 아니라, 식물처럼 주변 환경의 영향 속에서 자라나는 존재다. 식물은 외부의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모두 받으면서 그 조건에 둘러싸인 채로 ‘맑은 하늘’을 향해 오른다. 그것이 삶이며, 그런 삶을 포착하는 것이 좋은 윤리학이라는 것이 누스바움의 생각이다.

고명섭 선임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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