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말 달리듯 내달리는 이야기의 질주

최재봉 2022. 12. 30.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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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겨운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일요일, 심심한 소년은 문득 빵을 구워 먹자는 데에 생각이 미친다.

누가? '월남집'이라는 답을 들은 소년은 빵틀을 찾아 길을 나선다.

김도연은 "나는 덩치만 커졌지 아직도 빵틀을 찾아 찢어진 우산을 쓴 채 마을의 집들을 방문하는 소설 속 소년에게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작가의 말'에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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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틀을 찾아서
김도연 지음 l 문학동네 l 1만4500원

지겨운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일요일, 심심한 소년은 문득 빵을 구워 먹자는 데에 생각이 미친다. 그런데 엄마에게 얘기하니 빵틀을 누가 빌려갔다는 것 아닌가. 마을에 하나뿐인 빵틀은 인기가 높아 이 집 저 집에서 빌려가는 일이 많았다. 누가? ‘월남집’이라는 답을 들은 소년은 빵틀을 찾아 길을 나선다.

<콩 이야기> 이후 7년 만에 낸 김도연의 다섯 번째 소설집 <빵틀 이야기>의 표제작 이야기다. 김도연은 “나는 덩치만 커졌지 아직도 빵틀을 찾아 찢어진 우산을 쓴 채 마을의 집들을 방문하는 소설 속 소년에게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작가의 말’에 썼다. 오래전 영화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를 떠오르게 하는 이 소설에서 소년은 빵틀의 행방을 좇아 월남집에 이어 ‘재설집’, ‘대장집’, ‘강밥집’ 등을 차례로 순례한다. 가는 집마다 떡이며 메밀부침을 얻어먹고 벽에 걸린 사진 액자를 구경하거나, 빵틀 찾는 일도 잊은 채 쇠를 두드려 연장을 만드는 모습을 넋 놓고 바라본다. 김도연에게 소설 쓰기란 빵틀을 찾아 나섰던 소년이 해찰 부리며 세상사를 관찰하고 수집해서 글로 전달하는 일과 같다는 뜻이겠다.

책에 실린 아홉 단편 가운데 ‘전재와 문재’와 ‘탁구장 근처’에는

김도연 작가.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작가 자신을 연상시키는 중년 소설가가 나온다. ‘전재와 문재’의 주인공은 문학상 심사를 끝낸 뒤에도 어쩐지 어지러운 생각이 가라앉지 않는다. 자신이 “오로지 상을 타기 위한 글을 써왔는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 ‘탁구장 근처’의 주인공은 취미 삼아 탁구장에 다니는데, 어느 일요일 해질 무렵 건물 이층 탁구장 계단을 오르던 그가 이런저런 전화와 우연한 만남 등 때문에 끝내 탁구장에 들어가지 못하는 모습은 표제작의 소년을 닮았다.

그런가 하면 ‘말 머리를 돌리다’라는 단편은 영화로도 만들어진 작가의 장편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을 떠오르게 한다. 이 작품 주인공은 말 목장을 운영하는 부자 친구의 자랑에 비위가 상해 친구의 비싼 말을 훔쳐 탄 채 난생 처음 말을 달린다. 말 위에서 대추도 따고 커피와 캔맥주를 마시는가 하면 짜장면에 고량주까지 즐기는 호사(?)를 누리지만, 문제는 그가 달리는 말을 멈출 줄 모른다는 것.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말을 달리듯 한껏 내달리는 이야기의 질주가 그야말로 김도연답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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