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영의 의(醫)심전심] 5% 원칙/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교수

2022. 12. 30. 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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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저희 아이 아빠는 불안해서 못 나가요. 여기 꼭 입원시켜 주세요."

우리 의료가 둘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할 정도로 빈곤한 것이 아님에도, '5% 원칙'은 암환자들이 응급실에서 밀려나 이 병원 저 병원으로 떠돌도록 만들었다.

암환자들은 비교적 상태가 좋을 때는 컨베이어벨트 위에 놓여 정해진 검사와 치료를 받는, 병원 입장에서 보면 안정적인 수익원들이나 말기에 가까워지면 합병증이 발생하고 응급실의 병상을 잠식하는 존재들이 되면서 5% 원칙에 의해 외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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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영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교수

“선생님 저희 아이 아빠는 불안해서 못 나가요. 여기 꼭 입원시켜 주세요.”

아내의 입술이 파르르 떨린다. 남편이 항암치료를 받던 중 패혈증으로 응급실에 실려온 것은 일주일 전이었다. 응급처치를 하고 다른 병원으로 보냈지만, 증상이 악화돼 다시 실려 왔다. 이번엔 절대 못 나가겠노라고 버티는 중이다. 입원을 시키자니 없는 병실을 만들 수도 없는 일. 몇 번의 설득 끝에 응급실에서 기다려 볼 수 있도록 부탁하기로 했지만, 환자를 내보내라는 응급의학과 의사의 날 선 문자가 휴대전화에서 깜빡이고 있다.

“수술이나 중환자실 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이 있는데 이런 분들까지 저희가 입원시켜야 합니까? 환자가 고집한다고 다 들어줘야 하나요?”

‘이런 분들’은 말기 암환자들이다. 2017년 도입된 응급실 체류시간 제한에 대한 행정조치로 인해 24시간 이상 응급실에 머물며 병실이 나기를 기다리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게 됐다.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제33조 2항은 ‘권역응급의료센터 및 지역응급의료센터의 장은 24시간을 초과하여 응급실에 체류하는 환자의 비율을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기준 미만으로 유지하여야 한다’고 돼 있다. 그 기준은 5%다. 즉 응급실 내원환자 중 5% 이상이 24시간 이상 응급실에 머문다면, 병원은 복지부로부터 상당한 불이익을 받게 된다. 이 비율을 맞추고자 병원들이 목숨을 걸고 매달리는 이유다.

입원하자니 병실이 없고, 퇴원하자니 상태가 위태로운 환자들은 주변의 다른 병원으로 옮겨 갈 수밖에 없다. 언제든지 새로운 응급환자를 진료해야 하는 응급실 기능을 유지하자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월 1~2회씩 병원을 오가며 항암치료를 받느라 병원이 학교나 직장처럼 익숙해져 버린 암환자들 입장은 다르다. 막상 상태가 나빠졌을 때 다른 병원으로 가라는 조치를 그들은 이해하기 어렵다.

어느 수도권 대형 병원 응급실에서나 암환자들은 애물단지다. 응급실 의료진 눈에 그들은 빠른 조치가 필요한 뇌졸중, 심근경색, 외상환자들이 치료받아야 할 공간을 차지하고 의료자원을 잠식하는 존재들이다. 치료하면 제 기능을 회복할 수 있는 환자와 치료해도 지지부진하다가 생을 마감할 환자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면 선택은 당연히 전자이나, 그것이 어디 쉬운 결정인가. 우리 의료가 둘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할 정도로 빈곤한 것이 아님에도, ‘5% 원칙’은 암환자들이 응급실에서 밀려나 이 병원 저 병원으로 떠돌도록 만들었다.

근본적으로는 암환자들의 수도권 집중이 문제다. 큰 병은 서울로 가야 한다는 말에 환자들은 몰리고, 대형 병원은 과밀화돼 몸살을 앓고 있는데도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몸집을 불리고 의료진을 갈아 넣어 가며 환자를 유치했다. 그 화려한 이면에는 전원을 권유하는 쪽과 안 간다고 버티는 쪽의 실랑이로 가득 찬 응급실의 일상이 있다. 암환자들은 비교적 상태가 좋을 때는 컨베이어벨트 위에 놓여 정해진 검사와 치료를 받는, 병원 입장에서 보면 안정적인 수익원들이나 말기에 가까워지면 합병증이 발생하고 응급실의 병상을 잠식하는 존재들이 되면서 5% 원칙에 의해 외면당한다.

“환자가 두 번째로 응급실에 오신 거라 많이 불안해합니다. 이해해 주십시오.”

응급의학과 의사에게 읍소하는 문자를 보내며 한숨을 쉰다. 다행히 얼마 되지 않아 응급실 내원 25시간째인 이 환자에게 하룻밤에 100만원이 넘는 고급 병실이 겨우 배정됐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환자의 밤이 편안하기만을 바랄 뿐이다. 한 해 암으로 사망하는 8만명의 환자들은 소위 ‘빅5 병원’에 부나비처럼 몰려들다가 5% 원칙이라는 방충등에 퍼석거리며 떨어져 나가고 있다. 그들이 응급실 애물단지가 아니라 존엄한 인간으로서 대우받으며 생을 마칠 수 있도록 도우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막막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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