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시우의 예술家 산책] 12. 그림책 작가 민승지
원주서 활동, 첫 출간작 ‘농부의 어떤 날’
사물 의인화 표현 아기자기한 그림 가득
일상 에피소드 모티프 공감·위로 전달
이야기빵·우유 소재 그림작업 내년 출간
“장편 작업 소망, 오랜 작가생활이 꿈 ”
겨울답지 않은 날씨가 이어지더니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져 따뜻한 이불의 유혹을 떨치기 쉽지 않다. 이런 날엔 따뜻하고 포근한 것들을 떠올리게 되는데 언 마음을 따뜻하게 데우는 데는 그림책만 한 것이 없다. 책장을 살피는데 민승지 작가의 그림책 ‘오리네 찜질방’이 눈에 들어왔다. 그의 책을 들여다보면 아기자기한 그림과 함께 숨은그림찾기 같은 즐거움도 있고 따뜻한 이야기가 있어 마음이 몽글몽글해진다. 갑자기 이 작가가 궁금해졌다. 느린 시간과 오래된 것들, 따뜻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민승지 작가의 작업실을 찾았다. 첫 책 ‘농부의 어떤 날’을 내고 마련했다는 작업실에는 그림책에서 만났던 귀엽고 사랑스러운 그림들이 가득했다.
숙명여대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그는 2015년 졸업 전시를 준비하면서 좋아하는 음식 영화를 일러스트로 그린 레시피북을 준비했는데 지도교수가 짤막한 글을 써서 넣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원래 사물을 의인화한 그림을 주로 그렸는데 그림과 짧은 글이 잘 어울렸고 그 작업을 하면서 글과 그림을 함께할 때 주는 시너지가 큰 것을 발견했다. 그가 오랫동안 써왔던 일기처럼 짧은 글을 써서 그림과 함께 작업해 보니 전하고자 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저는 글쓰기 공부나 습작을 따로 한 적이 없어서 글을 쓰기에는 제가 아직은 얕다는 생각이 들어요. 책도 엄청 많이 읽지 않았고요. 느끼는 것을 그대로 꾸밈없이 드러내고 쓰고 있는데 그림이 있다 보니 제 글이 부족해도 좋게 봐주시는 것 같아요. 저는 독립출판으로 작가 생활을 시작했어요. 맨땅에 헤딩하는 느낌으로 친구와 함께 더미북을 만들었고 독립출판물을 판매하는 행사나 독립서점에 입점 문의를 하면서 발로 뛰었어요.”
그렇게 그는 작가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그는 ‘농부의 어떤 날’을 완성한 후에 분량을 더 늘려 제대로 책을 만들고 싶어 다시 작업했다. 그 책을 2017년 와우북 페스티벌 상상만발 책그림전에 응모했는데 당선이 되었다. 전시된 그 책을 눈여겨본 한 출판사에서 내용을 수정 없이 그대로 출판하기로 하면서 세상에 나온 책이 2018년에 출간한 ‘농부의 어떤 날’이다. 이 책은 ‘전원생활의 경험과 작가의 유머 감각이 빛나는 논픽션’이라는 평도 있고 ‘밥을 오래오래 씹으면 서서히 느껴지는 단맛 같은 카툰 에세이’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는 상상을 좋아하고 자신에 대해 많이 생각하는 편이다. 글의 소재는 주로 일상에서 모티프를 얻는 데 사물을 관찰하거나 가족이나 친구들 사이의 에피소드 같은 것을 메모해 두고 생각나는 짤막한 느낌 같은 것도 적어 둔다. 사물을 의인화할 때는 사물의 입장에서 생각하거나 그 사물의 결핍은 뭘까 생각해본다. 실제로 느끼거나 오래도록 남는 감정을 오래 머금고 있다가 소재와 맞물리면 이야기로 풀어나간다.
‘제법 빵빵한 날’은 빵으로 책을 써보면 좋겠다는 편집자의 권유에 쓰게 되었다. 편집자는 그가 보낸 글을 보고는 그에게 관계를 중요시하는 사람 같다고 말했는데 생각해보니 그런 것도 같았다. 그렇게 그는 ‘농부의 어떤 날’을 시작으로 ‘제법 빵빵한 날’, ‘오리네 찜질방’을 쓰고 그렸고 ‘식혜’, ‘매일 보리와’, ‘레이첼 카슨’, ‘검은 머리 흰머리’ 등 많은 책의 그림을 그렸다.
그는 출산 이후에는 개인 작업은 속도를 늦추고 다른 작가의 글에 그림 작업을 주로 하는데 요즘은 내년에 출간 예정인 책 ‘이야기 빵’과 ‘우유’의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는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일이 쉽지 않음을 느낀다. 작업이 끊기는 느낌이 들고 엄마에서 작가로 돌아오는 데 시간도 걸리고 갭이 커서 혼란스럽고 감이 떨어질까 마음이 조급해지기도 했다. 자신만 생각하며 살다가 아이를 중심으로 생각하고 일상을 맞추는 일이 낯설어 처음에는 혼란스러웠으나 지금은 시간을 길게 잡고 작업을 한다. 작업시간이 짧아 집중할 수 없으니 흐름이 끊기는 것도 있지만 오래 보니까 잘 보이는 것도 있다. 그는 수채화와 컴퓨터로 작업하는데 수채화 작업 후 컴퓨터로 스캔하여 수정하거나 콜라주 작업도 한다.
“2015년부터 작업을 해왔는데 저는 제 일에 만족도가 높아요. 평생 할 수 있는 일이고요. 제 동기 중에서도 작가로 활동한 사람은 둘뿐이고 다 취업했어요. 가끔 딴 생각할 때도 있지만 이 일을 오래 하고 싶은 마음도 있고 꿈도 있어요. 제가 쓰고 싶은 이야기는 일상에서 공감을 주는 이야기예요. 사소한 것이어도 공감만큼 좋은 위로가 되는 것은 없다고 생각해요. 다른 걸 꾸며내서 하는 게 아니라 제가 느끼는 것에서 나오는 것이 좋은 거라 생각해요. 언젠가 장편도 쓰고 싶고 아따맘마 같은 시리즈를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그는 원주에서 작업하면서 어차피 혼자 하는 일이고 집중해야 하는 일이라 작업을 어디서 하든지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지방에서 활동한다고 은근히 무시하는 사람도 있지만 작업이 좋으면 어차피 그 작가를 찾게 된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다.
그와 이야기를 나눌수록 그는 자신의 그림과 이야기를 닮은 사람이었다. 그림체도 서체도 작가를 닮았다는 말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님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그의 이야기를 사랑하는 나와 같은 독자들에게 엄마로서의 경험이 더해졌을 사랑스럽고 따뜻한 그의 새 작품을 기다리는 일은 기분 좋은 설렘이 될 것 같다. 이 사랑스러운 작가가 궁금하다면 오리네 찜질방 문을 살짝 열어보는 건 어떨까? 시인·문화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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