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난장] 2022년을 복기한다
PK 경제동맹 뜬금없어, 더는 희망고문 없어야
박재욱 신라대 행정학과 교수
어느덧 한 해가 저물고 새해 맞을 채비를 할 즈음이면 누구나 지난 한 해를 뒤돌아보게 된다. 올 한 해 5편의 칼럼을 국제신문에 실었다. 다시 읽으며 생각을 다듬어본다.
먼저 대선을 앞두고 ‘우리편 편향과 중용의 정치’ 글에서 갈수록 양극화되고 정치적 편향성이 짙어지는 우리의 정치의식이 지니는 적대적 혐오감과 상호불신감에 큰 우려를 표했다(2월 18일 자). 대선 결과 역시 양분화된 진영정치와 팬덤정치가 우리 사회에 만연하고 있음을 뚜렷이 보여줬다. 어느 시대에나 편향성이 큰 극단의 선택을 하는 집단이 있기 마련이지만, 우리 사회에 잠재된 ‘암묵적 편향성’이 내뿜는 공격적 적대감이 도를 지나친다. 일반적으로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증폭된다는 관점이지만, 똑같은 사실에 관해서도 신념과 진영에 따라 판단과 해석이 놀라울 만큼 극단의 차이를 보인다는 건 일종의 정치병리적 현상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한국갤럽에 의뢰한 ‘2022년 한국인의 의식 가치관 조사’ 결과가 최근 공개됐다. 선진국(G7) 대비 우리나라 정치·경제·복지·교육·문화·법치 6개 분야에 대한 ‘수준’ 평가에서 정치 분야가 최하위로 자리매김한 건, 같은 조사 결과에서 우리 사회 갈등이 심한 집단으로 진보와 보수가 가장 높게 나타난 점과 무관하지 않다. 정치적 갈등은 어느 정도는 사회발전을 위한 촉매 역할을 할 수 있으나 한계치를 넘게 되면 끓는 물에 놓아둔 시한폭탄 같은 게 아닐까. 새해에는 극단적 편향성에서 기인하는 정치적 갈등을 풀 수 있는 정치개혁이 무척 시급하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정치의 앙시앵 레짐을 어떻게 전복시킬까’라는 칼럼으로 이어진다(8월 19일 자). 1987년 헌법 체제는 이미 극단적 대립의 기득권 양당정치로 그 생명력을 잃은 지 오래다. 이를 풀기 위해서는 국회의원 중선거구제, 100% 연동형 비례대표제(위성정당 방지), 지역정당 설립 요건 완화, 공천 부적격 심사 기준 강화, 국회의원 임대업 금지 등이 새로운 정치개혁의 핵심과제로 제시된다.
장애인 시위에 대해 정치권 일각에서 보이는 비난 행태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졌다. 지난 4월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전장연(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불법시위를 “비문명적”이란 언어로 비난했지만, 필자는 우리 사회가 평소 장애인에 대해 품고 있던 이중성과 차별의식을 교묘히 선동한 “비문명적 야만”이란 언어로 맞불을 놓았다(4월 22일 자). 문명이란 무엇인가.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배려와 관심의 충만도가 해당 문명의 척도라 믿는다면, 선진국이라는 겉치레와 오만에 빠진 우리는 문명에 가까운가, 야만에 가까운가. 일반인 기본권도 중요하지만, 그 기본권 배경에는 분명 공동체에 대한 자기 책임감 역시 전제돼 있다고 본다. 특정 소수자 집단에 대한 차별을 막기 위한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국회에 발의된 게 2007년인데 정치권에서는 전통 종교 관례 등을 내세워 심의조차 하지 않는다. 미국이나 유럽, 호주나 뉴질랜드 등 소위 우리가 선진국이라 부르는 나라에서는 형식은 달라도 차별금지에 대한 입법을 끝낸 지 오래다. 문명의 시계추는 쉼 없이 움직여 가는데 우리 속에 뿌리박은 편견의 시계추는 좀체 움직일 줄 모른다. 당장 열 발짝을 떼기 어렵다면 한 발짝씩이라도 떼어보는 아름다운 용기를 새해 국회에서 찾아볼 수 있길 바란다.
지난 6월 지방선거가 끝나면서 뜻하지 않는 ‘유령’이 부울경에 떠돌았다. 경남과 울산에서 당선된 시도지사가 오랜 진통 끝에 마침내 출범을 앞뒀던 부울경 특별연합에 찬물을 끼얹는 발언을 쏟아냈기 때문이다. 설마 하는 심정으로 ‘부울경 시도지사님께 드리는 글’이라는 서간문 형식을 갖춘 아주 정중한 제목으로 우려를 전했다(6월 24일 자). 길게는 MB정부 당시 ‘동남권광역경제권’ 논의 때부터, 짧게는 3년 전 김경수 전 경남지사의 대담한 제안으로 시작된 특별연합이 좌초될 위기에 처할지도 모른다는 기우는 이제 현실이 됐다. 지난 22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1년 지역소득(잠정)’ 자료에서도 부산·경남의 지역내총생산(GRDP)은 전국 최저치 수준에서 여전히 못 벗어나며, 수도권으로의 청년 순이동 인구는 매년 수만 명에 이르는 등 최악으로 치닫는 지역 현실을 이제는 개개 지방정부의 노력과 열정만으로 결코 풀 수 없다. 그럼에도 부울경 메가시티를 꿈꾸는 특별연합은 지난 10월 이후 기어이 해산 수순을 밟게 됐다.
이 참담함을 ‘갈라파고스 악몽에 갇힌 부울경’이란 제목으로 일갈했다(10월 28일 자). 새해에는 뜬금없는 초광역 경제동맹이나 부산·경남 간 행정통합이란 미명으로 더 이상 지역 시도민에게 미래 없는 ‘희망고문’을 일삼지 말았으면 하는 기대감을 가져본다. 다가오는 계묘년은 정치 인권 지역 어디라도 올해보다는 조금 나은 모습으로 마주할 수 있는 그런 한 해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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