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우크라이나서 맞서는 남북

정철환 유럽 특파원 2022. 12. 30.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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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6일 러시아의 공격으로 단전이 실시된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의 한 히팅포인트에서 시민들이 발전기를 돌려 얻은 전기로 휴대폰을 충전하고 노트북으로 작업도 하고 있다./EPA 연합뉴스

전쟁 발발 11개월째, 폭격이 계속 이어지는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 다시 다녀왔다. 심각한 단전(斷電) 문제 와중에도 주요 호텔들이 정상 운영되고 있어 놀랐다. 공습 직후 외부 전력이 끊겨도 호텔의 조명과 TV는 멀쩡하게 나왔고, 수도와 난방도 계속 공급됐다. 호텔 매니저에게 비결을 물어 보니 “지하 기계실에서 작동 중인 한국산 비상 발전기 덕분”이란 대답이 나왔다.

이 호텔이 보유한 대형 디젤 발전기 두 대 중 하나가 ‘메이드 인 코리아’다. 호텔 측은 “다른 한 대(중국산)와 비교해 신뢰성, 정숙성, 연비 등에서 모두 뛰어나 추가 도입을 하려 한다”고 밝혔다. 키이우에서 만난 김형태 주우크라이나 대사도 “한국산 발전기를 찾는 곳이 많다”고 했다. 여기저기 소문이 나면서 병원과 관청, 아파트 단지 등 곳곳에서 한국산 발전기가 활약 중이다.

툭하면 전기가 끊기는 와중에도 키이우 일대 병원엔 매일 수십 명씩 부상병이 실려오고 있다. 병원 수술실과 중환자실을 운영하려면 안정적 전력 공급이 필수다. 한국산 발전기가 우크라이나 전사들의 생명을 구하는 데 일조하고 있는 셈이다. 발전기는 하루 10여 시간 이상 반복되는 정전 상황에서 끊임없이 수도와 난방 펌프를 돌리는 데 쓰인다. 폭격과 혹한(酷寒) 속에도 키이우 시민들이 최소한의 일상을 이어가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생명과 희망을 수출하고 있다면, 북한은 반대로 이를 앗아가는 일을 하고 있다. 북한이 러시아에 무기를 공급하고 있다는 사실을 22일 미국 백악관이 공식 확인했다.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극악무도한 인권 유린을 자행하고 있다는 러시아 용병 집단 ‘와그너 그룹’에 총탄과 포탄, 로켓 등을 팔았고, 앞으로도 계속 무기를 보낼 예정이라고 한다.

수천㎞ 떨어진 우크라이나 땅에서 남과 북이 정반대로 맞선 것은 민족의 또 다른 비극이다. 한반도에서 70여 년간 벌어져온 대립이 신(新)냉전 시대를 맞아 국제적으로 확장해 가는 것이다. 한쪽이 빈곤과 고난을 극복하고 생명을 지키는 힘을 대표한다면, 다른 한쪽은 죽음으로 인간을 억압하고 지배하려는 힘을 대표한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러·중과 서방의 대립이 첨예해질수록, 남북 간의 이러한 대립은 점점 더 늘어날 것이다.

어쩌면 우리 스스로 초래한 일이다. 지난 수십 년간 북에 보낸 쌀과 비료, 현금은 굶주린 동포가 아닌 폭압적 정권의 생명 연장에 쓰였다. 그리고 포탄과 미사일, 핵무기가 되어 우리 머리 위를 겨누고 있다. 그 위협은 어느새 주변국과 바다 건너 동맹국에까지 미쳤고, 이제 우크라이나 땅에서 자유를 위해 싸우는 무고한 이들의 피를 뿌리는 데 쓰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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