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개혁의 길, 청년들과 가야 한다 [동아광장/이지홍]

이지홍 객원논설위원·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2022. 12. 30.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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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개혁, 대기업 정규직 늘어야 청년 지지
구조조정 비용 줄이고, 혁신으로 ‘파이’ 키워야
MZ세대 눈높이 맞는 솔직한 개혁 논쟁 보길
이지홍 객원논설위원·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윤석열 대통령이 노동개혁에 나섰다. 노조와 파업에 원칙 대응하며 지지율도 상승세다. 한국 경제의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체질 개선을 더는 미룰 수 없다는 공감대가 확산되는 분위기다. 50년 만의 인플레이션 덕분인지 폭주하던 포퓰리즘에 제동이 걸렸다. 우울한 시기에 그나마 반가운 소식이다. 작년 이맘땐 ‘기본 시리즈’와 ‘50조, 100조’가 사회 담론의 중심에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개혁의 속을 채워야 하는 큰 숙제가 남아 있다. 지지 세력도 충분치 않다. 무엇보다 젊은 세대의 공감을 이끌어 낼 구체적인 성장 비전이 필요하다. 개혁을 해야 성장한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소득을 늘리면 성장한다는 식의 모호한 구결은 더 이상 먹히지 않는다. 정확하고 현실적인 인과 논리를 장황하지 않게 콤팩트한 프레젠테이션으로 전달해야 한다. 미팅은 짧고 효율적이어야 한다. 그게 MZ세대가 원하는 성공과 비전의 리더십이다.

그러려면 핵심부터 짚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거론되는 이슈들은 핵심과는 거리가 멀다. 주 52시간 근무제를 유연하게 만들면 어떻게 소득이 느는지 청년들은 묻는다. 혁신과 생산성 향상을 통한 선진국형 성장이 아니라 그냥 예전 개발도상국 때처럼 죽도록 일하란 소리로 들린다. 개혁의 목적이 중소기업의 생존인 듯하다. 일하는 시간은 개인의 선택이고 딱히 타인의 자유를 해치지도 않으니 국가가 개입할 철학적 근거가 빈약하다고 하면 차라리 수긍이 가겠다. 젊은이들은 노사관계를 착취와 복종의 관계로 보지 않는다.

최근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한국 청년들이 가장 원하는 직장은 대기업이었다. 정확하게는 대기업 ‘정규직’일 것이다. 전체 임금 근로직의 10%에 불과한 신의 직장이다. 노동개혁이 청년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려면 결국 대기업 정규직이 획기적으로 늘어나게끔 법과 제도를 바꿔야 하는 것이다.

한데 정부가 들고나온 과제들은 온통 중소기업 살리기와 비정규직 확대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주 52시간제 완화는 중소기업들 민원이다. 파견 업종을 확대하고 파업 시 대체 근로를 허용한다고 원청 대기업이 정규직을 더 뽑을 것 같지도 않다. 성과제 도입 역시 그 효과가 애매해 보이긴 마찬가지다. 청년실업 문제의 핵심은 중소기업과 비정규직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해법이 잘 보이지 않는다.

기업이 비정규직을 선호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정규직보다 비용이 훨씬 적게 들어서다. 한국의 좌파는 비정규직 처우를 개선하고 정규직 전환을 강제하는 방식으로 정규직-비정규직 간 격차를 해소하고 양질의 일자리를 늘리고자 했다. 중소기업을 키우려 대기업에 세금과 규제를 가했다. 일견 이상적인 방향이긴 하나 현실에선 통할 리 없다. 일자리를 늘려야 하는데 비용을 늘렸기 때문이다. 정답은 정규직 고용 부담을 낮추는 것이다.

특히 구조조정 비용이 높다. 혁신이 중요할수록 급변하는 세상에 더 기민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 힘들 때 부담을 선제적으로 덜어줘야 기업이 모험을 하고 전체 ‘파이’가 자라서 고용 여건도 좋아진다. 대기업도 더 생긴다. 전통적으로 근로자 보호 규제가 강한 유럽에서도 이런 노동유연성을 노동개혁의 핵심 이슈로 본다. 덴마크 같은 나라에선 이미 미국처럼 해고가 자유롭다. 그 대신 두껍고 정교한 노동·복지 정책을 편다. 안정된 소득을 보장하면서도 미국에 버금가는 성장과 고용 퍼포먼스를 낸다. 물론 이 ‘유연안정성(flexicurity)’ 모델의 약점은 세계 최고 수준의 세금 부담이다. 아메리칸 드림을 유럽 가서 꾸지 않는 이유다. 한국의 노동개혁은 과연 어떤 길을 가야 할까.

MZ세대는 1990년대 외환위기 이후 성인이 됐다. 이들이 경험한 한국 사회는 기성세대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들에겐 586세대를 분노하게 만든 정리해고 트라우마 따윈 없다. 이미 이들은 전 세계에서 가장 빈번하게 직장을 옮겨 다닌다. 평균 근속 연수가 미국보다도 낮은 나라가 한국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동일 노동이란 없으며 평생직장은 금수저의 전유물임을 당연시하며 살아온 게 2030세대다. 해고와 유연성을 논하는 게 불편하지 않다.

성장률 1% 시대가 눈앞에 다가왔다. 모든 지표가 험난한 한 해를 예고하고 있다. 아마도 정부는 발등의 불을 끄느라 정신이 없을 것이다. 이번 정권의 성격상 개혁을 염두에 둔 사전 준비가 있었을 리도 없다. 대통령의 의지가 가장 강한 것 같다. 어쨌든 새로운 개혁을 향한 닻은 올라갔다. 이왕이면 MZ세대 눈높이에 걸맞은 솔직한 논쟁을 봤으면 한다.

이지홍 객원논설위원·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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