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국과 함께하는 명작 고전 산책] <56> 주홍글자-너대니얼 호손(1804~1864)

서부국 서평가 2022. 12. 30.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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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없는 출산으로 평생을 ‘탕녀’ 낙인…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떤가

- 신앙 공동체인 청교도 마을 배경
- 간음녀라는 ‘주홍글자’ 형벌에도
- 남 도우며 살아가는 여성 이야기
- 아이 친부인 목사는 죽음 속 회개
- ‘마녀사냥’ 같은 교조주의에 경종

- 삶이 가진 개방성과 다양성 인정
- 무관심한듯 따뜻한 시선 큰 울림

“인간이 지닌 나약과 그에 뒤따르는 슬픔을 다룬 얘기랍니다.” 귀가 기울여진다. 내 얘기일 수도 있으니까. 호손도 그리 생각하고 이 고전을 쓴 듯하다. 1장에서 주제를 밝히며 덧붙였다. “암담한 결말을 조금이나마 누그러지게 했으니 기대하셔도 돼요.”

헤스터 프린이 펄을 안고 세일럼 마을 내 처형대에 올라 망신당하고 있는 장면을 묘사한 삽화.


글 짜임새, 서술 방식, 출간 시기를 절묘하게 기획해 홈런을 날린 고전이다. 글 짜임새를 먼저 보자. 1장 앞에 ‘세관(稅關)’이란 서장(序章)을, 그 앞에 서문을 썼다. 여기서 호손은 자신과 가문에 얽힌 몇 가지 과거사를 털어놓았다. 사실성 강조다. 자신은 실제로 1846~1849년 미 매사추세츠주 세일럼 세관에 소속한 세입 감독관이었다고 밝힌다. 주홍 글자가 지닌 의미도 이때 알게 됐다고 덧붙였다. 출간 시기는? 호손이 세관을 나온 이듬해인 1850년이다. 이쯤 되면 독자는 허구와 사실을 구분하기 어렵다. 가독성은 한껏 높아졌다. 호손은 히든카드를 한 장 더 쥐었다. 소재가 동서고금 화젯거리인 ‘상간녀 얘기’ 아닌가. 초판 2500권이 이틀 만에 동났다.

호손은 세관 사무실 잡동사니에서 오래된 양피지 꾸러미를 발견한다. 100년 전 전임자인 퓨 씨가 남긴 유물. 꾸러미를 풀어보니 빛바랜 주홍색 천 조각이 나왔다. 금실로 수 놓은 희미한 자국이 보이는데 글자 윤곽이다. 높이가 8㎝ 정도인 A자. 이어 발견한 퓨 씨가 쓴 원고. 궁금증을 풀어준다. 매사추세츠주 청교도 식민지 초기부터 17세기 말까지 살았던 헤스터 프린이란 여인이 이 주홍색 천을 옷가슴에 달았으며, 그녀를 둘러싸고 많은 일이 벌어졌다는 걸 알게 된다.

‘헤스터 스캔들’은 사실일까. 호손은 자신은 현실과 공상 사이에 자리 잡은 중립 지대에서 글을 쓴다며 그 판단은 독자에게 넘긴다. 그 결과, 사실과 상상력이란 양 날개를 단, 호손이 지은 이 첫 장편소설은 현대까지 훨훨 날아왔다.

추리 소설 같은 맛도 지녔다. 영어 서명(書名)이 ‘The Scarlet Letter, A Romance’. A는 정관사? 아니면 주홍색 천 조각에 나타난 A자일까. 로맨스라니! 현대 독자는 공감한다. 죄의식 회개 복수심 용서 후회 헌신 수치심 같은 인간 심리와 감정은 지금도 여전하니까.


저자는 이상향 사회 구축을 목표로 삼았던 초기 청교도 마을에 감옥과 묘지가 가장 먼저 생겼다고 운을 뗀다. 사회와 개인 간 갈등, 이상과 현실 간 괴리가 주제라는 걸 암시하듯. 1642년 6월 어느 날 아침, 보스턴 청교도 마을. 목조 감옥 문이 열리고 키 큰 젊은 여인이 간수와 함께 성큼 밖으로 나섰다. 그녀는 갓난애를 품에 안았다. 이 여인 이름은 헤스터 프린, 3개월 된 딸애는 펄이다. 몰려온 군중은 그녀 가슴팍에 달린 주홍 글자 A가 수 놓인 천 조각을 보곤 쑥덕거린다. 신앙 공동체인 청교도 사회에선 종교와 법률이 한 몸. 간음(Adultery)한 헤스터는 주홍 글자 A를 죽을 때까지 항상 옷가슴에 달아야 하는 벌을 받았다. 왜 하필 주홍색일까. 이 색은 귀족이나 가톨릭 사제에겐 권위·존귀를 상징하지만, 한편으론 ‘간음’을 뜻하기도 한다. 요한 묵시록 17장을 보면 탕녀 바빌론이 주홍색 옷을 입었다.

“저년은 우리 얼굴에 먹칠한 년이니까 죽어야 마땅해요.” 못생긴 마을 여자가 아우성쳐도 헤스터는 당당하다. ‘규범 따위는 돼지에게나 줘.’ 억압에 반발한다. 이 여인은 수예 솜씨가 뛰어났다. 금실로 정교하게 수를 놓고 독특한 무늬로 둘레를 두른 A자. 불의를 상징하는 그 글자가 여름 햇살에 반짝인다. 호손은 이런 식으로 청교도 사회를 풍자한다. ‘자신이 맡은 세관 검사관직이 종신직이라 늙은 짐승이 돼 갈까 봐 걱정이었는데 정권이 바뀌자 내 목이 제일 먼저 날아갔다’는 문장도 그렇다.

요한묵시록(요한계시록) 17장에 나오는 탕녀 바빌론. 주홍색 옷을 입고 있다.


남편 없이 출산한 그녀는 친부를 밝히지 않고 죄를 혼자 뒤집어쓴다. 하찮은 간통녀가 아니다. 호손은 그녀를 죄책감이란 수렁에 빠뜨리지 않는다. 헤스터는 아이를 안고 마을 처형대에 올라가 3시간 서서 모욕당한 후 해변 오두막으로 돌아간다. 그녀를 이방인이자 왜소한 한 노인이 군중 틈에서 지켜본다. 죽었다고 알려진 남편 로저 칠링워스다. 은둔한 학자인 그는 헤스터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가정을 꾸렸다. 그 후 아내는 먼저 이 마을로 왔다. 남편은 뒤따라오지 않고 2년간 행방불명이었다. 다들 죽었다고 믿었다. 그는 친부가 누군지 아내를 추궁하지만, 답을 듣지 못한다.

이 마을 아서 딤스데일은 신망 높은 청년 목사. 그는 헤스터 모녀가 출옥한 날 이후 가슴을 손으로 가리는 버릇이 생기고 날로 쇠약해진다. 의사를 자처한 칠링워스는 그를 치료한다며 같이 사는데 행동이 수상쩍다. 칠링워스 역시 갈수록 몸이 뒤틀리고 인상이 일그러진다.

7년 세월이 흘렀다. 헤스터는 주홍 글자를 단 채 잘 산다. 삯바느질해 달라는 요청이 줄을 이었다. 지역 사회에 선행을 베풀었다. 스스로 A자 의미를 바꾸었다. 간음(Adultery)한 여인이지만 능력(Able)을 인정받고 덕행을 쌓아 지역민에게 천사(Angle)라고 칭송받으니까.

친부는 딤스데일 목사였다. 그 사실을 눈치챈 칠링워스, 목사가 죄책감에 괴로워하는 걸 보는 낙으로 산다. 목사도 마침내 칠링워스 정체를 알아차린다. 파국을 감지한 헤스터와 딤스데일. 청교도 마을에서 함께 도망치려 하지만 비극이 기다릴 뿐이다. 딤스데일은 새 총독 취임을 축하하는 연설을 마친 후 헤스터 모녀와 함께 처형대 위에 올라섰다. 자기 가슴을 풀어 헤친 그는 자기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빈다. 그러곤 헤스터 품에 안겨 숨진다. 군중은 목사 가슴에 A자 낙인이 있었다니 없었다니 하며 설왕설래한다. 7세로 자란 펄은 아버지 목사에게 마지막 입맞춤을 한다. 딤스데일은 죽음으로 회개해 자신이 혼탁하게 만든 청교도 정신을 원래로 되돌려 놓았다.

이제 한 사람, 칠링워스가 남았다. 목사에 대한 복수심 하나로 살아온 그는 인생 목표가 사라지자 더는 살아갈 의욕을 잃었는지 얼마 못 가 눈을 감는다. 반전이 일어난다. 칠링워스 노인이 펄에게 막대한 유산을 남겼다. 헤스터 모녀는 목사가 숨진 후 마을을 떠났다. 몇 년 후 펄이 성장해 단란한 가정을 이루었다는 소문이 떠돈다. 늙은 헤스터는 홀로 해변 오두막으로 돌아온다. 가슴엔 여전히 주홍 글자가 달렸다. 그녀는 고통받는 여인들을 위로하는 삶을 살다 홀로 숨진다. 그녀 묘비엔 단 한 자, A자만 새겨진다. 저자는 이렇게 썼다. ‘검은 바탕에 주홍 글자 A’. 이 고전 마지막 문장이다.

미국인에게 이 고전은 ‘국민소설’로 통한다. 미국을 세운 정신인 청교도주의, 이주민 역사·문화를 만나게 해주니까. 그들은 청교도주의에 드리운 빛과 그림자를 본다. 호손은 그중 그림자를 보여줬다. ‘마녀사냥’ 같은 교조주의가 가진 해독에 경종을 울렸다. 현대 미국인들은 그런 교훈을 이 고전에서 얻는다.

호손이 삶을 통찰하는 방식도 큰 울림을 준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이를 ‘참된 유쾌함’이랬다. 사물을 정해진 틀에 집어넣지 않는다. 삶이 가진 개방성 다양성에 대한 확신이다. 이는 근대 정신이기도 하다. 저자는 세상을 무심·무관심한 듯 따듯하게 응시한다. “인간과 세상을 어둡고 끝이 보이지 않는 두려운 존재로 단정할 수 없다.”


‘주홍글자’를 읽으며 우리 사회를 돌아본다. 다양성을 받아들이는 데 여전히 인색한 모습이다. 조금만 달라도 싫어하며 마구 찍어대는 낙인. 곳곳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냈다. 내 손은 그 도장을 쥐지 않았는가. 한번 살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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