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현준의 도시 이야기] 새해엔 목 좋은 ‘가짜 맛집’에 속지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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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시선 모이고 많이 노출되는 곳이기 때문
온라인서도 눈에 잘 띄게 하려 댓글 추천수 조작
여론조사도 “여기가 대세” 떠들며 생각을 조종
주위에 휩쓸리지 말고 중심 잡는 이들 많아지길
사거리보다 삼거리가 장사가 더 잘된다. 조선시대 천안삼거리나 뉴욕 타임스스퀘어가 대표적 사례다. 사거리는 도로에서 진행 방향으로 보이는 것은 도로 위 빈 공간뿐이다. 하지만 삼거리 도로 위를 이동하면 진행 방향에 건물이 보이게 된다. 그 건물은 다른 건물보다 더 많은 사람의 시선 집중을 받을 수 있다. 내가 만든 공간과 권력의 제1 원칙은 ‘사람의 시선이 모이는 곳에 권력이 만들어진다’이다. 사람의 시선에 많이 노출되는 곳은 다른 곳에 비해 정보량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흔히 우리가 말하는 ‘장사는 목이 좋아야 한다’는 것은 사람들의 시선에 노출되는 공간 구조여야 한다는 것이다. 정보의 집중은 권력을 만든다.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인터넷 공간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공간과 권력의 메커니즘은 인터넷 가상 공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많이 노출되는 곳이 권력을 가진다. 매스미디어에 자주 노출되는 앵커맨, 연예인, 유튜버들이 권력을 가지게 된다. 비즈니스 측면에서 본다면 인터넷에 사진이 많이 올라오는 곳이 사람 눈에 많이 띄는 곳이 된다. 인터넷에 사진이 많이 올라오는 곳이 ‘인터넷 삼거리’다. 그래서 요즘 회사들은 어떻게든 자사의 내용을 소비자들이 인터넷에 올리도록 노력한다. 어려운 말로 ‘바이럴 마케팅’이라고 한다. 전염병처럼 퍼지는 마케팅이라고 해서 전염병을 뜻하는 바이러스에서 파생된 용어다. 과거에는 길을 가다가 대로변에서 눈에 자주 띄면 장사가 되었다. 우리는 지금 주로 인터넷 공간에서 어슬렁거린다. 인터넷에서 눈에 자주 띄는 정보가 맛집을 만든다. 공간과 상관없는 화장품이나 안경 회사가 큰돈을 들여서 플래그십 스토어를 만들고 돈이 되지 않는 전시회를 여는 이유가 여기 있다. 소비자들이 사진을 찍어서 자신의 홈피에 올리게 하기 위함이다. 그러면 자사가 가상 공간에서 삼거리 코너에 자리 잡은 가게가 되는 것이다.
일단 사람이 모이기 시작한 곳은 더 많은 사람이 몰린다. 큰 집단의 일부가 되고 싶어 하는 사피엔스의 본능 때문이다. 유발 하라리 교수는 현생 인류의 조상인 사피엔스가 경쟁 종들을 물리치고 지구를 정복할 수 있었던 것이 집단의 규모를 키웠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과 일대일로 싸우면 이기기 어렵다. 하지만 사피엔스는 100명의 집단으로 다녔고 네안데르탈인 집단은 수십 명 규모였기 때문에 패싸움에서는 이겼다는 이야기다. 우리 조상은 예부터 10명과 100명의 집단이 있으면 100명을 택해서 생존해온 사람들이다. 우리는 그런 사람의 후예다. 인간의 유전적 본능에는 다수에 속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숨어 있다. 대표 사례는 뉴욕 프로야구팀이다. 뉴욕에는 두 야구팀이 있다. 하나는 백년 넘은 전통의 ‘뉴욕 양키스’고, 다른 하나는 신생팀인 ‘뉴욕 메츠’다. 팬층을 들여다보면 뉴욕 매츠에는 백인 남성 팬이 많다. 상대적으로 뉴욕 양키스 팬에는 소수민족, 이민자, 불법 체류자가 많다. 그 이유를 심리학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미국 사회는 백인 남성이 주류인 사회다. 백인 남성은 주변 눈치를 보지 않고 양키스나 메츠 중 하나를 선택해서 응원한다. 반면 소수민족, 이민자, 불법 체류자들은 미국의 주류 사회에 편입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이들은 팬층이 두껍고 큰 집단인 양키스 팬이 되려고 한다는 것이다. 소속감을 못 느끼는 사람일수록 트렌드에 민감해지고 주변 상황을 보고 대세의 흐름에 몸을 실으려고 한다.
이런 마음을 가장 많이 이용하는 사람이 정치인이다. 일부 정치인이 킹크랩을 이용해서 댓글이 상위에 올라가게 조작한 이유가 여기 있다. 댓글이 상위에 올라가면 일단 눈에 더 띈다. 그리고 자기 측을 지지하는 댓글의 추천 수를 많게 조작해서 독자들이 그 의견이 대세인 것으로 믿게 만들어서 자기편에 편입하게 만든 것이다. 또 다른 방법이 여론조사다. 자신들에게 유리한 문항과 질문 순서로 자신들이 원하는 여론의 % 숫자를 만든다. 숫자는 객관적 팩트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숫자가 큰 것은 “여기가 대세다. 여기가 맛집이다”라고 떠드는 것과 같다. 그렇게 조작된 여론조사 데이터를 이용해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대중을 몰아간다. 마치 삼거리로 몰아가서 코너 가게로 손님을 유도하는 것과 같다. 시도 때도 없이 여론조사를 발표하는 사회는 내 생각을 조종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은 바람직하지 않은 사회다. 여론조사 많이 하는 사회는 개인의 생각을 가지지 못하게 방해하는 사회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정보를 조작해서 정치권력을 만들어 가지려는 자가 여론조사 회사를 만든다.
도시 속 공간은 정보의 불균형을 만든다. 정보의 불균형은 권력을 만든다. 이러게 만들어진 정보의 불균형은 사람을 조종하고 움직이는 시스템이고 권력이다. 현대사회는 인터넷 공간의 시대다. 인터넷 공간에서 정보 조작을 통해 불균형을 만들어서 사람을 조종하는 사람이 늘어난다. 가짜 맛집도 만들어지고, 가짜 대세도 만들어진다. 물리적 공간을 만드는 것과 비교해 가짜 뉴스, 댓글 조작, 추천 숫자, 조작된 통계를 만드는 데는 큰돈이 들어가지 않는다. 나쁜 마음만 먹으면 쉽게 다른 사람을 조종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댓글과 데이터 숫자를 조작하는 것은 사피엔스의 본능을 이용해서 우리 생각을 조종하려는 수작이다. 새해에는 주변 흐름의 눈치를 보기보다는 내 생각의 중심을 잡고 사는 사람이 이 사회에 더 많아지기를 바란다. 그래야 우리 사회가 올바로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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