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수진의 마음으로 사진 읽기] [46] 흐르는 것은 사람이다

신수진 예술기획자·한국외국어대 초빙교수 2022. 12. 30.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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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운구, 조세희, 경기 가평, 1993.

“사람들 얼굴 위로 빛과 그늘이 부단히 교차한다. 시간은 시계 속에 그대로이고 사람들은 지나갔다. 흐르는 것은 사람이다.”(강운구)

사람과 때가 만나 시절의 운이 생긴다. 때는 사람을 그 자리에 있게 하고 떠나게도 한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도 때에 따라 모임과 흩어짐이 달라진다. 나의 때와 누군가의 때가 엮이고 섞이면서 또 한 해가 저문다. 그렇게 사람도 흘러간다.

강운구(1941~ )는 한국 다큐멘터리 사진의 자존심이다. 꼿꼿하고 빈틈없는 성품에 두꺼운 애호가층과 열렬한 추종자들을 거느린 사진계의 ‘선생님’이다. 그의 책 ‘사람의 그때(2021)’에는 이십대 시절부터 최근까지 이런저런 인연으로 만난 문인, 화가, 건축가, 디자이너, 사진가 등의 초상이 실렸다.

강운구의 인물 사진이 특별한 것은 찍은 사람과 찍힌 사람들의 함께 보낸 시간을 선명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의 사진에 담긴 ‘시대를 풍미한 예술가들’은 스쳐 지나는 사람이 아니다. 동시대를 살아낸 그들은 공기처럼 스며들어 서로를 메우는 사이였다. 그 시간을 기록한 강운구는 우연을 필연으로 붙잡아 두는 인연의 연금술사처럼 그때의 그 사람을 소환한다.

소설가 조세희(1942-2022)와 사진가 강운구는 여행 동무였다. 술을 마시지 않는 습성이 같고 고운 심성이어서 죽이 잘 맞았다고 회상하는 남은 동무는 삼십년 전 이 사진이 찍힌 곳을 ‘그 친구의 고향 근처’라고 전한다. 산업화와 자본이 이끄는 고속 성장 시대의 갈등과 앙금, 소외와 좌절은 치열하게 그 시절을 살아낸 두 사람에게 공통된 관심사였다.

마치 촬영 세트처럼 온전하게 주인공을 감싸 떠받치는 폐자재는 저 너머 촘촘한 숲과 잔잔한 풀꽃들을 가린다. 부조리한 세상에서 낭만을 말할 수 없는 이야기꾼의 운명을 받아들이듯이 정면으로 선 소설가의 눈빛은 미묘하게 카메라와 어긋나 있다.

오랜 인연은 종국엔 헤어짐의 슬픔을 남긴다지만, 강운구의 사진 속에 성성하게 살아있는 주인공들은 새로운 시간 속에서 또 다른 인연을 만들어 갈 것이다. 흐르는 것은 예술이 아니라 사람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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