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일의 좋은 정부 만들기] 법인세 논쟁, 어떻게 봐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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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끝에 지난 주말에 내년도 예산이 국회를 통과했다. 헌법은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인 12월2일까지 예산이 통과되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니, 규정 시한을 3주 이상 넘겼다. 무려 헌법을 위반한 것이지만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2014년 이전만 해도 이 정도 늦는 것은 다반사였다. 가령 2014년 예산안은 해를 넘긴 1월1일에 통과되었다. 하지만 상습적인 늑장 통과를 해결하기 위해 소위 국회선진화법의 하나로 예산안 자동 부의 제도라는 걸 도입한 이후에는 어쨌든 12월 초에는 통과되었다. 3주 이상 늦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체 이리 늦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이번 예산안 통과의 최대 쟁점은 법인세 세율 인하 문제였다. 애초 정부는 25%인 법인세 최고세율을 22%로 3%포인트 낮출 것을 주장했다. 법인세 최고세율은 2017년까지 22%였는데 문재인 정부에서 25%로 높였다. 이를 22%로 돌려놓자는 것이었다. 물론 야당은 반대했다. 이후 네 단계 과표 구간 모두에서 1%포인트씩 낮추는 것으로 합의했고 예산안은 통과되었다.
정부가 최고세율 3%포인트 인하로 내건 명분은 투자 활성화였다. 경쟁국들보다 우리 법인세율이 높아서 기업 투자가 위축되니, 이를 낮춰서 투자를 활성화하자는 것이었다. 야당 반대의 명분은 부자 감세였다. 그리고 법인세율 낮춘다고 투자가 촉진된다는 근거가 빈약하다고 덧붙였다. 어느 쪽 말이 맞을까. 게다가 최고세율 3%포인트 인하에서 모든 구간 세율 1%포인트 인하로 바뀌었는데, 그럼 투자 활성화와 부자 감세 효과는 또 어떻게 변한 건가. 근본적으로 대체 우리의 법인세는 뭐가 문제였는가, 그리고 개편 후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건가.
1~3%P 인하로 투자 증진 어려워
세금은 정부가 민간의 돈을 강제로 걷어가는 것이다. 정부가 일하려면 징세는 당연하다. 하지만 민간에는 부담이 된다. 그래서 같은 액수를 걷더라도 기왕이면 민간의 부담이 크지 않게 하는 것, 그리고 부담이 공정하다고 여기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같은 금액을 걷어도 세금 형태에 따라 민간 부담이 달라지는 까닭은 세금 부과로 민간의 행태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담뱃세를 올리면 흡연이 줄어들고 휘발유세를 내리면 자가용 출퇴근이 늘어난다. 같은 액수를 걷더라도 민간 경제활동에 더 부정적인 세금이 있고 덜 영향을 미치는 세금이 있다. 경제활동에 부정적인 세금으로 지목되는 대표적인 것이 법인세다. 높은 법인세율이 기업 투자를 위축한다는 주장이 바로 그렇다.
법인세는 기업 이윤에 매긴다. 이윤이 감소하면 투자 유인이 줄어든다. 그러니 법인세를 높이면 투자가 위축된다는 주장 자체는 이론적으로 타당하다. 문제는 그 크기가 얼마냐이다. 40%이던 것을 20%로 낮추면 확실히 투자가 늘 것이다. 하지만 25%인 것을 22% 혹은 24%로 낮추면? 기업의 투자 결정에는 다양한 요인이 영향을 미친다. 그중 법인세율 3%포인트 인하의 투자 증진 효과는 그다지 클 것 같지 않다. 하물며 1%포인트 인하는 아무리 생각해도 가시적인 투자 증진을 가져올 것 같지 않다. 생각해 보라. 소득세를 1~3%포인트 내리면 그만큼 소득이 늘어나니 기분은 좋겠지만, 그렇다고 얼마나 더 열심히 일하겠는가. 실증연구 결과를 봐도 소폭의 법인세율 인하가 투자 증진을 가져온다는 것은 찾기 어렵다.
이번에는 부자 감세 문제를 따져보자. 법인세 최고세율은 3000억원 이상 이윤을 낸 기업에만 적용된다. 그러니 정부안대로 최고세율이 인하되면 대기업이 혜택을 보는 것은 맞다. 그런데 ‘대기업 혜택=부자 혜택’의 성립 여부는 좀 복잡하다. 법인세 부담 주체는 기업의 주인, 주주이다. 세 부담 일부를 근로자와 소비자에게 떠넘긴다는 연구도 있지만 어쨌든 명시적인 부담은 주주가 진다. 대기업의 주주 구성은 다양하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 주식 보유자는 국내에서만 300만명에 달한다. 물론 고소득층일수록 대기업 주식을 많이 보유했을 테니 최고세율 인하 혜택은 고소득층이 더 많이 볼 것이다. 그렇다면 모든 과표 구간 세율 인하는 어떨까? 오너의 회사 지분 보유 비중은 대기업보다는 중견기업이 훨씬 높다. 최고세율 인하가 모든 과표 구간 인하로 바뀐 덕분에 중견기업 오너(알짜배기 부자가 많을 것이다)들은 생각지도 않던 혜택을 누리게 되었다. 글쎄, 어느 쪽이 좀 더 부자 감세에 해당할까? 대기업 주주의 다수는 중견기업 오너 사장보다 부자일 수 없다. 그래서 다른 국가의 법인세율은 기업의 이윤 크기에 상관없이 일정하다. 우리 같은 네 단계의 누진세 체계는 찾기 어렵다.
재원확충 방안 없는 인하는 잘못
1980년대 중반까지 OECD 국가의 법인세율은 40%가 훨씬 넘었다.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이후 본격적인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바람이 불면서 세계 각국은 법인세율을 경쟁적으로 내리기 시작했다. 지금 OECD 국가의 법인세 최고세율 평균은 20%대 초중반이다. 우리는 지방세 2.5%를 더하면 27.5%이니 평균보다 다소 높은 편이다. 하지만 우리는 다양한 감면 제도가 있어 27.5%를 온전히 내는 기업은 없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도 실제 내는 것은 20%대 초중반일 것 같다. 다른 국가도 감면 제도는 있다. 그러나 우리의 감면 규모는 다른 국가보다 상당히 크다.
투자를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지난 수십 년간 법인세율이 꾸준히 낮아진 것은 맞다. 그러나 20%대 초중반인 세율이 앞으로도 계속 낮아질 것 같지는 않다. 이미 충분히 낮아졌다. 또한, 누가 뭐래도 현대 자본주의경제에서 기업은 갖은 혜택을 누린다. 그리고 기업의 담세 능력은 개인보다 훨씬 높다.
나는 이번 법인세율 인하를, 그 자체만 본다면 썩 지지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반대하지도 않는다. 기업 친화적인 정책의 일환으로 할 수 있다. 다만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재원 확보는 어떻게 할 것이냐이다. 누구나 인정하듯 우리 재정은 여유 있는 상황이 전혀 아니다. 지금도 적자로 운영하고 있지만, 앞으로 재정 수요는 훨씬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상황에서 재원 확충 방안은 제시하지 않은 채 깎아만 주면 어찌할 것인가. 이게 법인세를 포함한 이번 세제 개편의 가장 잘못된 점이다.
김태일 고려대 교수·좋은예산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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