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자본 편향적 노동을 깨뜨릴 상상력
지난 두 달 동안 폭풍이 몰아치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국정철학에 맞춘 억압적 노동정책들이 하나둘 발표되고 있다. 현 정부 임기 4년 동안 추진될 것이기에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시행 1년도 안 되어 자율예방에 초점을 두고 있다. 주 52시간 상한은 앞으로 69시간 이상 가능할지도 모른다. 최저임금은 업종별 차등적용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이 모두 자본과 기업들이 대선 과정에서 요구한 민원(?)들이다.
게다가 약 1만2000명의 인력 감축이 포함된 공공기관 구조조정 계획까지 발표되었다. 비핵심 업무, 수요감소, 사업종료 등이 이유였다. 15년 전에도 비슷했다. 공공기관 선진화 정책이 추진되었고 많은 업무들이 외주화되었다. 문제는 불과 4년 전에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정책으로 추진된 노동자들이 포함된 점이다. 고속도로 톨게이트 수납업무, 가스전기 검침, 콜센터 상담, 청소, 경비 노동자들이다. 고용불안과 차별 해소를 위한 정책이 한순간에 무너지고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동전 던지기 규칙처럼 될 성질이 아닌데도 말이다.
40년 전으로 회귀된 현실을 접하는 듯하다. 1980년대 영국의 마거릿 대처, 미국 로럴드 레이건 정부 시기가 연상된다. 자유시장이 어느 순간 본질이 되고, 예외 없이 긴축 재정이 추진된다. 당시 영국과 미국의 노사관계에는 국가가 치밀하게 개입했다. 경제 위기가 언론을 통해 보도된다. 정부는 노조 파업에 업무개시명령과 자격 박탈로 대응한다. 윤석열 정부의 공공행정 문건들에서도 혁신이나 규제 완화 등 효율성이라는 단어가 신화처럼 부활했다. 소위 신자유주의 정권 시기에 사용되던 언어들이다. 시장경제 신봉자들 특유의 문체와 습관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순간이다.
우리도 일부 보수학자들이 미래노동시장 과제에 파견법 완화나 노동조합의 단체행동 제약과 같은 과제도 슬쩍 끼워 넣었다. 이미 불법파업이라는 말부터 노조 부패라는 표현까지 언론을 통해 여과 없이 쏟아지고 있다. 노동과 시민사회 등 비영리단체의 민간보조금 지원사업의 통제는 그 시작인 것 같다. 보수정권의 국가기구 활용 방식이나 통제의 끝이 어딘지 알 수는 없다. 노동개혁의 폭풍이 거세게 몰아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가라앉기 마련이다. 어쩌면 파편화된 노동시간, 조각난 노동의 흉터를 치유하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시장 정의가 사회 정의를 압도할 것 같지만 항상 그렇진 않았다. 생각해 보면 시민들은 자본의 권력이 아닌 불평등한 노동자들에게 힘을 실어 주었다. 시민들은 이윤은 향유하면서도 노동자들의 안전을 외면한 기업에는 채찍을 가했다. 노사관계에 국가 폭력과 공권력이 투입된 현실을 방관하지도 않았다. 권력의 억압과 부당함에 시민적 저항은 변화의 굴곡을 만든 것 같다. 그렇기에 보편적 노동기본권과 사회정책 그리고 이행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한 지혜를 모을 시점이다.
양대노총 조합원이 230만명이라고 한다. 향후 5년 동안 매월 1만원씩 모으면 1조원의 기금이 가능하다. 저임금 불안정 취약 노동자와 플랫폼·프리랜서 등 불안정 노동자를 위한 노동복지기금을 만들면 어떨까. 청소년·청년 등 예비노동자와 여성, 고령 등 사회공동체를 연결하는 연대기금으로 활용하면 어떨까. 새로운 상상력을 제공하고 미래의 노동정책을 함께 만들어갈 신진연구자들에게 연구기금을 제공하면 어떨까. 때론 비이성적이고 비현실적인 이야기가 대안과 상상력의 촉발이 될 수도 있다. 변화의 불확실성에 자신감을 갖지 못하면 두려움 탓에 그 무엇도 비현실적 논의로 들린다. 지난 5년의 경험을 뼈아프게 곱씹어봐야 한다. 정권이 바뀌어도 움직일 수 없는 정책유산을 만들어야 한다. 지금은 각자의 삶이 아니라, 불평등한 현실에 함께 책임감을 갖고 해법을 찾을 시기다.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 소장·사단법인 유니온센터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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