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훈의 어텐션] 국밥집 첫째 아들의 꿈
북한이 무인기를 서울로 날렸다. 모두가 도발의 이유를 찾고 있다. 몇몇 네티즌이 의미심장한 해석을 내놓았다. 김정은이 지난주 종영한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 결말에 분노해 무인기 시위를 했다는 해석이다. 김정은이 한국 드라마를 애청하는지는 밝혀진 적이 없다. 김정일이 한국 영화를 좋아했다는 증거는 많다. 부전자전일 것이다. 김정은 역시 금수산태양궁전에서 ‘사랑의 불시착’을 보며 “남조선 동무들은 북조선에 대해 아는 게 없구먼”이라며 낄낄거렸을 가능성이 크다. 신상옥과 최은희를 납치한 아버지처럼 현빈과 손예진을 노리고 있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김정은이 드라마 결말에 분노해 무인기를 날렸다는 농담을 소셜미디어에 올리자 “그렇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댓글이 쏟아졌다. 결말에 대한 반감이 컸던 탓이다. ‘재벌집 막내아들’은 판타지다. 살해당한 재벌 비서가 전생의 기억을 지닌 채 창업주 손자로 환생해 승계 전쟁을 벌이는 이야기를 다룬다. 시청자들은 을이 갑의 가족으로 다시 태어나 기업을 손에 넣는 과정에 열광했다. 올해 비지상파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것은 이 드라마가 ‘소망 충족’ 판타지를 제대로 건드린 덕이다.
어랍쇼. 마지막 회에서 드라마는 모든 것이 비서의 꿈이었다는 결말을 불쑥 내놓았다. 사실 그는 승계 전쟁에 휘말린 창업주 손자 사망의 배후였다. 꿈에서 깬 비서가 모든 사실을 털어놓자 재벌가는 전문경영인 체제로 바뀌며 드라마는 끝났다. 보는 이의 뺨을 때리는 반전은 한국 콘텐츠의 특징이기도 하다. 해외 평론가들은 어떤 장르 속에서도 현실 비판을 놓지 않는 것이 한국 콘텐츠의 강점이라 말한다. ‘기생충’과 ‘오징어 게임’이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모두가 봉준호가 될 수는 없다. 황동혁이 될 수도 없다. 뺨을 잘 때리려면 복선을 잘 깔아둬야 한다. ‘재벌집 막내아들’은 아무 복선 없이 냅다 ‘정신 차리라’ 훈계하며 막을 내렸다. 갑작스러운 현실 비판적 결말에 얻어맞은 시청자들은 당황했다. 이건 일종의 강박이다. 픽션조차 현실 사회 윤리로 끝내야 한다는 강박 말이다. 나는 마지막 회를 보고 탄식한 다음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틀었다. “영원히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라는 결말로 마음을 달래고 싶어서다. 영원히 행복하게 잘 사는 사람은 몇 없다. 재벌집 막내아들로 태어날 수도 없다. 하지만 재벌집에서 환생하는 판타지를 잠시라도 가지는 것이 정치적으로 나쁜 일은 아니다. 우리에게는 헛된 카타르시스도 필요하다.
2023년은 딱히 올해보다 더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적어도 픽션의 세계에서라면 나는 꿈을 꾸고 싶다. 가재는 꿈을 꾸고 싶다. 붕어도 꿈을 꾸고 싶다. 국밥집 첫째 아들도 재벌집 막내아들이 되는 꿈을 꾸고 싶다. 김정은도 꿈을 꾸고 싶을 것이다. 대륙간탄도미사일이고 뭐고 다 잊고 남조선 재벌집 막내아들로 태어나 행복하게 사는 꿈 말이다. 내 예상이 옳은지는 다음 무인기가 서울로 내려오는 시점에 종영하는 드라마의 결말에 달려 있을 것이다. 이것이 올해 나의 마지막 농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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