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극장과 지하철
왜 유럽의 극장은 성당처럼 도심에 있고 한국의 극장은 절처럼 산중에 있을까. 모든 극장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최소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립극장과 예술의전당은 산에 있다. 두 극장 모두 지하철에서 내려 객석에 앉기까지 거리가 1㎞를 훌쩍 넘는다.
최초의 극장은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됐다. 그리스인들은 도시마다 극장을 지었다. 매년 열리는 디오니소스제전의 연극축제를 위해 그들은 도시인구의 약 10분의1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 극장을 지었다. 도시의 산기슭을 이용해 대규모 객석을 만들었다. 그 객석을 테아트론(theatron)이라 불렀고 그것이 극장(theatre)의 어원이 됐다. 객석에 앉은 관객들이 연극을 볼 때면 무대에 선 배우들 너머로 자신들이 사는 시가지가 보였다.
고대 로마인들도 도시마다 극장을 지었다. 그들은 아치를 활용한 건축기술로 평지에 극장을 지을 수 있었다. 로마를 대표하는 원형극장 콜로세움과 지금은 없어진 폼페오극장, 마르첼로극장 등은 모두 도심의 평지에 지어졌다. 극장의 암흑기로 불리는 중세 1000년이 지나간 후 르네상스 시대를 맞아 그들은 다시 극장을 지었다. 16세기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르네상스극장은 17세기에 오페라와 만나 유럽 전역으로 퍼져갔다.
오늘날 각국을 대표하는 극장들은 마치 성당처럼 도심의 광장이나 지하철역 근처에 있다. 파리의 국립오페라극장, 밀라노의 라스칼라, 베를린의 도이치오퍼, 런던의 로열오페라하우스, 빈의 국립오페라극장 등이 그렇다. 극장이 지하철보다 먼저 지어졌으니 당연히 그렇지 않겠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뉴욕의 링컨센터나 일본의 신국립극장 등은 지하철보다 나중에 지어졌다. 서울의 예술의전당보다 4년 뒤 지어진 도쿄 신국립극장에 가는 관객들은 도쿄의 중심 신주쿠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한 정거장 만에 하쓰다이역에 내려 에스컬레이터를 타면 비를 맞지 않고 극장 로비로 바로 들어갈 수 있다.
절처럼 지은 극장은 어떨까. 지하철 경강선 이매역에서 내려 600m를 걸어가면 성남아트센터의 극장이 아니라 야외주차장이 나타난다. 주차장을 따라 300m를 더 걸어가면 계단이 보이고 그 계단으로 100m쯤 더 올라가면 드디어 오페라하우스의 입구가 나타난다. 절이 그렇다. 절 입구 주차장을 출발해 계곡을 따라 한참 걸어 올라가면 비로소 대웅전이 보인다. 산새 소리와 계곡 물소리를 들으며 속세의 때를 벗고 극장에 들어오라는 깊은 뜻인가. 지하철역 입구 가까운 곳에 주차장이 아니라 극장을 뒀어야 했다. 남산에 있는 국립극장도 절에 가듯 가야 한다. 지하철에서 내려 1㎞를 걸어 겨우 극장 근처에 도착한 관객은 울퉁불퉁한 자연석이 깔린 등산로 같은 길을 또 60m 이상 통과해야 극장마당에 들어서게 된다. 공연 전 셔틀버스를 운행하니 충분하다고 할 수 있을까. 최근 몇 차례에 걸친 리모델링 중 보행자 접근로 개선공사는 없고 대대적인 주차장 확장공사가 있었을 뿐이다. 차를 가지고 오라는 뜻일까.
최근 마곡동에 LG아트센터가 신축됐다. 1335석의 대극장과 365석의 소극장을 갖춘 이 복합극장은 LG그룹이 지어 20년간 운영한 후 서울시에 기부채납하는 공공극장이다. LG아트센터의 로비는 지하철 마곡나루역과 에스컬레이터로 연결돼 있다. 국내 공공극장으로서는 드물게 절처럼 짓지 않고 성당처럼 지은 셈이다. 지난 22년간 한국의 공연예술 발전을 선도한 LG아트센터가 역삼동 시대를 마감하고 문화시설이 부족한 서울 서남부지역으로 왔다. LG아트센터는 개관기념 공연으로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를 다룬 뮤지컬 '영웅'을 무대에 올려 내년 2월 말까지 공연한다. '우리 기업이 국가와 민족의 번영에 밑거름이 돼야 한다'는 LG연암문화재단의 신념대로 대한민국의 공연예술 발전에 앞으로도 기여해줄 것을 기대한다.
박동우 무대미술가·홍익대 공연예술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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