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테크 TIP] "아무리 조심해도 전세사기 못피한다면 부담커도 월세가겠다"
#서울에서 아파트 전세를 살고 있는 A씨는 2년 만기가 다가오면서 반전세나 월세로 집을 다시 알아보고 있다. 처음 전세로 들어왔을 때는 계약갱신청구권을 쓸 생각이었지만, 2년 새 금리 변화는 물론 부동산 시장 침체로 전세 가격이 크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금리 인상으로 대출 이자도 올라 이 참에 아예 이사를 생각하고 집주인에게 만기가 되면 나가겠다고 통보했다.
#최근 '빌라왕' 등 전세사기 기사를 보게 된 B씨는 자신이 전세로 살고 있는 빌라도 사기 물건일지도 모르겠다는 의심이 들었다. 다행히 집주인과는 쉽게 연락이 닿아 전세사기 걱정은 덜었다. 다만 집주인이 다음 세입자가 구해질 때까지 시간을 달라고 해 이번에는 '깡통전세' 걱정이 시작됐다.
빌라 등 2700여 채를 차명으로 보유하다 전세보증금 266억원을 가로챈 이른바 '건축왕'과 빌라 1000여채를 보유했다 숨져 피해자가 속출하고 있는 '빌라왕' 등 전세보증금 관련 피해 사건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국토교통부와 경찰이 수사 중인 사건들까지 구체화되면 유사 피해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세입자들은 자신의 집도 이런 케이스가 아닐지 불안해하다가 아예 반전세나 월세로 전환을 고려하고 있다. 최근 금리인상으로 대출 이자도 늘어나자 월세 부담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계산에 아예 월세 전환 수요도 증가하고 있다.
29일 부동산거주 리뷰·평가 플랫폼 '집품'이 자사 플랫폼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4분기의 수도권 빌라 및 일반 주택의 거주 리뷰검색량이 3분기 대비 320% 폭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12월 수도권 빌라 및 일반 주택의 주소 검색량은 전세사기와 깡통전세에 대한 불안감이 지금보다 적었던 7월 대비 5배 가까이 급증한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빌라 거주 후기 중에는 "전세 보증금을 못받았다", "소송 준비하고 있다. 피해자들은 xx채팅방으로 와달라" 등 피해 사례도 적지 않았다. 전세보증보험을 가입했어도 '빌라왕' 케이스처럼 세금체납 후 집주인이 사망한 경우 보상을 제때 받을 수 없다는 문제가 드러나면서 세입자들의 불안감은 더 커지고 있다.
집폼 관계자는 "전세사기 관련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한 올 하반기부터 빌라와 주택 검색량이 증가해왔다"며 "최근에는 오피스텔 검색량도 증가해 빌라와 주택에 집중됐던 전세사기 불안감이 오피스텔로도 번지는 추세"라고 분석했다.
이런 전세보증금 불안과 금리 인상으로 인한 이자 부담은 빌라나 오피스텔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아파트 역시 전세 보증금을 낮춰 반전세나 월세로 돌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올 한해 서울 아파트 월세 거래비중이 처음으로 평균 40%를 돌파하며 역대 최대를 기록하는 한편, 월 100만원 이상의 고액 월세계약이 크게 늘어나기도 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통계 분석 결과, 올해 아파트 월세 100만원 이상의 거래는 전국적으로 8만여건으로 집계됐다. 이 중 서울의 경우 2020년 1만8000건 수준이던 고액전세는 2021년 3만건으로 폭증한 데, 이어 올해는 3만3000건이나 신규로 체결됐다.
실제 서울 아파트의 국민평형(전용면적 84㎡) 월세가 100만원을 넘는 케이스는 찾기 어렵지 않다. 서울 노원구 상계주공4단지의 전용 84㎡는 2년 전인 2020년 10월 보증금 1억원에 월세 110만원에 계약됐다. 최근 시세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올해 8월 같은 평형이 보증금 1억원에 월 120만원으로 실거래됐다.
노원구 한 공인중개사는 "하반기 들어서면서 아파트 전세를 찾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아 집주인들에게도 반전세나 월세로 내놓을 것을 권하는 편"이라면서도 "집주인들이 전세 만기 등의 이유로 정말 급한 경우에만 가격을 낮추기 때문에 요즘 거래 자체가 뜸하다"고 말했다.
전세의 반전세나 월세화로의 속도가 빨라지는 동시에, 전세사기와 깡통전세 등의 문제가 커지면서 일각에서는 전세제도가 없어져야 하지 않겠냐는 의견도 나온다. 이미 금리가 높아서 수요자들이 전세에서 월세로 넘어가고 있는 상황이라 전세제도 소멸에는 지금이 최적의 타이밍이라는 분석이다.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에서만 전세제도가 있기 때문에 다주택자의 갭투기, 전세사기 등의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 않느냐는 반문과 함께다.
최원철 한양대 부동산융합대학원 특임교수는 "전세제도는 금융제도가 취약했던 시절 서민들의 내집 마련을 돕기 위한 주거사다리 역할을 해오며 지금까지 유지됐지만, 지금은 전세사기나 깡통전세, 갭투자 등의 부작용이 더 두드러지고 있다"며 "전세제도를 갑자기 없앴다면 혼돈이 있긴 하겠지만, 제대로 된 정책을 제시해 전환을 유도한다면 문제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미연기자 enero20@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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