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선] 과로 권하는 정부

유태영 2022. 12. 29.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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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카타르 월드컵의 시간대는 한국인에게 최적이었다.

대회 초반, 정시 퇴근만 하면 오후 7시와 오후 10시에 시작하는 두 경기를 편히 즐길 수 있었다.

근로일간 연속휴식 11시간을 보장받고 주휴일 하루는 쉰다고 쳐도, 나머지 6일은 오전 9시∼오후 10시 하루 11.5시간(휴게 1.5시간)씩 일하는 상황이 올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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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카타르 월드컵의 시간대는 한국인에게 최적이었다. 대회 초반, 정시 퇴근만 하면 오후 7시와 오후 10시에 시작하는 두 경기를 편히 즐길 수 있었다. 0시, 새벽 4시 경기 중 하나 정도를 더 챙겨보는 것도 불가능하지만은 않았다.

그런 만큼 현지 취재기자들은 고됐다. 하루 한두 경기는 한국의 지면 제작 시간과 겹쳤고, 도하의 밤이 깊어갈 때 한국은 다음날 지면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현지에 나가 있던 본지 서필웅 기자는 “한국과 마감 시간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져 종이신문 기자들은 다들 수면 부족”이라며 “하루 서너 시간밖에 못 자다 보니 다들 아프고 난리도 아니다”라고 토로했다.
유태영 국제부 차장
아르헨티나와 네덜란드가 8강전에서 맞붙은 10일 미국 기자 그랜트 월이 취재기자석에서 쓰러졌다는 비보가 들려왔다. 부검 결과 사인은 대동맥류 파열. 과로와의 인과관계는 더 따져봐야겠으나, 그가 소셜미디어에서 “3주째 잠도 거의 못 자고 스트레스가 심하다. 가슴이 답답한 느낌이 든다”고 하소연한 기록은 분명하게 남아있다. 그 말고도 카타르 사진기자, 영국 방송사 기술감독이 이번 월드컵 현장에서 숨졌다.

종군기자나 권위주의 국가의 반체제 언론인 정도를 제외하면 언론인은 비교적 안전한 직업이지만, 장시간 노동에서는 자유롭지 못하다. 월드컵, 총선·대선처럼 이른바 장이 서는 기간에는 특히 그렇다. 일본 NHK방송의 사도 미와 기자는 2013년 갑자기 숨지기 전 한 달간 도쿄도의회·참의원 선거를 취재하며 발생한 잔업이 무려 159시간이었다. 사인은 울혈성심부전. 산업재해가 인정됐다.

월드컵 열기가 정점을 향하던 12일 윤석열정부의 노동개혁 방향을 담은 미래노동시장연구회 권고문이 나왔다. 유연근로제 단위기간 확대가 당장 눈에 띄었다. 현행 주 12시간 한도인 연장근로를 월·분기·반기·연 단위로 관리하자는 내용이었다.

단위기간을 1년으로 설정하면, 연장근로 총량은 70%인 440시간(주 12시간×52.14주×0.7)으로 줄여야 한다. 그래도 최장 15주 동안 주 6일 69시간 근무(법정 40시간+연장 29시간)가 가능해진다. 근로일간 연속휴식 11시간을 보장받고 주휴일 하루는 쉰다고 쳐도, 나머지 6일은 오전 9시∼오후 10시 하루 11.5시간(휴게 1.5시간)씩 일하는 상황이 올 수 있는 것이다. 알리바바 창업주 마윈의 ‘996룰’(오전 9시∼오후 9시 주 6일 근무)을 방불케 한다. 더 극단적으로는 ‘오전 9시 출근, 익일 오전 3시 퇴근, (11시간 휴식 후) 오후 2시 출근’ 같은 일정이 반복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최근 5년간 한국의 과로사 추정 인구는 연평균 500명을 넘는다. 연간 노동시간은 지난해 기준 1915시간으로 가로시(Karoshi·과로사의 일본어 발음)를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등재시킨 일본(1607시간)보다 300시간 이상 많다.

일은 살기 위해 하는 것인데, 권고문은 정반대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재계는 권고문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더 많은 유연성을 내놓으라고 하고 노동계는 일제히 반발하고 있다. 과연 “근로시간 단축과 노동의 질 개선은 변함없이 지향·지속되어야 할 노동시장 제도 개혁의 목표이자 과제”라는 권고 취지와 부합하는 반응인가 의문이다.

유태영 국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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