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와우리] 국제 인권보호 관점서 본 사형제
생명권 비롯한 인권의 본질 침해
韓, 이미 사문화된 사형제 폐지 마땅
다른 나라들에 동참 촉구 앞장서야
25년 전인 1997년 12월30일 국내 마지막 사형 집행으로 사형수 23명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이후 우리나라는 사형 집행이 없는 사실상 사형폐지국이 되었고, 지난 15일 유엔총회의 사형 집행 모라토리엄 결의 77/222호에도 찬성하였다. 이는 비단 한국에만 국한되지 않은 세계적 추세로 헌법재판소가 3번째로 사형제의 위헌 여부를 판단하면서 고려할 사항이다.
유엔 인권위원회는 1997년부터 2006년 유엔 인권이사회로 개편 전까지 해마다 사형 집행 유예 결의를 채택했으며, 한국은 2004년 결의부터 반대에서 기권으로 선회하였다. 유엔총회는 2007년 결의 62/149호 채택(찬성 104, 반대 54, 기권 29) 후 2008년부터 격년으로 사형제 결의를 채택해왔으며, 2020년에 이어 한국이 두 번째로 찬성한 올해 결의는 찬성 125, 반대 37, 기권 22로 표차가 벌어졌다.
국제법도 변하고 있다. 1966년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자유권 규약은 ‘가장 중대한 범죄’에 대해 사형 선고가 가능하다고 규정하였으나 173개 당사국 중 90개국이 1989년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사형제 폐지를 위한 자유권 규약 제2선택의정서를 비준·가입하였다. 유럽인권협약의 46개 당사국 전원, 미주인권협약의 24개 당사국 중 13개국도 각 사형제 폐지 의정서에 동참하였다.
1989년 유럽인권재판소는 소어링 사건에서 사형이 가능한 범죄인 인도가 유럽인권협약 위반, 2003년 자유권규약위원회는 로저 저지 사건에서 사형제 폐지국의 경우 사형을 초래할 수 있는 범죄인 인도나 추방이 자유권 규약 위반이라 판단했다. 1998년 채택된 ‘국제공동체 전체의 관심사인 가장 중대한 범죄’를 다루는 국제형사재판소(ICC)에 관한 로마규정도 사형을 배제하였다.
사형제는 생명권을 비롯한 인권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한다. 최근 이란의 히잡 시위대 처형, 중국의 ‘가장 중대한 범죄’와는 거리가 먼 부패사범을 포함한 수천명 처형과 장기 적출 의혹, 소수인종에게 불리한 사법체계나 ‘신성모독죄’ 같은 죄목에 따른 사형 등이 대표적이다. 중국, 북한, 베트남처럼 사형 판결과 집행 건수 등의 통계조차 공개하지 않는 나라들도 있다.
범죄 억지에 가장 중요한 것은 ‘무거운 처벌’이 아니라 ‘확실한 처벌’이다. 2000년대 이후 국내에서 정치범이 사라지고 사형 판결의 기준이 엄격해진 것은 다행이지만 민주국가에서도 오심으로 처형된 사람을 되살릴 수 없다. 블랙스톤의 법언대로 10명의 죄인이 형벌을 면하는 것이 1명의 무고한 사람이 고초를 겪는 것보다 낫다면 당연히 10명의 죄인이 사형을 면하는 것이 1명의 무고한 사람이 처형되는 것보다 낫다.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소중히 여긴다면 이미 사문화된 사형제를 폐지하고 다른 나라들에도 동참을 촉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인권 보호 선도국으로서 우리 입지를 다지는 길이다.
신희석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 법률분석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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