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와미래] 인구감소와 부동산

2022. 12. 29.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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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는 주택시장 반등 약화 요인
붕괴론과 연결 짓는 것은 부적절
인구 줄며 현 재건축 시스템 위험
축소사회 적합한 주거체계 고민을

최근 질문을 많이 받는 인구와 부동산에 관한 개인적 견해를 이야기하려 한다. 10년 전쯤 우리 사회에서는 ‘일본과 미국이 경험한 주택가격 폭락이 인구 고령화에 의한 것이며, 그래서 한국에서도 부동산 가격 폭락이 일어난다’는 전망이 유행했다. 하지만 일본과 미국의 주택 동향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 허점들이 쉽게 발견된다. 1990년대 일본의 주택가격 폭락은 본격적 인구변동과 시기 차이를 두고 먼저 일어났고, 2000년대 미국은 인구구조의 개선이 없었음에도 부동산 가격이 다시 회복되었다. 인구가 부동산 시장의 근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지만, 그렇다고 부동산 시장을 인구결정론으로 바라보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 주택시장에서 인구변동의 영향은 금리, 정책, 전반적 경기 등의 다른 다양한 요소와 복잡하게 결합해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일본 부동산 가격 하락에 뒤이은 베이비부머의 본격적 은퇴와 인구 고령화가 주택시장의 반등을 막은 것은 일부 사실로 여겨진다. 우리 사회에서도 인구의 고령화와 감소의 본격화는 주택가격의 장기적 하향 압박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인구 고령화 문제를 ‘부동산 붕괴론’으로 연결짓기보다는, 주택시장 주기에서 반등세를 연기 또는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보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이상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 서울대 보건대학원 객원교수
일각에서는 인구 감소에도 가구 수는 증가하기 때문에 주택 수요는 계속 커질 것이라는 주장도 존재한다. 하지만 가구 증가를 이끄는 것은 1인가구의 증가인데, 이들은 주로 혼인하지 않은 청년세대, 이혼이나 직장 등으로 홀로 살게 된 중년층, 그리고 사별한 노인층으로 구성된다. 이들의 주거 수요는 중대형 아파트보다는 오피스텔이나 원룸 등 소형 주거에 제한되면서 신규 주택 수요 확대로는 이어지기 힘들 것이다. 가구 증가에 의한 주택 수요 증가론은 지금까지 한국 주택정책을 이끌던 ‘공급주의’가 만들어낸 과도한 기대라고 생각된다.

우리의 아파트 재건축 시스템은 미래에 심각한 위기 요인이 될 수 있다. 자동차는 시간이 흐를수록 감가상각되어 가격이 떨어지는데, 아파트는 재건축의 기대로 오히려 가격이 오르는 경향을 보인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재건축이란 100세대가 살던 아파트를 허물고 140세대가 살 아파트를 짓는 것인데, 이 신규 증가분으로 건축비와 복잡한 재산관계를 해결한다. 다시 말해 새로운 사람이 계속 들어와야 아파트 재건축 시스템이 유지될 수 있다.

그런데 미래 인구감소의 시대에는 새로운 입주자들을 구하기 어려워진다. 재건축이 어려워 노후화된 아파트는 결국 고층의 슬럼이 되어버릴 것이다. 이러한 아파트 재건축의 위기는 인구가 감소하는 지방 도시 지역부터 시작되어 점차 대도시와 수도권으로까지 확대될 수 있다. 특히 새롭게 조성된 신도시들은 지역 전체가 일시에 노후화되면서 대규모 인구를 끌어들이지 못해 재건축이 더 어려워질 수도 있다. 지난 부동산 폭등기에 쏟아져 나온 신도시 건설과 초고층 아파트 건설 계획들은 30~40년 후 있을 재건축의 위기를 생각해보지 않은 것 같다.

한편 서울과 수도권은 앞으로 수요가 줄지 않기 때문에 그러한 위기에서 벗어나 있다고 안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 지역 아파트를 위해 지방에서 인구를 계속해서 끌어와야 하는데, 이런 모습이 지속가능한 사회일 수는 없을 것이다.

차라리 부동산 광풍이 잦아든 지금, 앞으로 다가올 축소사회에 적합한 주거 체계의 방안들을 고민해야 한다. 축소의 시대에는 성장시대를 이끌던 공급주의가 더 이상 작동할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 인구감소 시대에도 지속가능하고 안정적 주거환경을 제공하고, 주거 격차를 줄이면서 젊은 세대에 더 많은 기회를 주고, 주민들이 서로를 돌볼 수 있는 공동체를 위한 설계도를 준비해야 한다.

○○억짜리 아파트에 갇혀, 미혼의 성인 자녀들과 같이 살면서, 안정적 노후 준비 없이, 집값 변화에 안절부절못하는 노년기가 더 이상 우리 사회 중산층의 모습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이상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 서울대 보건대학원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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