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엽의고전나들이] 큰 무를 뽑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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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고 작음을 겨루는 자리라면 단연 큰 게 최고다.
그래서 광고에서조차 '큰 일꾼, 큰 사발'을 외쳤을 것이고, 작은 것이 큰 것 앞에서 맥을 못 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여기에서 안 되면 저기를 생각하고 '먼 데 무당이 용하다'는 심정으로 밖으로 눈을 돌리는 게 상례이지만, 이런 관례가 쌓이게 되면 큰일에 힘 한 번 못 보태 보고 쓸모없는 존재로 취급받는 구성원이 늘어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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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어떤 영감이 무 하나를 심었는데 매우 특별히 컸다. 영감 혼자 힘으로는 아무리 뽑으려 해도 뽑을 수 없었다. 그래서 할멈을 불러 힘을 보탰지만 요지부동이었다. 다시 손녀를 불러내 함께 해도 마찬가지였다. 강아지를 불러 함께 하고, 고양이까지 불러 뽑으려 했지만 허사였다. 마침내 쥐까지 불러 힘을 보탰더니 무가 뽑혔다.
러시아 민담에 있는 이야기로 우화이다. 고양이와 쥐를 함께 불러내서 무 뽑는 데 동원할 수는 없을 터, 실제로 보면 영 허황된 이야기다. 그러나 그 시작부터 예사로 보아서는 안 될 장치가 있다. 지금도 “무 뽑듯이”라는 비유가 매우 쉬운 일을 가리킬 때 쓰는 것이고 보면 무를 뽑는 일에는 그리 큰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그러니 쉽게 뽑지 못할 무라면 특별히 큰 무임이 분명한데 공교롭게도 무 임자는 노인이다. 보통 크기의 무를 기운 센 젊은 농부가 뽑는 상황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차례로 힘을 보태게 되는데 그 순서가 점점 작아지는 데 유의해야 한다. 영감이 안 되니까 큰아들을 불렀다거나 동네 청년에게 도움을 청하는 게 아니라, 도리어 자신보다 힘이 더 작은 곳에 손을 벌렸다. 여기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우선, 그 작은 것들도 조금씩 힘을 보태면 어느 지점에선가 일어나는 질적 변화가 있다는 사실이 아닐까 한다. 보통 사람이라면 자신이 힘에 부치는 일이니 더 힘센 사람을 찾을 테지만, 더 적은 힘들까지도 보태본다는 역발상을 통해서도 무언가를 이룰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눈여겨볼 대목은 영감이 보탠 힘이 모두 집안에 있는 것들이라는 점이다. 여기에서 안 되면 저기를 생각하고 ‘먼 데 무당이 용하다’는 심정으로 밖으로 눈을 돌리는 게 상례이지만, 이런 관례가 쌓이게 되면 큰일에 힘 한 번 못 보태 보고 쓸모없는 존재로 취급받는 구성원이 늘어나기 마련이다. 큰 무를 뽑으려면 구인광고 생각은 잠시 접어두고 먼저 주변을 살펴보아야겠다.
이강엽 대구교대 교수·고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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