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봉투 부스럭” 너무 구체적이었던 한동훈
법무부 “장관 임무”라지만 추미애·박범계는 증거 거론 안 해
한동훈 법무부 장관(사진)이 지난 28일 국회 본회의에서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체포동의 요청 이유를 설명하면서 범죄 혐의 요지뿐 아니라 구체적인 증거관계를 언급해 논란이 일고 있다. 노 의원이 기소되더라도 한 장관이 언급한 ‘돈봉투 부스럭 소리’는 재판에서 다툴 여지가 크고, 최근 검찰이 법정 밖에서 구체적인 증거를 함부로 공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한 장관 설명은 부적절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장관은 국회 본회의에서 노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 요구 이유를 설명하면서 “노 의원이 청탁을 받고 돈을 받는 현장이 고스란히 녹음된 녹음파일이 있다”며 “‘저번에 주셨는데 뭘 또 주냐’ ‘저번에 그거 제가 잘 쓰고 있는데’라고 말하는 노 의원의 목소리, 돈봉투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까지도 그대로 녹음돼 있다”고 밝혔다. 범죄 혐의 요지를 설명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증거 내용을 공개한 것이다.
이에 민주당과 노 의원은 부당한 피의사실 공표이고, 구체적 사건을 지휘하지 않는 법무부 장관이 어떻게 증거관계까지 상세히 알고 있느냐고 비판했다. 한 장관은 “체포동의안에 다 기재돼 있다”고 반박했다.
국회에 제출된 21쪽 분량의 노 의원 체포동의안을 살펴본 결과 ‘돈봉투 부스럭 소리’와 같은 내용은 없었다. 녹음파일에 담긴 말이나 소리, 공여자들의 진술 내용이 상세히 기재되지는 않았다.
법무부는 전날 입장을 내고 “법무부 장관이 구체적 사건을 지휘하지 않지만 검찰보고사무규칙상의 사건 보고는 당연히 받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국회법 제93조는 안건 제안자가 그 취지를 설명해야 한다는 것이지 증거관계까지 설명하라는 내용은 아니다. 검찰보고사무규칙은 법무부 장관이 국회의원 사건을 보고받을 수 있다고 규정하면서 구체적인 ‘서식’을 명시하고 있다. 서식에는 피의자 성명, 죄명, 피의사실 요지, 주임검사, 수사관서를 간략히 기재하고 피의사실 요지와 검찰 의견서 등을 첨부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최근 10년간 국회 본회의에서 법무부 장관이 체포동의 요청 이유를 설명한 사례(국회의원 8명)를 살펴보면, 한 장관처럼 상세하게 설명한 경우는 없다. 21대 국회 들어 추미애·박범계 장관은 증거관계는 거론하지 않고 총 1분 남짓으로 설명했다. 20대 국회 때 박상기 장관은 ‘인적·물적 증거들이 있어 범죄 혐의가 입증된다’는 정도였다.
19대 국회 때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과 관련해 황교안 장관이, 박기춘 민주당 의원과 관련해 김현웅 장관이 체포동의 요구 이유를 설명하면서 관련자 진술을 직접 인용하거나 영상 화면을 묘사하지는 않았다.
한 장관은 2018년 사법농단 사건 수사 때 사법행정권자들이 검찰사무보고규칙과 유사한 법원 예규인 ‘중요 사건의 접수와 종국 보고’ 서식 범위를 넘어 진술 내용 등 사건의 구체적 내용을 보고하도록 시킨 것은 위법하다며 기소한 바 있다. 이에 대해 법무부 측은 “법원은 지휘를 받지 않는 조직이고, 검찰은 법무부 장관이 일반적 지휘·감독을 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보고받을 수 있어 다르다”고 했다.
한편 민주당이 29일 노 의원 체포동의안 부결과 관련 전날 노 의원 피의사실을 설명한 한 장관을 맹비난했다. 임오경 대변인은 “이렇게 세세한 체포동의안 설명을 일찍이 보지 못했다. 없는 죄를 유죄로 둔갑시키는 것도 모자라 조작수사 정당성을 강변하는 것이 장관 임무인지 답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이혜리·윤승민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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