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공야교’…제천의 밤을 밝히는 부녀 공무원
24년째 중등 수학 담당 김 과장
2014년부터 교장 맡아 살림까지
딸도 올해부터 국어 교사로 봉사
대를 이어 아름다운 ‘재능 기부’
충북 제천시 부녀 공무원이 낮에는 시청 공무원, 밤에는 야학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아름다운 이중생활’을 하고 있다. 김창순 제천시 자연치유특구과장(57)과 그의 딸인 김서진 제천시 교통과 주무관(28)이 주인공이다. 제천시 소속 공무원인 이들 부녀는 일주일에 한번씩 퇴근 후 시청에서 3㎞ 정도 떨어진 정진야간학교로 향한다.
정진야학에서 수학 과목을 맡고 있다는 김 과장은 29일 전화 인터뷰에서 “학생들 대부분이 초등학교를 졸업한 지 오래된 만학도여서 수학을 가르치는 것에 어려움을 느낀다”며 “그동안 수업을 쉬거나 미루고 싶은 적도 많았지만 학생들이 실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24년째 가르침을 이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남현동 주민자치센터 2층에 있는 정진야학은 공무원과 직장인들에 의해 1986년 7월 만들어졌다. 정진야학을 찾는 학생들은 생계를 위해 학업을 포기한 경우가 대부분으로, 이들은 49㎡ 크기의 교실 2곳에서 중·고등학교 검정고시를 준비 중이다. 지금까지 만학도 1980여명이 정진야학을 거쳐갔다. 이 중 860명이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김 과장은 정진야학에서 매주 목요일 오후 6시30분부터 9시50분까지 중등 과정 수학을 가르친다. “선배 공무원의 권유로 야학교사가 됐다”는 그는 1992년 정진야학과 첫 인연을 맺었다. 1994년부터 야학을 쉬었다가 2002년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2014년부터는 정진야학의 교장으로 부임해 학교 살림도 챙긴다.
김 과장의 딸인 김서진 주무관도 올해 5월부터 정진야학의 교사가 됐다. 그는 올해 제천시청에 부임했다. 김 주무관은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밤에는 교육봉사를 펼치는 아버지가 멋있고 존경스러워 하루빨리 공무원이 돼 아버지처럼 교육봉사하는 것을 꿈꿔왔다”고 말했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김 주무관의 담당 과목은 아이러니하게도 중등 국어다. 그는 “학창 시절 영어보다 국어를 더 좋아했고, 국어성적이 더 뛰어났다”며 웃었다.
그는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만학도들을 위해 기출문제 위주로 수업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가령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 수업을 하는 날이면 해당 작품과 관련된 기출문제를 학생들과 함께 풀어보는 방식이다. 그는 매주 월요일 3~4시간씩 짬을 내 수업을 준비한다고 했다.
김 주무관은 “이론도 중요하지만 시험 대비를 위해선 기출문제로 실전 경험을 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학생들의 반응도 좋다”고 말했다. 이어 “학생들이 30~70대로 나이가 많다 보니 저를 귀여워해 주신다”고 덧붙였다.
김 과장은 “딸의 수업을 먼발치에서 지켜본 적이 있다”며 “경험은 부족하지만 씩씩하고 수업도 잘 진행해 뿌듯했다”고 말했다. 이어 “대를 이어 봉사할 수 있어 행복하다”며 “배움에 뜻이 있는 많은 시민들이 정진야학을 통해 학업의 뜻을 이뤘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이삭 기자 isak84@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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