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갈등·기후변화·전염병…끙끙 앓았던 세계, 내년엔 활짝 웃길[아듀 2022 송년 기획]
① 러, 우크라이나 침공 ‘10만 희생’…피해는 결국 약자만
러시아군이 2월24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 친러 분리주의 세력의 해방을 위한 ‘특별군사작전’이라고 주장했다. 단기전으로 끝날 것이란 초기 전망과 달리 서방의 지원을 등에 업은 우크라이나가 선전하면서 전쟁은 10개월 넘게 이어지고 있다. 최근 우크라이나는 동부와 남부 지방 러시아 점령지를 속속 탈환하고 있다. 양측 희생자는 최소 10만명이 넘고, 해외로 떠난 우크라이나 피란민만 약 800만명으로 추산된다. 러시아군의 의료시설과 발전소 등 각종 인프라 파괴로 우크라이나는 심각한 인도주의적 위기를 겪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세계질서도 흔들었다.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서방이 러시아에 각종 제재를 부과했고, 러시아는 중국과의 연대를 기반으로 서방에 맞서면서 신냉전 구도가 공고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러시아의 에너지 무기화로 석유와 천연가스 가격이 급등했으며, 유럽은 러시아산 천연가스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수입처 다변화에 나섰다. 우크라이나 곡물 수출이 어려워지면서 아프리카 등의 식량 위기도 가중됐다.
② 먹고살기 힘들었다…OECD 평균 인플레이션 10% 넘어
인플레이션은 전 세계적 현상이 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지난 10월 회원국 평균 인플레이션은 10.8%로 1988년 4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독일, 스웨덴 등 유럽 주요국의 인플레이션은 정점을 찍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10%대를 넘나들고 있다.
튀르키예의 경우 인플레이션이 80%를 넘어섰다. 각국 정부가 경기 부양을 위해 통화 완화 정책을 펴왔고,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경제 붕괴를 막기 위해 지출을 늘리면서 시중에 돈이 많이 풀렸다. 주요 가스·곡물 수출국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도 영향을 미쳤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40여년 만의 최악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연초 제로금리 수준이던 기준금리를 4.25~4.5%까지 끌어올렸다.
세계 주요 국가들도 잇따라 공격적인 금리 인상에 나섰다. ‘킹달러’ 현상으로 주요국 통화 가치는 줄줄이 떨어졌다. 지나친 금리 인상에 따른 경기 침체 우려도 커지고 있다.
블룸버그 이코노믹스는 지난 10월 미국이 향후 1년 내 침체에 빠질 확률이 100%라고 예측했다.
③ ‘열’ 받는 지구…폭우·산불·더위 등 기상재해 더 잦아져
기상재해는 더욱 빈번해지고 피해 규모 또한 커졌다. 파키스탄에서는 지난 6월부터 8월까지 계절성 폭우와 이로 인한 홍수로 국토의 3분의 1이 잠기고 약 1400명이 숨졌다.
올여름 스페인, 포르투갈, 그리스 등에서는 대규모 산불이 잇따라 일어났다. 40도를 훌쩍 넘는 불볕더위에 유럽에서만 최소 1만5000명이 온열질환으로 사망하기도 했다.
미국과 일본에서도 역대급 폭염과 폭설이 번갈아 나타났고 수십명이 숨졌다. 기상재해의 가장 큰 원인으로는 지구온난화가 꼽힌다. 파키스탄을 강타한 폭우는 지구온난화로 증가한 해양 수증기를 잔뜩 머금은 계절풍이 육지로 유입된 결과로 분석된다.
파키스탄 등 개발도상국들은 11월 이집트에서 열린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에서 온실가스 발생 책임이 큰 선진국에 개도국의 기후재난에 따른 ‘손실과 피해’에 대한 ‘책임과 보상’을 요구했다. 일단 개도국 지원을 위한 기금 조성에는 합의했지만 구체적인 재원 마련 방안 등에 대한 논의는 다음 회의로 미뤄졌다.
④ 끝 향하는 코로나…중, 봉쇄정책으로 ‘재확산’ 역효과
3년에 걸친 코로나19 팬데믹의 영향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 9월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 수가 크게 줄었다면서 팬데믹의 끝이 다가오고 있다고 전망했다. 사망률 감소는 백신 접종과 치료법의 발전은 물론 이미 많은 사람들이 감염되면서 면역이 형성된 결과로 분석됐다. 유럽을 시작으로 대부분 나라에서 코로나19 감염자 격리, 이동 제한 등 방역 조치를 완화하며 ‘위드 코로나’를 선언했다. 위드 코로나는 경제에도 활기가 돌게 했다.
‘제로 코로나’ 정책을 고집하던 중국도 다음달 8일부터 해외 입국자 시설 격리 해제, 확진자 격리 조치 중단 등을 실시하겠다며 위드 코로나 동참을 선언했다. 무자비한 봉쇄정책에 저항하는 ‘백지 시위’ 확산과 경제 상황 악화 등이 정책 전환에 영향을 미쳤다. 중국에서는 방역 완화 이후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고 있다. 중국 당국은 통계를 발표하지 않기로 했지만 하루 신규 확진자가 최대 370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고 블룸버그통신이 지난 26일 보도했다. 주변국들은 중국인 관광객을 통한 코로나19 확산을 경계하며 방역대책 마련에 착수했다.
⑤ 히잡 시위에 총으로 대응한 이란…국제사회 고립 자초
이란에서는 지난 9월 대학생 마흐사 아미니(22)가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혐의로 도덕경찰에 체포된 뒤 의문사하면서 전역에서 100일 넘게 반정부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이란 정부의 강경진압에도 시위는 하루도 그친 날이 없고, 1979년 이란 혁명으로 수립된 이슬람 신정체제에 대한 가장 강력한 위협으로 떠올랐다. 이달 초 개혁 성향의 모하마드 하타미 전 대통령까지 나서 정부의 시위 강경진압을 비판하면서 “너무 늦기 전에 잘못을 바로잡고 좋은 통치로 나아가라”고 충고했다.
이란 정부는 최근 시위에 참가해 진압 민병대를 다치게 한 혐의 등으로 23살 청년 두 명을 공개처형했다. 사법부까지 동원한 공포정치로 시위 동력을 꺼뜨리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이란은 또 서방 국가들과 사우디아라비아, 이스라엘 등이 시위를 선동하고 있다며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이 같은 행보는 이란을 국제사회에서 더욱 고립시키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핵활동 중단을 대가로 대이란 제재를 푸는 것을 골자로 하는 핵합의 복원 협상은 사실상 사망했다고 말했다.
⑥ 미·중 패권경쟁 고조…주변국은 ‘눈치게임’ 속으로
올해는 미국과 중국의 글로벌 패권 경쟁이 어느 때보다 고조된 한 해였다. 조 바이든 미국 정부는 지난 10월 공개한 국가안보전략(NSS)에서 중국을 ‘국제 질서를 재편할 수 있는 능력과 의도를 가진 유일한 경쟁자”이자 “가장 결정적인 지정학적 도전”으로 규정했다. 미국은 지난 10월 중국에 대한 첨단 반도체 수출을 금지하는 등 중국과의 디커플링(탈동조화)을 강화했다. 중국 주도 무역질서 재편에 맞서기 위해 동맹국들과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를 출범시키고, 한국·일본·대만과 칩4동맹도 추진 중이다. 인도·태평양은 물론 아프리카, 중동, 중남미 등 지역 단위에서도 두 나라의 외교전은 치열해지고 있다.
양국 관계는 지난 8월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대만을 방문하면서 최악으로 치달았다. 중국은 대만을 포위한 채 강도 높은 군사훈련을 시행했고, 미국은 대만 유사시 군사적 개입 가능성을 내비쳤다. 바이든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11월 첫 대면 정상회담을 갖고 “경쟁이 충돌로 비화하는 것을 막자”는 데 합의했다. 하지만 대만 문제, 기술통제 등 현안마다 팽팽한 입장차는 여전했다.
⑦ 경제난 해결해달라…다시 좌파를 선택한 중남미 민심
2022년 중남미에서는 잇따라 좌파 정권이 출범하면서 ‘핑크 타이드’(좌파 물결)가 귀환했다.
3월에는 칠레 역사상 최연소인 가브리엘 보리치 대통령이 취임했다. 8월에는 좌파 게릴라 출신인 구스타보 페트로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콜롬비아 최초의 좌파 정부가 탄생했다. 10월에는 2000년대 1차 핑크 타이드 때 두 차례 브라질 대통령을 지낸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가 대선에서 승리했다. 이에 따라 멕시코(2018년 12월), 아르헨티나(2019년 12월), 페루(2021년 7월)를 거치며 확산된 2차 핑크 타이드가 절정에 달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중남미 주요 6개국에 모두 좌파 정권이 들어서게 된 것이다. 1차 핑크 타이드가 무너진 후 우파들이 줄줄이 집권했지만 부패와 빈부격차, 경제난이 이어지자 민심이 다시 돌아선 결과다.
다만 지난 7일 페드로 카스티요 페루 대통령 탄핵을 놓고는 이견이 노출됐다. 멕시코와 아르헨티나는 페드로 카스티요 페루 대통령 탄핵안을 통과시킨 페루 의회를 비난한 반면 브라질의 룰라 당선인과 칠레의 보리치 대통령은 탄핵을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⑧ 시진핑 3연임 성공…‘중국몽’은 이루어질까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10월 공산당 제20차 당대회에서 3연임을 확정하며 사실상 종신집권의 길에 들어섰다. 시 주석은 마오쩌둥 이후 처음으로 15년 이상 집권하는 중국 지도자가 됐다. 공산당은 그를 마오쩌둥에 준하는 ‘인민영수’로 호칭했고, 당헌을 개정해 시 주석을 당 핵심으로 규정했다. 중국 최고 지도부인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7명 중 자신을 제외한 6명을 모두 측근 그룹인 ‘시자쥔’으로 채웠다. 집단지도체제는 껍데기만 남고 명실상부한 ‘1인 권력’ 시대의 시작을 알린 것으로 평가된다. 시 주석은 “중국식 현대화를 전면 추진해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해야 한다”며 ‘중국몽’ 실현을 강조했다.
시 주석은 독재에 가까운 권력을 손에 쥐었지만 결코 쉽지 않은 전인미답의 길을 가야 한다. ‘제로 코로나’ 정책의 후유증을 극복하고 ‘위드 코로나’에 연착륙하는 게 급선무다. 부동산 침체와 성장률 둔화 등 경기 침체 요소도 부담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둘러싼 러시아·서방과의 관계 설정, 양안 갈등, 미국과의 전방위 경쟁 등 외교 현안 역시 2023년 시 주석의 고민거리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⑨ 미 연방대법원 ‘우향우’ 덕에…민주당 중간선거 선전
조 바이든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으로 치러진 미국 중간선거에서 ‘레드 웨이브’(공화당 압승)는 나타나지 않았다. 민주당이 예상 외로 선전하면서 바이든 대통령은 국정운영 동력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민주당은 상원에서 이전보다 많은 51석으로 과반을 확보했다. 다만 커스틴 시네마 상원의원이 민주당을 탈당하면서 민주당 의석은 다시 50석이 됐다. 하원에서는 공화당이 222석을 확보해 다수당이 됐으며 민주당은 213석을 얻는 데 그쳤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공화당 부진의 책임론 속에서 2024년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보수 우위 연방대법원의 임신중단권 폐기 판결은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 성향 여성표 결집에 큰 영향을 미쳤다. 연방대법원은 지난 6월 반세기 가까이 임신중단을 헌법적 권리로 보장해 온 ‘로 대 웨이드’ 판례를 무력화했다. 연방대법원의 ‘우향우’ 흐름이 임신중단은 물론 피임, 동성결혼 권리 침해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경각심도 커졌다.
⑩ 전범국의 태세 전환…일본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미·중 패권 경쟁과 북한의 미사일 도발 와중에 일본은 전쟁할 수 있는 국가로 한 발 더 다가섰다. 일본 정부는 지난 16일 ‘적기지 공격 능력(반격 능력)’ 보유를 골자로 하는 국가안보전략 등 안보 관련 3대 문서를 개정했다. 공격을 받을 때만 방위력을 행사하는 ‘전수방위’ 원칙에 따라 태평양전쟁 패전 후 70년 넘게 방어에만 머물던 일본의 안보정책이 공격할 수 있는 쪽으로 전환하는 역사적 결정이었다. 일본은 북한의 미사일 위협 증가를 안보전략 개정의 이유로 들었다. 중국 영향력 견제를 위해 일본의 역할 강화를 원하는 미국의 이해와도 맞아떨어진 결과다. 한반도 유사시 일본 자위대가 개입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일본 정부는 내년 방위비를 올해보다 26% 늘어나 사상 최대인 6조8000억엔(약 66조원)으로 편성했다. 또 현재 국내총생산(GDP) 1% 수준인 방위비를 5년 뒤 2%까지 증액하겠다고 밝혔다. 이 경우 일본의 국방예산은 100조원을 넘어서면서 세계 3위로 급상승하게 된다.
박효재 기자 mann616@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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