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에서 전하는 제주 4·3…“진실 알릴래요”
[KBS 제주] [앵커]
한국 현대사의 비극인 제주 4·3, 올해는 억울하게 옥살이한 수형인들이 명예를 회복하고 피해자들에게 첫 국가 보상금이 지급된 의미 있는 해였는데요.
미국의 책임을 묻는 움직임도 본격적으로 시작된 가운데, 미국 현지에서 4·3을 기억하기 위해 애쓰는 80대 유족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안서연 기자입니다.
[리포트]
세계 최대 도시 미국 뉴욕.
이곳에서 작은 마트를 운영하는 86살 이한진 씨.
제주시 화북에서 태어난 이 씨는 4·3 당시 눈 앞에서 어머니와 누나를 잃었습니다.
[이한진/4·3 희생자 유족 : "서북청년단 일행이 집까지 불을 질렀어요. 눈이 세차게 날렸어요. 그 날이 마지막 날이었어요. 이튿날 아침에는 시체를 인수하러 가라고 통지가 왔어요. 이게 저희 집안의 비극입니다."]
당시 해외 유학까지 다녀올 정도로 똑똑했던 형님 두 명도 불법 군사재판을 받고 행방불명됐습니다.
연좌제로 취업에 어려움을 겪던 이 씨는 일본을 거쳐 미국에 정착했습니다.
자녀들도 같은 고통을 받게 될까 염려스러웠기 때문입니다.
암 치료 전문의사이자 예일대 의과대학 교수인 아들은 이제야 아버지의 아픈 과거를 듣습니다.
[이승우/아들 : "저희가 어릴 때는 그런 대화를 나누지 않았어요. 들은 적도 없었죠."]
미국 변호사인 딸과 코넬대 교수인 사위, 그리고 의사 며느리에 손녀까지 이제는 가족 모두가 4·3을 공부합니다.
[제나 리/손녀 : "우리는 우리 역사의 어두운 부분에 대해서 잘 말하지 않아요. 그런 면에서 분명히 개선이 필요합니다. 결국은 많은 부분이 가족으로 귀결되고, 어떻게 미래 세대에 이러한 이야기들을 전달할 것인지의 문제로 귀착됩니다."]
3년 전, UN 본부에서 열린 4·3 인권 심포지엄에서도 가족들과 함께 발 벗고 나선 이 씨.
앞으로도 발걸음을 멈추지 않을 예정입니다.
[이한진/4·3 희생자 유족 : "그 진실을 알리는 일에는 정말 열심히 하겠고요. 일이 잘되리라 믿습니다. 희망합니다."]
먼 타지에서조차 차마 입 밖으로 꺼내보지 못했지만, 단 한 번도 잊어본 적 없는 4·3.
아픈 역사를 기억하는 움직임이 현대사의 비극 4·3의 진실로 한 걸음 더 내딛게 하고 있습니다.
KBS 뉴스 안서연입니다.
안서연 기자 (asy0104@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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