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 내부 플라스틱이 녹으며 ‘불똥비’…삽시간에 불바다

박준철·김태희·김세훈 기자 2022. 12. 29.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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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경인고속도로 터널 화재
뼈대만 남은 방음터널 29일 불이 난 경기 과천시 과천지식정보타운 인근 제2경인고속도로 방음터널 구간이 화재로 녹아 앙상한 빼대만 남아 있다. 연합뉴스
수백m 불길·연기 들어차…사망자 모두 반대 차선에서 나와
일반터널로 분류 안 된 방음터널, 소방설비 미비 등 관리 허술

29일 화재로 5명이 숨지고 37명이 다친 경기 과천시 제2경인고속도로 북의왕IC 인근 방음터널 내부는 마치 폭격을 맞은 듯 골격만 남았다. 방음터널 내부 벽면은 불이 시작된 성남 방향은 물론 양방향 모두 앙상한 뼈대만 남았다.

터널 안 곳곳에는 불에 탄 40여대의 차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좁은 터널에 뿌연 연기가 가득 들어차 있어 입구에서는 수십m 앞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불은 오후 4시12분쯤 완전히 꺼졌지만 매캐한 냄새가 여전히 진동했다. 혹시 있을지 모를 추가 인명 피해를 확인하기 위해 소방복이 검게 그을린 모습의 소방대원들과 소방차량이 터널 안팎을 오가고 있었다. 화재 현장으로부터 1㎞ 넘게 떨어져 있는 북의왕 톨게이트에서부터 불탄 냄새가 코를 찔러 화재의 규모를 실감케 했다.

사망자들은 모두 최초 불이 난 트럭과 같은 차선이 아닌 성남에서 안양 방향 차선에 있던 차량 안에서 발견됐다.

숨진 5명은 4대의 승용차 내에서 발견됐다. 승용차 2대에서 각 1명, 또 다른 승용차 1대에서 2명,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1대에서 1명이다. 사고가 발생한 방음터널 입구 인근에 사고 발생 시 추가 차량 진입을 차단시키는 ‘터널 진입 차단시설’이 설치돼 있었으나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인명 피해가 큰 것과 관련해서 ‘방음터널’이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방음터널이 불쏘시개 역할을 하면서 화재를 키웠고 이로 인한 연기가 외부로 빠져나가지 못해 질식 피해를 키운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경기소방재난본부가 촬영한 화재 발생 당시 영상에서도 방음터널 내 수백m에 달하는 구간이 모두 시뻘건 불길에 휩싸여 불에 타고, 터널 양옆으로는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온다.

목격자들은 불이 날 당시 플라스틱 재질로 만들어진 방음터널 내부가 삽시간에 화염에 휩싸였고, 뜨거운 열기로 인해 터널 천장이 녹아내리면서 불똥이 비처럼 바닥에 떨어졌다고 밝혔다. 터널 내부는 시커먼 연기로 가득 차 있었다고 전했다.

사고 현장에 있었던 한 60대 남성은 “갑자기 차 앞쪽으로 연기가 올라오는 것을 보고 가지고 있던 수건에 물을 적셔 입을 가렸다”면서 “이후 차를 버리고 100m 정도 뒤로 달려 터널 밖으로 빠져나왔다”고 했다. 그는 인근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귀가했다.

인근 주민 김모씨(65)는 “방음터널 쪽에서 검은 연기가 조금씩 올라오길래 무슨 일이 생겼나 하고 보고 있었는데 잠시 뒤 시뻘건 불길과 검은 연기가 하늘 높이 치솟았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방음터널은 철제 H빔으로 만들어진 구조체를 플라스틱의 일종인 폴리카보네이트(PC)또는 폴리메타크릴산 메틸(PMMA)로 덮어 만든다. 불이 난 방음터널은 PMMA소재로 이는 PC에 비해 저렴한 반면 인화점이 낮아 화재 위험성이 더 높다. 이들 소재는 일반 플라스틱에 비해 열기에 강하지만, 불연 소재는 아니기 때문에 고온의 열이 장시간 가해질 경우 불에 탈 수밖에 없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플라스틱류 소재는 불이 붙으면 목재의 다섯 배가 넘는 열을 내뿜어 불이 더 빨리 번지게 된다. 유독가스도 함께 발생하기 때문에 인명 피해가 클 수밖에 없다.

방음터널은 4면이 밀폐된 터널 구조임에도 일반 터널로 분류되지 않아 안전관리에 빈틈이 있다는 주장도 있다.

소방법상 방음터널은 일반 터널로 분류하지 않아 소화전 등 소방 설비를 갖추지 않아도 된다. 국토안전관리원 기준으로도 터널에 해당하지 않아 시설물 안전점검 및 정밀안전진단 대상에서도 제외된다.

박준철·김태희·김세훈 기자 terry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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