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쳐 도착한 곳이 낙원일 리 없다…내가 파업·단식을 하는 이유”
노조법 2·3조 개정 촉구 농성
단식 28일째 결국 병원 입원
지난여름 51일간 파업을 한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의 절박함은 단 한 장의 사진으로 압축할 수 있다. 유최안 하청지회 부지회장은 옥포조선소 독 화물창 바닥에 가로·세로·높이 각 1m인 철창을 만든 뒤 자신을 가뒀다. 철창 앞에는 “이대로 살 순 없지 않습니까!”란 팻말을 붙였다.
파업이 끝나고 다시 용접봉을 잡았던 유 부지회장은 지난달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노조법 2·3조 개정을 촉구하며 동료들과 단식 농성을 시작했다. 6년간 노조 활동을 하면서 수많은 투쟁을 해봤는데 단식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단식 농성 28일째였던 지난 27일 유 부지회장은 결국 병원으로 실려 갔다. 단식을 시작하고 몸무게가 11㎏이나 빠졌다.
지난 28~29일 서울 중랑구 녹색병원에서 유 부지회장을 만났다. 유 부지회장은 왼팔에 영양제와 수액을 맞으며 기자를 맞았다. 28일 아침에서야 미음을 먹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동안 농성하면서 병원 입원까지 한 적이 없는데 1년에 심지어 두 번째네요. 구급차를 탄 것도, 파스를 붙여본 것도 다 처음이에요.” 유 부지회장이 씁쓸하게 웃었다.
유 부지회장은 지난여름 1㎥ 철창 안에 몸을 욱여넣고 한 달을 버텼다. 관절을 비롯한 온몸에 이상이 생겼고 파업을 마친 뒤 40여일 동안 치료를 받아야 했다.
유 부지회장은 “지난 9월 다시 출근했는데 중량물을 들고 한 발 내딛자마자 다리가 아팠다. 11월 초까지도 아팠고 이후 조금씩 나아지는가 싶었는데 지난달 30일부터 단식농성에 들어가자 바로 관절에 무리가 오더라”라고 말했다.
단식 농성은 처음이었지만 건강이 다시 나빠지리란 것은 예상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자신을 다시 벼랑 끝으로 내몰 수밖에 없었다. 유 부지회장은 “절박함이 있었다”고 말했다.
■‘도망치지 않는 마음’ 되뇐 다짐
“일은 힘들고 위험한데 제대로 대우를 받지 못하니 숙련공들이 많이 떠났어요. 지난 6월 투쟁은 말도 안 되는 불공평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목적이었는데, 원청의 손해배상 청구 제기 압박과 정부의 강경기조 등으로 아쉽게 끝났고요. 마음정리가 잘 안 돼 참 힘들었어요.”
지난여름 파업으로 몸과 마음이 모두 상했지만 유 부지회장은 또 투쟁을 선택했다. 유 부지회장은 “지난여름 파업으로 그나마 구조적인 문제가 알려지면서 노란봉투법(간접고용 노동자의 교섭권 보장, 쟁의행위 탄압 목적의 손해배상·가압류 금지) 입법 논의가 나왔다”며 “비정규직 권리 개선을 위한 디딤돌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단식 농성에 나섰다”고 말했다.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의 파업이 끝난 뒤 원청인 대우조선해양은 노조 집행부 5명을 상대로 470억원의 손해배상 청구를 제기했다. 노란봉투법은 이런 원청의 ‘파업 봉쇄용 소송’을 금지한다.
유 부지회장이 참여한 지난여름 파업이 ‘밥벌이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이번 겨울 투쟁은 밥을 끊어서라도 더 폭넓은 노동자 권리를 확보하는 게 목적이었다.
마음을 굳게 먹고 단식을 시작했지만 국회 앞은 너무 추웠다. 밤이 되면 더 추웠다. 조선소 밖 투쟁은 처음이라 낯선 것도 많았다. 휘-잉, 바람이 천막을 때리는 소리를 들으며 애써 잠을 청했다. 유 부지회장은 좋아하는 미우라 겐타로 작가의 만화 <베르세르크>에 나오는 대사 “도망쳐서 도착한 곳에 낙원이란 있을 수 없는 거야”를 되뇌면서 마음을 계속 다잡았다.
유 부지회장은 인터뷰 중 자주 자신을 “없는 사람”이라 칭했다. 유 부지회장을 비롯한 하청노동자들은 오랜 세월 선택권을 갖지 못했다. 교섭을 요구하면 원청인 사용자는 늘 뒤로 빠지고 하청업체는 거부했다. 한 번도 쉽게 교섭을 한 적이 없다. 유 부지회장은 “없는 사람은 농성 시기를 정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결정은 언제나 외부환경에 따라 이뤄졌다.
“올해를 생각하면 여기저기서 치이고 또 치였던 거 같아요. 참 많이도 휩쓸리는구나란 생각을 했어요. 정당한 파업인데 회사가 조직적으로 방해하고 윤석열 정부는 불법이라면서 강경 대응만 했잖아요. 저희 파업이 정치적으로 이용되기도 했고요. 뿌리가 깊은 돌이었다면 바람이 불어도 뽑히지 않을 텐데, 저희는 그렇지 않잖아요. 그럼에도 저희가 할 수 있는 걸 진행한 한 해였어요. 옳은 선택이라고 믿었기에 절망하진 않았어요.”
■‘내 것’ 찾기는 “모두에게 이롭다”
유 부지회장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19살부터 조선업에 뛰어들었다. 용접공으로 일하면서 가정을 꾸렸다. 부지런히 일했고 얼마 안 가 네 식구가 살 수 있는 집도 장만했다. 고된 노동으로 몸이 상하고 있는 줄은 몰랐다. 유 부지회장은 “집 청소를 하고 바닥에 누웠는데 허리며 무릎이 너무 아팠다. 바로 병원에 갔는데 의사가 ‘무릎이 너무 안 좋다. 조선소에 가지 말라’고 했다. 그때 내 나이가 불과 27살이었는데…”라고 말했다.
그래도 몸이 부서져라 일했다. 건강을 위해 일을 줄이려 했는데 조선업 호황기에는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그러다 2015년 조선업이 불황기에 접어들면서 구조조정이 시작됐다. 호황기엔 몸이 망가졌고, 불황기에는 생계가 쪼들렸다.
불황 속에서는 일하는데도 수입이 계속 줄었다. 유 부지회장은 집을 팔았다. “먹고사는 걸 포기한 기분이었다”며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열심히 일하는데 더 힘들어지고 동료들이 해고되는 걸 보니 그땐 일하는 것 자체가 싫어질 정도였다”고 말했다.
노조 활동을 시작한 것은 그 무렵이었다. 김형수 현 대우조선해양 하청지회장의 제안으로 2016년 노조일을 맡았다.
노력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었다. ‘내 것’을 쟁취하려면 더 큰 피해를 감당해야 했다. 당장 생계에서 손을 놓아야 했고, 파업 이후에는 수십억~수백억원의 손배소가 제기됐다. 어렵사리 쟁취한 것을 다시 빼앗기는 일도 많았다. 하루는 답답한 마음에 아는 형에게 물었다. “‘내 것’이란 게 있을 수 있어요? 그게 가능한 거예요?”
국회 ‘노란봉투법’ 지지부진
여당 ‘경영자 편’ 예상했지만
민주당도 의지 안 보여 실망
유 부지회장은 노란봉투법이 아직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법안소위도 통과하지 못한 데 대해 “더불어민주당의 역할이 아쉽다”고 했다. “국민의힘이야 예상대로 경영계 입장을 대변한다고 하더라도, 민주당은 노란봉투법을 민생 7대 법안으로도 포함하지 않았나. 지금은 그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도 올해 투쟁들이 헛되지만은 않았다. 유 부지회장은 ‘나를 잃지 않았다’는 것에 의미를 뒀다. 그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우리 모두에 ‘이로운 선택’이 뭔지 알고 나아갔다”며 “인간답게 살기 위해 ‘저항하는 삶’이 곧 이기는 삶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양심인 것 같기도 하다”고 말했다.
■긴 여름 추운 겨울…내년도 ‘암울’
유 부지회장에게 올해 여름은 유독 길었고 겨울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를 비롯한 하청노동자, 특수고용노동자들 모두 마찬가지다. 그리고 내년 전망은 올해보다도 더 어둡다.
윤석열 대통령은 앞서 대우조선해양과 화물연대 파업에 줄곧 “법과 원칙”만을 내세웠다. 파업의 원인을 분석하고 해결책을 마련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최근에는 ‘노조’를 “척결해야 하는 부패세력 중 하나”라고도 했다.
윤 대통령, 법·원칙만 내세워
노조에 ‘신뢰’라는 게 있을까
내년에도 노·정 관계는 암울
유 부지회장은 “윤 대통령이 노조를 보는 인식에 과연 ‘신뢰’라는 게 있는지 모르겠다”며 “노동력과 이윤을 창출하는 선순환이 이뤄져야 하는데, 현재는 일방적으로 자본이 노동자를 제압하는 식으로만 간다. 내년도 노·정 관계를 생각하면 암울하다”고 말했다. 이어 “윤 대통령은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결’을 이야기하는데, 정작 이번에 꾸려진 조선업 상생협의체에 당사자가 빠졌고 해결 방식도 비정규직 노조의 처우 개선을 강화하는 방식이 아닌 정규직 노조 조건을 끌어내리는 식의 하향평준화로 가고 있다”며 “누군가의 권리를 침해해 누군가의 권리가 채워질 순 없다”고 말했다.
유 부지회장은 며칠간 치료를 받은 뒤 일터로 돌아가기로 했다. 단식은 중단하지만 나름의 다른 방식으로 투쟁에 나설 계획이다.
“비정규직의 조직력으로 현실을 바꿔나가는 게 어렵다는 걸 매번 느껴요. 멈추고 싶을 때도 있죠. 그런데도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걸 하는 거예요. 그게 정의롭고 양심적인 선택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유 부지회장은 혹독한 겨울 속에서도 여전히 희망을 품었다.
유선희 기자 y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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