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42명 사상 과천 고속도 화재가 일깨운 방음터널의 위험성
29일 오후 1시49분쯤 경기 과천시 갈현동 제2경인고속도로 북의왕IC 인근 방음터널 구간에서 큰불이 나 5명이 숨지고 중상자 3명을 포함해 37명이 다쳤다. 고속도로 차량 추돌에 이은 화재가 순식간에 터널 내로 번지면서 인명피해가 컸다. 화재의 구체적인 경위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터널 안에서 탄 차량은 45대로 파악됐다.
이날 화재는 고속도로를 달리던 버스와 트럭 간 추돌사고로 트럭에서 난 불이 방음터널로 옮겨붙으면서 일어났다. 터널 내 수백m 구간이 순식간에 불길에 휩싸였고 검은 연기가 발생했다. 터널 천장과 벽면이 뜨거운 열기에 터지고 녹아 폭발음과 함께 불똥이 떨어졌다. 방음터널의 강화플라스틱 소재가 불쏘시개 역할을 하며 불을 키운 것으로 소방당국은 추정하고 있다.
주목할 것은 사망자들이 화재 트럭 인근에 있던 승용차 4대에서 발견됐다는 점이다. 이들은 삽시간에 번진 화마에 미처 대피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화재 초기에는 소방관과 장비가 접근하기 어려울 정도로 불길이 거셌다. 플라스틱의 일종인 폴리카보네이트로 덮인 방음터널의 소재가 대형 사고의 원인으로 지목됐다. 일반 플라스틱보다 열에 강하지만 불연 소재가 아닌 폴리카보네이트는 고열에 타면 목재의 다섯 배가 넘는 열을 내뿜는다. 방음벽 고속도로는 밀폐된 터널과 달리 열린 공간이라 연기가 빠지기 쉬운 구조지만, 그만큼 산소가 닿는 면적이 커서 불을 끄기는 어렵다.
이번 사고는 방음터널 내 화재의 위험성을 일깨웠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방음터널에 불연 소재를 사용하도록 하는데 한국에는 관련 규정이 없다. 전국 50여곳에 설치된 방음터널의 대다수가 비상시 연기와 유독가스를 빼내고 신선한 외부 공기를 불어넣는 제연 설비를 갖추지 않고 있는 것도 문제다. 또 방음터널은 일반 터널로 분류되지 않아 스프링클러 등 소방 설비가 없어도 되고 안전점검 대상에서도 빠져 있다. 유사 사고 재발 가능성이 농후한 안전 사각지대인 것이다. 같은 사고가 나지 않도록 서둘러 대비책을 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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