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성장의 한계’ 50년, 그 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개인이든, 사회든 계속 성장해야 한다고 믿는다. 성장 추구는 강력한 관성과 같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영원히 성장하는 것이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인식이 생겨났다. 여전히 소수이긴 하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반세기 인류 역사에서 가장 큰 예지력을 발휘했지만, 사람들의 실제 행동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 책을 꼽자면 <성장의 한계>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세상이 흘러가는 방향에 제동을 걸고자 했지만, 많은 지지를 받지 못했다. 어떤 면에서 한 세기 먼저 나온 <자본론>과 닮았다. 다만 반체제 지식인이 아니라 주류 학자들이 쓴 책이라는 점이 다르다.
<성장의 한계>가 나온 지 올해 50년이다. 1972년 로마클럽 의뢰를 받아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연구소가 수행한 연구 보고서 형식으로 워싱턴의 한 영세 출판사에서 출간됐다. 그때만 해도 37개 언어로 1200만부 이상 팔릴 줄은 몰랐다. 경제학, 인구학, 생물학, 물리학 등 전공자들이 컴퓨터 프로그램을 돌려 분석해 내놓은 결론은 간단했다. 인구와 산업·식량 생산량의 증가는 지구 생태계가 흡수할 수 있는 배출가스의 한계 등 제약으로 인해 그 속도가 더뎌지다 결국 후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세계 경제가 팽창하던 당시 이 책은 혹평을 받았다. 지구 생태계가 그 정도로 허약하지 않으며, 기술 발전으로 극복 가능한 제약이라고 믿었다.
저자들은 자신들의 경고가 제대로 수용되지 않았다고 느끼며 출간 20년, 30년, 40년에 3차례 개정판을 냈다. 하지만 큰 소용이 없었다. 생존한 저자 데니스 메도스 전 MIT 시스템관리학 교수(80)는 지난 4월 르몽드 인터뷰에서 “우리는 그 속도를 늦출 기회가 있었지만 지난 50년 동안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며 “이제 너무 늦었다. 에너지 소비를 지금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도, 지구를 한계 이내로 되돌려놓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했다. 붕괴의 징후는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기획재정부가 내년 한국 경제성장률 예상치를 1.6%로 낮춰 잡으며 정권에 비상이 걸렸다. 윤석열 대통령은 성장률 제고에 모든 것을 걸겠다는 태세다. 아직도 사태의 심각성을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저성장’을 넘어 ‘탈성장’을 끌어안을 때라는 것을.
손제민 논설위원 jeje1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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